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머>의 개봉 소식에 마음 설래며 기다린 이유는 딱 2가지입니다. <300>에서의 근육질 몸매에서 뿜어나온 새로운 액션 스타의 매력을 다시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과 게임속의 인물을 다른 누군가의 조종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황당하긴 하지만 기발한 상상력이었습니다. 

<게이머>는 악마의 음악을 한다는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 마를린 맨슨의 <Sweet Dream>이 나직이 흐르며 시작한 오프닝은 총알이 난무하는  전쟁을 방물케하는 참혹한 전투씬이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뒤이어 현실세상과 링크된 사이버 세상인 '소사이어티 (Society)' , 현실속 사람들의 조종으로 움직이며 실제 전투를 벌이는 게임인 '슬레이어즈 (Slayers)'가 나름의 논리를 펼치며 영화의 배경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이어집니다. 다소 무리수가 보이는 논리로 보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이것의 진위가 아닌만큼 주된 내용인 30게임만 완수하면 석방될 수 있는 사형수인 테일러에 미래와 조금씩 드러나는 개발자의  음모가 또 다른 관전 포인트를 주려 합니다.

이 대목부터가 사실상 영화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중요한 분기점이지만 아쉽게도 <게이머>는 방향성을 잃고 맙니다. 사형수를 이용하여 게임을 벌인다는 소재는 제이슨 스테덤 주연의 <데스 레이스>와 너무 흡사하고 선량한 죄수가 가족의 안전을 위해 제한된 공간을 탈출하는 내용은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탈옥>을,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의 모티브는 <메트릭스>를 통해 익히 보았던 내용이기에 <게이머>는  독창적 결말을 통한 완성도를 높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감춰진 비밀과 음모로 초점이 맞춰지면서 30게임을 향한 주인공의 생사를 건 사투의 박진감과 긴박감은 점점 줄어들고 맙니다. 그나마 간간히 벌어지는 전투장면은 그래도 아쉬움을 달래주기는 하지만 춤추고 노래하며 음란한 행동을 반복하는 가상세계는 불편함을 주기만 하고 착한 우리 주인공이 사형수가 된 배경도 설득력을 얻지 못합니다. 하긴 자신의 신변과 함께 거대한 음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테일러가 독한 술을 병째로 마신 뒤 탈출을 시도하는 장면을 보면 과도한 비약과 비논리를 통한 이 영화의 완성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갑니다.

개발자의 야욕을 알리려는 비밀 조직 '휴먼즈 (Humanz)'의 허무한 결말,  '핑 (Ping)'이라는 주인공의 심각한 약점을 알린 뒤 에도 별다른 위기감도 주지 못하는 부분, 극악 무도한 죄수의 등장으로 강력한 주인공에 대항할 분위기만 잔뜩 잡은 뒤에 싱겁게 정리되는 대결 구도의 허무함,  모든 사건이 정리되는 마지막 개발자와의 혈투등은 초반부의 좋은 분위기를 살리지 못한 채 모방작품이라는 멍에를 받아들이며 초라하게 마무리됩니다.

가상 공간에 대한 위기감이나 사형수일지라도 인간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사고의 위험성, 하다 못해 게임에 미치면 인생 망한다는 어떠한 메세지도 없이 허무함을 남기고 끝나는 <게이머>는 그나마 제라드 버틀러가 보여주는 액션 하나 건졌다는 생각만 들었던 영화입니다.  <드래그미 투 헬>의 '알리슨 로먼', <디스터비아>의 한국계 배우 '아론 유',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카이라 세드욱' 등 나름 호화 배역과 이정도 제작비로 이런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며 지나치게 현란한 카메라 기법과 FPS (First Person Shooter : 1인칭 슈팅) 게임 방식의 화면으로 속까지 울렁거려 고생한 기억까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딱 맞는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