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장면의 쾌감... ★★☆
언젠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동계 유니버시아드 또는 동계 아시안 게임을 보다 한국팀에 스키 점프 팀이 있다는 것 자체로도 좀 놀란 적이 있었다. 게다가 메달까지 따다니. 평창인가 무주인가가 동계 스포츠를 개최할 수 있는 북방 최저선이라고 하든가. 암튼 이번에 <국가대표>를 보면서 새삼 느낀 건 비인기 종목의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무엇인가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을 주는 소재라는 점은 확실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한국 영화가 사랑하는 스포츠도 비인기종목 - 마라톤, 핸드볼, 씨름, 역도, 스키점프 - 에 집중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국가대표>를 보면 한국에 스키점프 팀이 생긴 건 순전히 동계 올림픽 개최를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사전 실사를 나온 동계올림픽 위원회는 한국에 동계 스포츠가 부실함을 지적하고, 이에 위원회는 스키 점프 팀을 급조하게 된다. 스키장에서 애들 코 묻은 돈이나 받아 생활하던 방 코치(성동일)는 어쩔 수 없이 스키점프를 할 수밖에 없는 스키계의 이단아들을 찾아 나선다. 어릴 때 미국으로 입양 갔던 차헌태(하정우)는 어머니를 찾으려면 유명해져야 한다는 방 코치의 말에 혹해 국가대표직을 수락하고, 아픈 할머니와 동생을 보살펴야 하는 칠구(김지석)-봉구(이재응) 형제, 약물 투약으로 선수자격을 박탈당한 흥철(김동욱),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픈 재복(최재환)까지 속속 스키점프 국가대표에 합류하게 된다. 이들은 나름 절박한 심정에 국가대표를 수락하게 되고, 기반시설은커녕, 스키점프의 철자조차 모르는 코치와 함께 무대뽀로 스키점프의 ABC를 익혀나가게 된다. 과연 이들은 동계올림픽에 참가해 자신들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물경 100억이 넘는 예산이 투입된 <국가대표>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스키점프 장면이 주는 쾌감을 우선 들 수 있다. 사실 스키점프는 너무도 단순한 게임이다. 급한 경사도의 스키점프대를 무려 100km가 넘는 속도로 미끄러져 내려가 멀리 뛰어 넘어지지 않고 제대로 착지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동계올림픽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동일한 점프 장면이 계속 반복됨에도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눈에서 떼기 힘든 묘한 매력이 스키점프엔 있다. 그리고 그러한 매력을 영화는 각종 고가의 카메라를 동원해 관객에게 멋지고 실감나게 전달한다. 그러니깐 드라마적 요소에서의 감동과는 별개로 선수들이 멋지게 활강해서 하늘을 나는 장면만으로도 감동과 쾌감이 느껴진다는 말이다. 확실히 돈 들인 티는 난다.
김용화 감독의 전작에서도 두드러지듯 코믹 요소도 이 영화의 장점으로 꼽을만하다. 특히 캐스팅만으로는 코믹 연기의 중심을 잡을 듯 했던 성동일, 이한위의 진중한(?) 연기는 이 영화의 코믹 요소가 캐릭터보다는 상황에서 우러남을 말해준다. 이를테면 칠판에 ‘Sky Jump’라고 쓰여 있는 것을 하정우가 말없이 가서 ‘Ski’로 고쳐 쓰는 장면 같은 것들 말이다.
반면, 이 영화는 한국 코미디 영화의 대표적인 단점인 과잉 감정이라는 문제가 적나라하게 노정된 영화이기도 하다. 관객들을 중심으로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는 ‘애국가 장면’이라든가 입국 장면에서의 그 길고긴 인터뷰 장면 같은 것들. 게다가 훈련과정에서 비로 인해 전체가 함께 공유했던 강렬한 체험이 부재한 가운데, 비가 오자 너나 할 것 없이 멤버들이 훈련장으로 집결한다는 건 짜여진 구도에 이야기를 억지로 밀어 넣은 듯한 느낌마저 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은성이라는 배우를 좋아하긴 하지만, <국가대표>에서의 이은성은 대체 왜 그 캐릭터가 필요했는지 의문일 정도로 겉돈다. 차라리 전형적이긴 하지만 <반칙왕>의 장진영 캐릭터였다면 자연스럽게 극 속에 스며들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위의 두 가지 문제는 어떻게 보면 지엽적인 문제일지도 모른다. <국가대표>에서 가장 문제라고 느낀 건 영화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묘하게 긴장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건 근본적인 연출의 문제라고 보인다. 선수 선발과정에서의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고, 훈련 과정의 고됨도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이건 선발과정이라든가 훈련과정을 농밀하게 다루기엔 담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선수들 각자의 형편도 얘기해야 하고, 거기에 코치 딸의 사생활까지 두루 담아야 하니 실제 스키점프 국가대표팀, 그 자체의 이야기는 뒷전에 처진 듯한 느낌이다.
영화가 가장 공을 들인 스키점프 장면만으로도 영화가 어느 정도는 제 몫을 하지만, 곁가지를 쳐내고 스포츠 자체에 집중하면서 러닝타임을 조금만 줄였다면 어땠을까, 왠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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