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쉽고 편하게 배제되어 버리는 1318들의 고민들... ★★★☆
<시선 1318>은 국가인권위원회가 2003년부터 제작해 온 옴니버스 인권영화 시리즈 중 네 번째 영화다. 그 동안의 시리즈가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인권 문제들을 다루어 왔다면, 이번 프로젝트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청소년 인권 문제와 관련한 특정 주제로 집중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인권 문제는 여러 인권 문제 중에 가장 쉽고 편하게 배제되거나 후순위로 밀려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왜냐면 대다수의 기성세대가 아이들의 문제는 나이가 먹으면 자연스럽게 해소되는, 그래서 단순한 아이들의 투정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 더 치열한 문제제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론 옴니버스 영화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장점보다 단점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선 시리즈> 같은 경우에 옴니버스는 가장 몸에 잘 맞는 옷이라는 생각이고, 주제를 전달하는 가장 적합한 형식이리라. 무엇보다 이번 <시선 시리즈>는 현 정부 들어와 국가인권위원회 자체가 축소 내지는 아예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으며, <시선 시리즈>의 폐지도 우려되는 상황인지라 왠지 모르게 더 소중해진 듯한 느낌이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귀엽다. 그건 무엇보다 청소년들을 다룬 얘기인지라 출연진의 나이가 어리고 생경한 얼굴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든 입장에서 일단 어린 친구들의 밝은 웃음은 그 자체로 상당한 마력을 행사하는 것 같다.
첫 번째, 방은진 감독의 <진주는 공부 중>
아무런 정보 없이 봤다면 뮤지컬 형식을 도입한 이 영화를 전계수 감독의 영화라고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한 편 당 7천만원의 제작비로 뮤지컬 장르를 만들 생각을 했다는 건 어쨌거나 참 용감한 도전이다. 거기에 이 영화엔 애니메이션도 등장하고 CG 분량도 꽤 된다. 뮤지컬의 핵심인 음악도 방준석 감독이 참여하는 등 노력을 기울인 흔적은 역력하다. 그런데 그 결과물은 다섯 작품 중 가장 처진다. 방은진 감독이 가진 재능을 고려해보면 한 마디로 실망이다. 아무래도 그 예산 가지고 뮤지컬 장르를 만들기엔 너무 벅찬 것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있어서도 주제 의식을 너무 직설적으로, 너무 단순하게, 너무 전형적으로 드러냄으로서 안이하다는 느낌까지 준다. 주인공인 진주 역을 맡은 남지현의 예쁜 미소로도 실망은 메워지지 않는다.
두 번째, 전계수 감독의 <유.앤.미>
같은 반이지만 전혀 소통하지 않는 철구(황건희)와 소영(권은수)의 엇갈리는 시선과 동일한 고민을 하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 철구가 소영의 뒤를 쫓아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영화는 구성되어 있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 전계수 감독의 영화에 가장 큰 기대를 걸었다. <삼거리 극장>에서 보여준 그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재능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반대의 의미에서 방은진 감독과 더불어 다소 실망스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가 끝난 뒤 누군가 “전계수 감독이 예술하고 싶은가봐”라는 감상평을 내놨고 전적으로 동의했다. 고작 중학생이 운동을 포기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현실, 자신 스스로는 아무 것도 결정할 수 없는 상실된 자아. 문제의식은 좋지만 과도한 은유와 비유로서 오히려 주제의 전달을 흐리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세 번째, 이현승 감독의 <릴레이>
<초감각커플>과 <과속스캔들>로 인기도가 급상승한 박보영이 처음으로 출연한 영화라는 화제를 낳고 있는 <릴레이>는 전반적으로 아주 유머러스하고 발랄하다. 그리고 형식에서도 뉴스와 같은 인터뷰 장면을 수시로 집어넣음으로서 독특한 느낌을 준다.(교감 역을 맡은 문성근의 인터뷰 장면은 문성근이 사회를 보던 시사 프로그램의 그것을 그대로 연상시킨다. 객석에서 터진 엄청난 웃음소리) 그런데 일단 캐스팅에서의 문제를 제기하자면, 출연 배우들이 실제 청소년 나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좀 노회해(?) 보이는 외모 탓에 이질감이 느껴진다. 박보영도 이후에 출연한 <초감각커플>보다 더 나이 들어 보여 촬영상의 문제는 아닌가 싶기도 하다. 비혼모(미혼모와 뜻은 거의 동일하나 자발적이라는 의미가 더 강조된 것이라 함) 문제를 다루고 있는 <릴레이>는 마지막 부분에 와서 유머와 형식의 독특함이 주는 재미를 싹 거둬들이고 주제의식을 과도하게, 그것도 몇 번씩이나 거듭해 강조함으로서 스스로의 장점을 폐기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다.
