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쑤셔 넣느라 고생했다... ★★★
하버드대 종교기호학 교수인 로버트 랭던(톰 행크스)은 수영 도중 교황청으로부터 긴급한 도움 요청을 받는다.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전통적인 콘클라베를 앞두고 있는 교황청에서 가장 유력한 교황 후보 4명이 납치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게다가 세계 최대의 과학연구소 CERN(유럽 원자핵 공동 연구소) 소속의 물리학자 비토리아(아예렛 주어)와 실바노가 개발에 성공한 엄청난 파괴력의 반물질이 교황청의 어느 곳엔가 숨겨진 채 바티칸을 노리는 중이다. 반물질을 훔쳐 교황청에 설치해 놓고 교황 후보 4명을 납치한 것은 고대의 비밀조직인 일루미나티. 일루미나티는 오랫동안 과학을 탄압한 종교에 대한 보복의 일환으로 교황 후보 4명을 살해할 것이라 경고하고, 로버트 랭던은 로마 곳곳에 숨겨져 있는 일루미나티의 상징들을 찾아 이를 저지하기 위해 분투한다.
<다빈치 코드>에 이어 로버트 랭던 교수가 주인공인 댄 브라운 원작의 <천사와 악마>는 영화로는 <다빈치 코드>보다 늦게 나왔지만, 소설로는 먼저 발매되었다. 소설 발매 순서로 보면 이야기의 무대 차원에선 로마라는 한정된 공간에서(<천사와 악마>) 프랑스, 영국 등을 돌아다니는(<다빈치 코드>) 등 확장되었고, 주제 차원에선 종교와 과학의 대립(<천사와 악마>)에서 기독교 그 자체의 모순(<다빈치 코드>)이라는 더 집중되는 방향으로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빈치 코드>도 마찬가지지만 <천사와 악마>도 원작 소설 속에 대단히 많은 텍스트를 담고 있으며, 어쨌거나 장편 소설의 영화화는 어쩔 수 없이 ‘선택과 집중’ 원칙하에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차원에서만 보자면 분명 <천사와 악마>는 <다빈치 코드>보다는 나은 결과물을 보이고는 있다.
전반적으로 영화 <천사와 악마>의 목표는 오락 영화에 있음은 확실해 보이고, <다빈치 코드>의 방만한 스토리 전개라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인지 원작에서 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로버트 랭던 교수와 비토리아의 멜로 라인은 아예 삭제하였고, 비토리아의 비중 자체가 크게 줄어들었다. 거기에 빠른 속도감으로 분명히 관객에게 오락적 재미를 주기 위한 목표엔 성공한 듯 보인다.
그런데 이런 재미는 주요하게는 액션 장르에 국한된 것이다. 미스테리나 스릴러 장르로서는 한계가 두드러져 보인다. 그건 무엇보다 관객이 참여할 여지가 조금도 없다는 점이다. 소설에선 꽤나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 일루미나티 조직의 기원과 특징이 몇 마디 말로 스쳐 지나가고, 네 명의 교황 후보를 찾아다니는 매우 복잡하고 심오한 경로가 관객의 궁금증을 유발할 계기 없이 그저 ‘이리 가니 이리 가는 줄 알고, 저리 가니 저리 가는 줄 아는’ 정도에 머물러 버린다. 그 과정에서 베르니니의 유명한 조각 작품과 로마 시내를 구경하는 전리품(?)을 챙길 수는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스리슬쩍, 어물쩍 결론으로 넘어가 버린다는 찝찝함을 못내 지우기가 힘들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 소설과 관련해서 꼭 보고 싶었던 몇 장면이 있었다. 원작 소설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CERN 소속의 초음속 미래형 비행기와 마지막의 헬리콥터 상승신. 그런데 비행기는 아예 사라졌고, 헬리콥터 상승신과 궁무처장(이완 맥그리거)의 탈출 장면은 이상하게 축소되었고, 로버트 랭던은 아예 헬리콥터에 오르지 않는다. 이 뿐만이 아니라 소설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CERN 소장은 아예 없어졌고, 그 역할을 몇 명이 나눠 분담해 맡고 있다. 특히 일루미나티의 마지막 인장(불 물 공기 흙의 네 가지 요소를 모두 모아놓은)을 바티칸 인장으로 바꾼 건 아쉬움을 넘어 이해되지 않는 교체다. 그렇다고 이러한 장면들이 영화의 단점은 아니다. <천사와 악마>의 단점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미스테리나 스릴러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도록 그저 원작을 한정된 시간에 쑤셔 넣어 단순히 나열해 놓은 것 같은 연출의 문제이다. 확실히 론 하워드 감독은 이런 류의 오락영화 연출엔 별다른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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