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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장을 보고 싶다면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jimmani 2009-10-27 오전 2:05:51 13796   [4]


영화계에는 보편적인 설득력을 가진 재능으로 두루두루 고른 지지층을 확보한 영화인들이 있는 반면, 극단적으로 폭발하는 재능을 가진 나머지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는 영화인들이 있다. 어느 한쪽이 우월하다고 할 수 없이, 관객들에게 여러 재미를 선사한다는 점에서 모두 소중한 영화인들이다. 전자의 대표적인 경우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라 한다면, 후자의 대표적인 경우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다. 영화를 안정적인 엔터테인먼트로 여기는 사람들은 스필버그를 택하겠지만, 영화를 짜릿한 모험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타란티노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두 사람 다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감탄을 자아내기 때문에, 나는 둘 다 좋아한다.
 
하지만 뭔가 도전적인 동시에 그만큼 더 찌릿찌릿한 쾌감을 맛보고 싶다면 아무래도 타란티노다. 그는 매 작품마다 예측 불가능한 재미를 들고 온다. 그가 만든 영화의 스타일이 대충 짐작이 간다 하더라도, 그는 항상 예측을 가뿐하게 비웃는 이야기와 표현 양식으로 뒤통수를 '갈긴다'. 때문에 이러한 그의 파격을 사랑하는 팬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극단적인 스타일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의 영화를 이해할 수 없어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껏 느끼지 못한 새로운 재미를 원한다면, 타란티노의 영화가 그 정확한 해답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의 신작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이하 <바스터즈>) 역시 그렇다. 결코 심각하지 않게, 이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든 끝장을 본다.
 
옛날 옛적 나치가 점령한 프랑스, 2차 대전에서 수세에 몰린 나치는 유대인 학살에 미쳐 있다. 유대인 출신 미군 알도 레인 중위(브래드 피트)는 이러한 나치의 작태에 분노해 비밀 특공대를 조직하니 그들이 이름하야 '미친 개떼들(Inglourious Basterds)'이다. 방망이로 머리를 강타하는 게 주특기인 도니 도노위츠(일라이 로스), 그 자신이 독일군임에도 게슈타포 장교들을 암살했던 휴고 스티글리츠(틸 슈바이거) 등이 속한 이들은 나치 군인들을 잡아다 닥치는 대로 죽이고 머릿가죽을 벗겨 모으는 식으로 소탕하며 1인자 히틀러, 2인자 괴벨스까지 응징할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이 계획에 독일의 유명 여배우이자 비밀 요원인 브리짓 본 해머스마크(다이앤 크루거)까지 합류한다. 한편 프랑스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을 색출하는 직책을 맡은 나치 군인 한스 란다 대령(크리스토프 발츠)에 의해 온 가족이 희생당한 쇼사나(멜라니 로랑)는 가까스로 살아남아 탈출하여 신분을 바꾼 채 삶을 이어간다. 극장을 운영하던 쇼사나는 그녀에게 반한 전쟁 영웅 프레데릭 졸러(다니엘 브뢸)으로부터 그가 출연한 영화가 쇼사나의 극장에서 프리미어 시사회를 가질 것이며,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 주요 인사들이 모두 모일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쇼사나는 지난날 가족을 잃은 복수로 이들을 극장에 가둬 불태우기로 결심한다. 개떼들과 쇼사나의 거사가 치러질 시사회의 밤은 점점 다가오는데, 그들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오랜만에 타란티노가 여러 인물들이 함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으로 돌아온 영화이니만큼, <바스터즈>에선 많은 배우들의 재치어린 연기를 목격할 수 있다. 예전엔 타란티노 영화에 출연하리라곤 생각도 못했던 브래드 피트는 무자비하면서도 껄렁대는 마초적 역할을 유머러스하게 소화해냈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과 달리 이 영화는 브래드 피트 원톱의 영화가 아닌지라, 많은 배우들의 연기가 빛난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독일군 한스 란다 대령 역의 크리스토프 발츠다. 이미 이 영화를 통해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유명세를 떨친 그는 이 영화에서 '악역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악역'이라는 두 글자 안에 가두기에는 그의 캐릭터와 연기는 너무 입체적이다. 매우 잔혹하면서도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으며(오히려 웃길 잘한다), 매우 철두철미하고 예리한 듯 하면서도 어딘가 찌질하다. 예리함과 헐렁함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하는 그의 연기는 순간순간마다 영화의 긴장감을 강화하는 힘을 보여준다. 단순히 주인공의 반대편에 선 악역이 아닌,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캐릭터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단연 돋보인다. 이들 외에도 <호스텔>의 감독이라는 이력과는 다르게 수다스런 캐릭터로 등장하는 도노위츠 역의 일라이 로스, 무뚝뚝한 암살자인 듯 했는데 시도 때도 없이 인상써서 되려 웃기는 스티글리츠 역의 틸 슈바이거, 살짝 다른 색깔의 팜므 파탈적 매력을 앞다투어 뽐내는 다이앤 크루거와 멜라니 로랑 등 배우들의 연기가 모두 하나같이 활달해서 영화에 더욱 에너지를 불어넣어준다. 더불어 중간에 단역급으로 등장하는 마이크 마이어스의 웃긴 영어 억양 연기도 주목할 만하다.
 
