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영화가 관객들로부터 효과적인 정서적 호응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재난이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 재난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뒷전으로 해놓고 재난을 파괴적으로 묘사하는 데만 주력하다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까다로워지는 관객의 입맛에 맞추느라 웬만큼 자극을 높이지 않으면 시각적 만족도 얻기 어려울 뿐더러, 그렇다고 사정없이 재난의 스펙터클에만 주력하다보면 기본적으로 영화가 갖고 있어야 할 휴머니즘은 안드로메다로 사라지게 된다. 사람에 대한 관심은 없어지고 그들은 그저 재난에 짓밟히고 휩쓸리는, 재난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재난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정서에 귀기울일 때, 관객들은 거기에 감정적으로 동화되고 나아가 재난의 파급력까지 극대화되는 효과를 발휘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타이타닉>이나 <딥 임팩트>가 재난영화의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재난을 겪을 사람들의 갈등과 관계를 충분히 풀어놓아 공감대의 기반을 다져놓은 다음 재난을 집어넣음으로써 그 갈등과 관계에 화학작용을 일으킴으로써 영화의 주인공이 재난 자체가 아닌 그 재난 속에서 부대끼는 사람들이 될 수 있게 했다. 충분한 감정이입 덕분에 정서적으로도 충분히 공감하고 그 뒤에 닥친 재앙도 더욱 실감나게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 최초의 본격 재난영화라 할 만한 <해운대> 역시 이런 노선을 따르고 있었다. 비인간적인 볼거리 나열이나 전혀 공감 안되는 윗분들의 대응 같은 건 이 영화에 없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재난을 겪으며 서로 다른 결말로 다가가는 사람들의 관계였다.
2004년 동남아 해상에 들이닥친 지진해일(쓰나미)로 인해 인근 해역의 원양어선이 사고를 겪는다. 이 사고로 연희(하지원)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그는 함께 있던 만식(설경구)에게 연희를 부탁한다는 말을 남긴다. 그로부터 5년 뒤 해운대,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해 온 연희를 향한 만식의 애틋한 감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지만 5년 전 연희 아버지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 여겨 쉽게 연희에게 마음을 고백하지 못한다. 하지만 연희 또한 자신과 마음이 같다는 걸 안 만식은 연희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대답을 기다린다. 만식의 동생이자 해양구조대원인 형식(이민기)은 바다에 빠진 희미(강예원)를 우여곡절 끝에 구조해주고, 처음엔 형식의 실수만 붙들고 늘어지던 희미는 점차 형식의 순수함에 빠져들게 된다. 한편, 국제해양연구소의 지질학자 김휘(박중훈)는 해운대에서 7년 전 아내였던 유진(엄정화)과 딸 지민을 만나지만 지민과는 이번이 첫만남이다. 자신이 친아빠인 줄 모르는 지민과 김휘는 어색한 첫만남을 가지지만 딸을 향한 아버지로서의 애틋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앞에 5년 전 동남아에서 발생한 쓰나미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강력한 '메가쓰나미'가 다가온다.
사실 이 영화가 재난에만 힘을 주지 않았다는 것은 출연하는 배우들 면면에서부터 잘 알 수 있다. 볼거리를 가장 우선으로 하는 영화였다면 배우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이들을 기용했겠으나, <해운대>의 출연배우들은 원톱으로도 영화 한 편을 이끌어갈 만한 배우들이 무려 넷이나 등장한다. 여기에 이들 모두 믿음직한 연기력이 뒷받침됐으니, 영화 속 재난 뿐 아니라 이야기에 몰입할 준비는 충분히 되어 있다고 해도 되겠다. 일단 부산 출신인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사투리 연기는 유례없이 만족스럽다. 사실 부산,경남 지역을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꼭 한 두 명 씩 사투리 구사가 유독 어색한 배우가 있기 마련인데 이 영화에는 거의 없다. 설경구는 특유의 무뚝뚝함과 능글맞음이 잘 어우러져 있고, 하지원은 정말 수줍은 부산 처녀같다. 이민기는 네이티브 스피커이니 더할 나위없다. 배우들의 무게감은 그들의 연기에도 신뢰감을 주어서, 자칫 지나친 신파조로 빠지려는 분위기를 이들의 진중한 연기가 효과적으로 잡아주며 손발이 오그라들려는 것을 방지한다. 슬랩스틱과 구수한 대사로 빚어내는 코미디와 진지한 감정 연기가 적당히 어우러지고, 젊은 배우들과 중견 배우들의 호흡도 자연스러워 일단 시각효과 이전에 배우들의 연기만으로도 보는 맛이 있다.