네 번째, 윤성호 감독의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
마지막에 상영된 김태용 감독의 <달리는 차은>과 함께 <시선 1318>의 빛이 되고 있는 작품. 반짝이는 재기발랄함으로 무장한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포복절도할 웃음 바이러스를 마구 뿌려댄다. 사실 이 영화는 아무런 줄거리가 없다. 그저 일 년 전 한 여학생이 자살한 장소를 중심으로 여러 명의 남녀 학생들의 끊임없이 주절대는 얘기들을 모아 놨을 뿐이다. 그 이야기 속에는 그 나이 대의 아이들이 느끼고 있을 법한 온갖 얘기들과 아무런 의미 없는 농담이 뒤섞여 있다. 그런데 아이들의 얘기를 듣다보면 가슴이 싸해진다. 왜냐면 아이들의 얘기 속에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한 달 수입 걱정, 학벌, 학연, 지연의 부족으로 인한 자포자기의 심정이 팍팍 와 닿는다. 그런데 엔딩 크레딧에 보니 이 영화의 각본에 출연한 학생들의 이름이 올라간다. 아이들이 직접 자기들의 언어로 대사를 만들어서 그렇게나 현실성 있게 다가왔구나 싶다. 아무튼 윤성호 당신은 아무래도 천재 아니면 또라이야.
다섯 번째, 김태용 감독의 <달리는 차은>
<달리는 차은>은 다섯 작품 중 가장 많은 지지를 얻고 있으며, 결론적으로 말해 <가족의 탄생> 속편으로 이해해도 좋을 작품이다. 실제 육상선수인 전수영이 맡은 차은은 가난한 어촌 마을에서 가장 유망한 육상선수이다. 그런데 갑자기 학교 육상부가 해체되고 다른 학생들은 코치를 따라 서울로 전학을 갔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차은은 학교에 그냥 남는다. 차은은 그저 달리고 싶을 뿐이다. 차은의 환경을 보면 무뚝뚝하고 폭력적인 아버지에 필리핀 출신의 새엄마, 이복 동생이 있다. 차은을 좋아하는 영찬은 차은의 집에 놀러왔다가 엄마를 보고는 학교에 소문을 내 차은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 모든 암담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의 탈출을 감행한 차은과 차은을 따라 온 엄마는 짧지만 소중한 동행을 하게 된다.
인권 문제라는 게 기본적으로 인간과 인간이 맺는 관계라고 한다면 <달리는 차은>은 그런 규정에 가장 적합한 영화일 것이다. 특히 가출하기 위해 영찬에게 돈을 달라고 하는 차은이 영찬에게 “너 나 좋아하지. 좋아하는 사람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가슴이 얼마나 아리든지. 그 말을 할 때 달빛에 반사된 차은의 얼굴을 약간 위에서 클로즈업한 화면도 정말 인상적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결말은 좀 엇나간 듯 보였다. 차은과 엄마가 몰래 들어간 새벽의 공설운동장에서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임을 확인한 채 끝나지 않을까 했던 영화는 갑자기 점프 컷으로 대회에 출전한 차은의 모습을 비추며 막을 내린다.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영화 관람 이후에 김태용 감독의 지인으로부터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사실은 차은의 엄마가 운동장에서 필리핀의 전래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엔딩을 만들었다고 한다. 정말 감동적인 엔딩이었는데, 뒤늦게 그 노래가 외국의 한 음반회사에 저작권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곳에 문의해보니 국내에서만 상영시 500만원, 외국에서 상영시 1500만원의 저작료가 들어간다는 통보를 해왔다고 한다. 전체 제작비 7,000만원에서 그러한 저작료를 지불할 여지가 없었기에 눈물을 머금고 엔딩을 바꿔야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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