<바스터즈>는 타란티노가 만드는 첫번째 시대극이다. 늘 현대 미국의 온갖 시끄럽고 잔혹한 면만 쫓아다니던 그가 갑자기 시대극을 찍는다고 했을 때 적잖이 생뚱맞았으나,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어쩔 수 없이 '이건 타란티노 영화구나' 하는 느낌이 들게 된다. 그것은 타란티노가 시대극의 틀에 얽매일 생각도 하지 않고 단지 시대를 소재로만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역사적으로 사실이라 할 만한 건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하던 2차 대전 시기라는 시간적 배경이 전부일 뿐, 이야기와 캐릭터는 역사의 범위를 벗어난 지 오래다. 히틀러는 본래 자살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이 영화에선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이 영화의 결말 또한 쉽게 예측할 수 없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치가 적으로 등장하지만, 흔히 연상되는 수용소 장면같은 것도 등장하지 않고, 2차 대전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마땅한 전쟁 신 하나 없다. 대신에 이 영화가 집중하는 것은 오로지 나치라는 공통의 적을 향한 두 진영의 복수극, 타란티노가 <킬 빌> 때부터 관심을 기울여 왔던 요란한 복수극이다. 흔히 시대극 하면 떠올리게 되는 절제의 미덕 따위는 이 영화에 존재하지 않는다.
 

 


일단 시각적으로 폭발하는 부분에서는 확확 터진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2시간 30분 내내 때리고 부수는 식의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액션 신에서 보여주는 파괴력은 절대 '적당한' 수준이 아니다. 귓가에 쩌렁쩌렁 울리면서 그 타격감이 보기만 해도 피부로 와닿는 듯한 총격 장면, 남은 탄약 아낌없이 쏟아붓겠다는 의지로 만들어낸 듯한 폭발적인 마지막 거사 장면, <킬 빌>에서처럼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지 않지만 틈틈이 관객들을 움찔하게 하는 머릿가죽 벗기기 장면, 레인 중위만의 표식 남기기 등 일단 영화는 시각적으로 가차없다. 개떼들의 나치 응징은 대충대충 이루어지지 않는다. 음악 사용도 엔니오 모리꼬네에서부터 데이빗 보위까지 클래식과 모던을 자유자재로 오가고, 옛날 영화스런 오프닝과 과감하되 일부러 툭툭 끊는 음악 편집,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플래시백 장면은 시대극도 가뿐히 비웃는 타란티노의 재기를 엿보게 한다.
 
한편 타란티노는 쉴새없이 떠드는 영화로도 유명하다. 타란티노에 '오락영화 감독'의 이미지를 추가시켜준 <킬 빌>은 그의 작품 중 가장 과묵한 편에 속한다고 해도 될 정도로 그의 영화는 말이 많다. 어떨 땐 관객이 지칠 만큼 한 곳에서의 수다를 오랫동안 늘어놓기도 하는데, 이 영화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작전 전개 과정에서 여러 인물들 사이에서 펼쳐지는 대화는 영화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데,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에선 좀 다르다. 이 영화에선 그들의 대화가 속 빈 수다가 아니라, 제2의 액션 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내재되어 있는 팽팽한 긴장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대화하는 사람들 모두가 속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닌, 배신과 위장으로 점철된 관계인지라 이들의 대화는 언제 허점이 보일지 모르고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대화는 액션 장면과는 또 다른 형태로 영화의 긴장감을 형상화하는 역할을 한다.
 
