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가지 없이 직선으로 내달린다... ★★★★
1982년 소위 ‘푸줏간 호러’로 일컬어지는 스플래터 무비의 기념비적 걸작 <이블 데드>로 호러 팬들을 단숨에 사로잡은 샘 레이미 감독. 지금도 <이블 데드>하면 토막 난 인체조각들이 바닥에서 꿈틀대는 장면이 떠오를 정도로 강렬하게 남아 있다.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특히 3편은 잔혹과 코믹이 어우러지면서 코믹 호러 장르의 출발을 알리기도 했지만, 1편엔 그저 아주 간단한 스토리 라인과 서로를 죽고 죽이는 끔찍한 살육전만이 되풀이된다. 혐오감의 극단을 제공하는 장면이 연속됨에도 불구하고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순수한 장르적 매력이 <이블 데드>에 가득했다.
아무튼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대표되는 주류 감독으로서 명성을 날리던 샘 레이미 감독이 자신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호러 장르로 복귀했다. 오랜만의 호러 장르 연출이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장인의 손길과 숨결이 느껴지는 <드래그 미 투 헬>은 오컬트와 고어가 뒤엉킨 가운데 곁가지 없이 단지 공포라는 목적 하나만을 위해 내달리는 직선주로의 롤러코스터처럼 관객을 지옥으로 안내한다.
스토리 라인은 역시 간단하다. 팀장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는 크리스틴(알리스 로먼)은 지점장으로부터 경쟁자인 스튜(레기 리)에 비해 자신의 최대 약점이 결단력 부족이란 평을 얻는다. 마침 이런 상황에서 미세스 가누시(로나 라버)가 대출 연장을 요청해왔고, 노파의 간곡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평소 부드럽고 마음 약한 크리스틴은 팀장 승진을 위해 거절한다. 그 과정에서 모욕을 당했다고 느낀 노파는 크리스틴에게 가장 사악한 악마인 라미아의 저주를 내리고, 크리스틴의 고통은 커져만 간다. 과연 크리스틴은 라미아의 저주를 벗어날 수 있을까?
우선 <드래그 미 투 헬>은 잔가지가 없다. 스토리 라인은 매끈하며, 크리스틴을 제외하고는 악마로부터 고통을 받는 사람도 한 명 없다.(영화 초반 라미아에 끌려가는 한 소년을 제외한다면) 마치 사람 죽이기 게임을 하는 것 같은 많은 호러 영화(사실은 고문 영화)에 비해 <드래그 미 투 헬>은 항상 옆에 있는 것 같은 애인 클레이(저스틴 롱)의 시선도 교묘하게 비켜 가면서 오로지 크리스틴 한 명에게 모든 것을 집중해 고통을 가중시킨다. 당연하게도 한 명에게 가해지는 집중적인 공격은 관객의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고 화면에 집중하도록 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과하지 않은 깜짝 효과와 과하지 않은 음악의 사용도 적절하다고 보인다. 분명 이 지점에서 뭔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음에도 가슴을 쿵하고 치는 그 절묘한 공포 타이밍은 “역시, 대가는 달라도 뭔가 달라”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게 한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드래그 미 투 헬>은 다분히 <이블 데드>를 연상시키는 지점들이 많다. 잔가지 없이 직선으로 내달리는 날렵함도 그렇거니와 특히 ‘입’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각종 공포 기제들도 그러하다. 그런데 <이블 데드>의 여자 배우들이 입을 통해 피나 오물 등을 밖으로 분출했다면, <드래그 미 투 헬>의 크리스틴은 입으로 많은 것들이 침입해 들어온다. 틀니가 빠진 노파가 크리스틴의 입을 무는 것에서 시작해, 파리를 거쳐 각종 오물과 심지어 노파의 주먹까지 입으로 들어온다. 이건 어쩌면 현대 호러 영화가 쓰잘데기 없이 말만 많음에 대한 일종의 공격 내지는 비아냥거림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왜냐면 크리스틴이 “올바른 어법은 예법의 기본이다”는 얘기를 반복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영화 초반부 입으로 들어갔던 파리가 느닷없이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튀어 나온다거나 은행에 근무한다는 이유로 얻게 된 동전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장면 등은 재치 있으며, 심각한 상황에서 돌발적으로 개입되는 코믹한 상황은 공포를 경감시키되 잊혀지기 힘든 묘한 심리적 상황을 경험하게 해 준다. 생각해보라. 탭댄스를 추는 악마 라미아와 이를 바라보는 염소의 멀뚱한 표정이라니. 샘 레이미가 계획대로 어서 빨리 <이블 데드 4>를 세상에 내 놓기를.
※ 샘 레이미의 영화에서 가장 궁금한 것 중 하나는 <이블 데드> 시리즈의 주인공인 브루스 캠벨의 카메오 출연이다. 혹시나 해서 열심히 봤는데 영 찾을 수가 없다. 내가 놓친 것은 아닐까 했는데, 다른 일정으로 인해 출연하지 못했다고 한다. 좀 아쉽다.
※ 우리나라 사람들만 그러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공포 영화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무서웠다고 인정하면 왠지 심약한 인간으로 규정될까 그러는 것일까? <드래그 미 투 헬>을 보는데 옆에 몇 명의 여학생들이 우르르 들어와 앉는다. 바로 옆자리의 여학생은 본격적인 공포 레이스에 들어가자마자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러대더니 나중엔 영화 끝날 때까지 아예 고개를 푹 숙이고 시간을 보낸다. 온몸을 벌벌 떨며. 그러더니 영화가 끝나니깐 일어나며 친구들에게 한다는 소리가 “이럴 줄 알았어. 나 이런 영화 너무 짜증나. 괜히 봤어”하면서 나간다. 대체 그 여학생은 공포 영화를 보면서 뭘 기대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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