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는 버리는데 익숙하다. 경제위기 이후 88만원 세대들로 대표되는 20대가 버림받았고, 수많은 노인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버림받고 폐휴지를 찾아 다니고 있다. 그렇다고 30대, 40대, 50대는 버림받지 않았을까? 세대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다. 비정규직 자체가 버림받은 자들의 상징이 되고 있다. [국가대표]란 영화에서도 버림받은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과거 버림받아 미국으로 입양된 오누이가 있고, 물의를 일으켜 받았던 메달을 박탈당하고 사회의 마이너러티로 떨어진 자들도 있고 아버지로부터 무시 받아 버림받은 자도 있었다. 그리고 올림픽 유치 상황에 따라 버려질 그들 역시 존재한다. 마치 우리처럼.
비인기 종목 선수도 사실 버림받기 일쑤인 한국사람들일 뿐이다. 즉, 마이너러티다. 또한 대한민국 스키 점프 선수단은 그런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스키 점프 대표팀들은 일개 실업팀 규모도 되지 않은 규모의 이들이 한국 유일의 팀이니까. 당연히 자신들끼리 하는 무슨 대회도 없고. 그냥 그들은 그렇게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이 안고 있는 언제든지 버림받을 수 있는 절박함은 너무 심각해 보인다. 영화에서의 모습들은 특히 그래 보였다. 또 다른 [우생순]이겠지만 역시나 마찬가지의 감동과 상업성을 갖추고 있다.
[국가대표]란 영화는 현재 한국 영화가 갖고 있는 속성들을 거의 갖고 있다. 같은 동료들간의 갈등 구조와 조화를 통한 순화, 그리고 미소 짓게 만드는 캐릭터, 웃음 코드, 그리고 눈물 등, 한국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이 영화는 모든 것을 갖고 있다. 다만 사랑 이야기는 그다지 진지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상업영화의 그 모든 것을 갖췄다. 그렇다고 영화가 수준 이하가 아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런 상업성에도 인간적인 매력을 다양하게 갖춘 영화다. 영화는 마이너러티들의 걱정의 화염 속에서 거칠게 도전하는 그들을 보여준다.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찾기 위해 잘 나가는 미국 알파인 스키 주장 자리를 때려 치고 한국에 온 미국 국적의 주장, 선수 시절의 실수로 인생 전체를 도려내야 하는 선수들, 그런 그들 중 생계를 위해 군대 갈 수 없는 자의 절박한 도전, 그리고 그냥 그런 학원의 원장이었다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시작한 감독, 이들에겐 공통점은 단 하나, 몰리고 몰려서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절박한 위기 속에서 도전한다. 설사 성공해도 그들에게 돌아올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아니 조만간 버림받겠지만, 그들은 그래도 도전했다. 도전하기 벅찬 금메달이라도 그들은 돌아올 수 없는 처지에서 싸워야 했다. 이런 그들의 연습은 비극적이기도 했고 희극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장면이 나오든 그들에겐 성공이 엄청난 것을 보장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결과가 좋다고 팬들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그 잘난 경기장을 세워 줄 것 같지도 않다. 카페나 몇 개 생길까? 절박하게 한 결과치곤 너무 소소하다. 그래도 지금 그들은 아직 국가대표 선수다. 그리고 그들의 긴장과 열정들이 비록 극화를 위해 인위성이 가미됐다 하겠지만 내용 그 자체가 무척 인상 깊은 소재라 어느 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모르지만 그것과 상관 없이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기분 좋음과 감동, 그리고 위기 소침해 있는 우리들에게 줄 수 있는 도전 의식 등을 훌륭히 느낄 수 있다. 우리도 어쩌면 마이너러티이기에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모르겠다.
한국영화가 진화하고 있다. [해운대]에서 스케일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된 CG가 여기서도 사용됐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CG 역시 상당히 멋진 장면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스키 점프의 역동성을 기막히게 형상화한 영상과 사운드는 오감을 훌륭히 자극하고 있다. CG 효과와 함께 시각의 역동성이 거친 청각과 더해지면서 스키로 타고 내려올 때의 강렬함, 그리고 점프했을 때 선수 뒤에서 본 앵글로 관중과 착지 장면을 찍을 때의 영상은 전에 본 적이 없는 화려한 영상의 백미다. 단순한 이미지만 보여줄 것 같았던 스포츠 영화가 강렬하게 역동적이고 거의 원시적인 힘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들을 격조 높게 영상에 담았다는 점에서 한국 스포츠 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주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개인적인 평가만은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다.
좋은 영화엔 필수적인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좋은 연기자들이 열연한 영화였다. 각자의 캐릭터에 한치의 오차 없이 무난한 연기력을 보여준 연기자들 덕분에 어설플 수도 있었던 개연성이 잘 마무리됐다고 느껴졌다. 나가노 올림픽에서 무시 받으며 입국한 그들 중 Bob (한국 명 차헌태)의 눈물 어린 고뇌에 찬 연기는 이 영화의 또 다른 볼거리였다. 좋은 배우가 좋은 연기하는 것이 그렇게 회자될 것은 아니지만 자칫 잘못했다면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는 장면에서 그의 연기는 마지막 엔딩을 감동적으로 마무리되도록 했다.
[해운대]에서의 소망이 여기에서도 이루어졌으면 한다. 인간에 대한 긍정적인 어조와 시선이 스포츠 영화의 특성이긴 하지만 그래도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인간의 휴머니즘과 신뢰를 근간으로 한 마이너러트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런 바램이 지금의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이리라. 그리고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의 믿음과 시선이 옳았으면 하는 바램 역시 거기에 추가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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