그렇다고 영화가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커버해야 할 만큼 시각효과가 실망스러운가하면 그렇지도 않다. 시각효과는 생각보다 만족스럽다. 물론 아무리 헐리웃의 1급 특수효과 전문가를 영입했다고 해도 제작비 면에서 헐리웃과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세부적으로 질적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그 정도 치고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CG로 가장 표현하기 힘든 물질 중 하나가 물이라는데, 그래서인지 중간중간에 나오는 파도나 바다 한가운데의 묘사가 살짝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해운대 도심과 광안대교를 휩쓰는 쓰나미의 표현은 꽤 사실적으로 되어 있어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더불어 쓰나미를 소재로 한다고 해서 수해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은 점도 흥미로웠다. 쓰나미 사고로 인해 발생하는 부수적인 재난들, 즉 감전사고나 화물선과 다리의 충돌 및 폭발, 컨테이너의 추락 등은 어떨 때에는 쓰나미보다 더 강한 심리적 충격을 선사하며 관객을 사로잡았다. (특히 대규모 인명피해를 내는 감전사고 장면은 여느 호러영화처럼 무섭기까지 했다. 공포감만 놓고 보면 웬만한 헐리웃 재난영화 저리 가라였다.)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영화가 보여주는 기술적 진보보다도 그러한 기술적 성과를 이야기와 접목시키는 능력이다. 한 마디로 이 영화는 그러한 능력을 꽤 잘 보여준 듯 하다. 이런 부분은 메가폰을 잡은 윤제균 감독이 대작 전문이 아니라는 점이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한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예전에 나는 개인적으로 윤제균 감독의 영화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았었다. 조폭이나 섹스와 같은 다분히 상업적이고 진부한 소재를 가지고 와서는 물불 안가리고 실컷 웃기다가 후반부에 가서는 시치미 뚝 떼고 분위기 잡고 감동 주려는 인상이 너무 강했다. 관객의 취향을 너무 단순하게 파악하고 다가가려는 것처럼 보였다는 얘기다. 그러나 <낭만자객>이 구성지게 망하고 난 후, <1번가의 기적>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면서 그의 영화 만드는 능력이 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이제 말초적 코미디가 아니라 따뜻한 휴머니즘에 천착하려는 기미가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그의 전작인 <두사부일체>나 <색즉시공>도 소재가 자극적이어서 그렇지 이면에는 약자에 대한 애정이 중요한 감성 코드로 깔려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러한 감성 코드를 <1번가의 기적>부터 자극적인 포장없이 보다 인간적인 유머와 감동을 통해 표현하려 한 것이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그는 한국 관객이 솔깃해 할 만한 정서의 핵심 포인트를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런 점에서 그가 <해운대>의 메가폰을 잡은 것은 어느 정도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지 않았나 싶다. 영화는 대한민국 중에서도 부산, 그 중에서도 해운대라는 지극히 제한적인 지역을 배경으로 삼고 있기에 거시적인 스토리를 전개할 여유가 없다. 영화가 집중하는 건 이 재난에 나라가 어떻게 대처하고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되느냐가 아니라 지금 당장 해운대에 사는 이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되느냐다. 이를 제대로 조명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풍자정신이나 차가운 블럭버스터 분위기보다는 사람 냄새 나는 감성이었을 것이다. 윤제균 감독은 이러한 요소를 이전 작품들에서부터 보여 온 약자나 소외된 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통해 비교적 잘 표현해 냈다. 감독 스스로도 부산 출신인 만큼 부산 사람들의 삶이 가지는 디테일을 잘 묘사했고, 생활 속에서 벌어질 수 있는 소소한 갈등과 유머를 지루하지 않게 곳곳에 배치했다. 이와 함께 다양한 관계 사이에서 서서히 번져가는 애정을 대등한 비중으로 표현함으로써 다양한 세대가 공감할 만한 정서도 어느 정도 형성해냈다.