캐릭터는 또 어떠한가. 우리가 생각하는 시대극 속 캐릭터들의 전형성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자비심 없이 나치 응징을 일삼는 '개떼들'을 보면 군인으로서 느껴질 법한 무게보다 허세와 자신감으로 가득찬 모습이 마치 <저수지의 개들> 등 타란티노 영화에서 숱하게 등장한 어리석은 남성 캐릭터들의 모습의 재현 같다. 이들은 미군의 입장에서 나치를 응징하긴 하나, 무슨 역사적 사명감때문에 한다기보다 그저 이 일이 재밌어서 하는 것 같다. 이태리 사람으로 위장한답시고 내뱉는 이태리어가 영어처럼 혀가 꼬부라지는 등 계획은 빈틈없다기보다 막무가내다. 복수라는 걸 하는 것 같긴 한데 진지하다기보단 놀이 같다. 그렇다고 이들과 맞서는 나치 쪽이 타이트하게 구는 건 또 아니다. 이들은 더 헐렁하다. 피도 눈물도 없긴 한데 은근히 찌질한 구석을 보이는 한스 란다를 비롯해 심지어는 나치의 1인자의 히틀러와 2인자 괴벨스마저도 매우 초라하다. 소름끼치는 공포감이나 카리스마따위는 안드로메다로 떠난지 오래고,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경박하고 어린아이같다. 저런 정신을 지닌 사람들 아래에서 학살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 비극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이처럼 희한한 캐릭터들이 이끌어가는 이야기는 그래서 때론 예상치 못한 길로 흘러가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정신없고 살짝 나사 풀린 듯한 대립 속에서 묘한 긴장감을 안겨주는 것이 있는데, 바로 쇼사나의 존재이다. 그녀의 캐릭터는 어린 시절 나치에 의해 온 가족을 잃고 홀로 복수의 칼날을 가는, 복수극의 전형적인 캐릭터다. <킬 빌> 속의 더 브라이드(우마 써먼)나 오렌 이시이(루시 리우)와 성격을 공유한다고도 할 수 있는 쇼사나는 영화 속에서 진지하고 비장하게 복수를 다짐하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개떼들과 나치의 난장판 같은 싸움 속에서 쇼사나의 진짜 복수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영화는 유머와 진지함 사이에서 한 마디로 형용할 수 없는 색깔의 폭발을 이루어낸다. 이것은 한없이 유쾌하면서도 매우 비장하고, 한없이 비장하면서도 매우 유쾌하다. 이러한 두 가지 극단적 카타르시스를 바쁘게 오가는 것이 이 영화가 주는 도전적인 쾌감이다.
 
<바스터즈>를 통해 이제 타란티노는 '예술적인 상업영화'를 만드는 데 도가 튼 감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킬 빌 1,2>, <데스 프루프> 등 최근의 작품들에서는 초기작에서처럼 딱 보기에 꼬인 것 같은 스토리를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딱 보기에 매우 단순하고 전형적인 듯한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나 그 테두리 안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형식과 전개를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을 능숙하게 가지고 논다. 관객들은 뻔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가 정말 뻔하지 않을 때보다, 뻔할 것 같은 이야기가 알고보니 뻔하지 않을 때 더 즐겁다. <바스터즈>에서도 그렇지 않은가. 나치에 대항하는 미국의 복수극이라는 간단한 줄거리 안에 팽팽한 수다와 폭발적인 액션 신, 답이 안나오는 캐릭터들과 그로부터 나오는 생뚱맞은 전개, 유쾌함과 비장함을 오가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모두 집어넣는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었다. 머리가 아프긴커녕 순수한 쾌감만 남는다. 이야기는 더 단순해졌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타란티노가 끝장을 보는 방식은 더욱 다양해졌다.


(총 2명 참여)
zoophi
저도 보고싶네요   
2010-01-19 17:26
stupnik52
쿠앤틴타란티노스탈 완젼 좋음   
2009-11-19 17:53
verite1004
저도 재미있게 봤습니다!   
2009-11-06 18:34
tmvivigirl
아 그냉   
2009-11-02 00:47
wjswoghd
신나게 가요   
2009-10-30 19:34
tmvivigirl
ddd   
2009-10-30 01:55
fa1422
감사...   
2009-10-29 23:33
monica1383
정말 최고였다는   
2009-10-28 07:31
sasimi167
브랫핏 저 표정이 맘에들어요   
2009-10-28 02:14
snc1228y
감사   
2009-10-27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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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2009, Inglourious Basterds)
제작사 : Universal Pictures, The Weinstein Company / 배급사 : UPI 코리아
수입사 : UPI 코리아 / 공식홈페이지 : http://inglouriousbasterd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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