이렇게 영화가 재난 대신 사람들 사이의 이야기에 더 무게중심을 두는 것은 대부분의 관객이 이 영화에서 가장 관심을 가질 쓰나미를 어느 부분에 배치했는가를 봐도 잘 알 수 있다. 본격적으로 해운대에 닥치는 쓰나미는 영화 시작 후 80분 가까이 지나야 등장한다. 쓰나미가 처음부터 등장해 매 사건 사건마다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 쓰나미와는 전혀 상관없이 예전부터 사람들 사이에 여러 사건들이 전개되다가 쓰나미가 중요한 장애물로 등장하는 것이다. 쓰나미는 영화 전체를 이끌어 가는 주동자 역할이 아니라 사람들 간의 사건 사이에 갑작스레 놓이는 후반부의 중요한 위기 상황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을 둘러싼 이야기는 쓰나미의 움직임에 따라 수동적으로 휩쓸리지 않고, 쓰나미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더욱 극대화시키고 그들의 이야기가 지니는 정서적 파괴력을 절정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에 주력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쓰나미가 주인공인 재난영화가 아니라 '쓰나미가 중간에 등장하는 휴먼드라마'라고 할 만하다.
물론 그렇다고 영화가 마냥 빼어나게 매끄러운 면모를 보여주는 건 아니다. 윤제균 감독이 관객의 감성을 자극하고 눈물을 이끌어내는 능력은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아직까지 그것을 깔끔하게 유지하고 매듭짓는 능력은 다소 부족한 듯 보인다. 감동의 요소를 한번 끄집어내면 이걸 될 수 있는 한 끝까지 밀어붙여 보려고 하는 게 보인다는 점이 아쉽다. 제대로 다듬어진 눈물과 감동은 불필요한 낭비와 욕심 없이 적당한 선에서 끝내고 이로 인해 적당한 여운까지 남긴다. 하지만 <해운대>가 보여주는 후반부의 감동 코드는 종종 '신파조'를 확신하게 될 만큼 살짝 지나치다는 느낌을 준다. 인물들이 감정을 뱉어내는 장면을 수차례 반복하고 교차해서 클로즈업하는 등의 효과와 진중한 음악은 관객들이 한번 흘린 눈물을 눈물샘이 다 마를 때까지 아주 끝까지 뽑아보자고 작정한 듯한 인상까지 준다. 중후반까지 부담없는 유머와 애틋한 감정선으로 잘 흘러 왔는데 그렇게 쌓아 올려진 감정을 후반부에서 깔끔하게 추스르지 못하고 다소 투박하게 극대화시키려는 모습은 좀 아쉬웠다.
하지만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결국 <해운대>는 잘 빠진 국산 휴먼재난드라마다. 재난의 스펙터클 대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에 주목한 스토리라인은 한국 관객들의 정서에도 잘 부합하면서 자칫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시각효과의 비중을 적당히 덜어주는 역할까지 톡톡히 한다. 마치 인생사에서 반복되는 희노애락을 나타내듯 영화 내내 웃음과 눈물, 슬픔과 애틋함이 끊이질 않는다. 덕분에, 이전에 실패한 국산 블럭버스터들과 같이 볼거리에 치중하느라 이야기는 유야무야되고 그렇다고 볼거리도 별 것 없게 되는 우도 범하지 않았다. CG가 주는 말초적 쾌감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는 정서적 쾌감을 적절히 잘 배합한 이 영화는 앞으로 한국형 블럭버스터가 참고하면 도움이 될 나쁘지 않은 지침이다.
+ 부산 출신으로써 영화를 보고 난 뒤 '해운대 관광객 줄어드는 거 아닌가', '우리집은 안전할까'와 같은 괜한 걱정을 잠시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