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관 무겁게 짓누른다.. ★★★★
너무 쉬운 게임 같았다. 토요일, 엄마 대신 나오는 노인네를 윽박질러 돈과 보석만 자루에 담아 자리를 뜨면 끝이었다. 가게는 보험에 들어 있기 때문에 부모님이 피해를 보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단순한 계획’(<심플플랜>)의 실타래가 조금 꼬이기 시작하자 마치 나비효과처럼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그렇게 되고 나서야 앤디(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말이 귀에 맴맴 돌기 시작한다.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결코 빠져나갈 길은 없다”
영화의 첫 장면은 마치 포르노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킬 정도로 아주 강렬한 정사장면으로 시작한다. 첫 장면에서부터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별로 친절하지 않다.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동일한 과정을 세 사람의 위치에서 바라보고 나서야 전체적인 그림이 완성되는 식이다. 그 세 사람은 바로 아버지 찰스(알버트 피니), 첫째 아들 앤디, 둘째 아들 행크(에단 호크)이며, 첫 장면에서 정사를 하고 있는 남녀는 앤디와 그의 부인 지나(마리사 토메이)다.
영화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에서 가장 편히 감상할 수 있는 장면은 처음 정사 장면이 유일하다.(그래도 모호하긴 하지만) 이는 마치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 30분 동안의 천국’인 것이다. 곧바로 끔찍한 사건을 보여준 영화는 시간과 기준을 오가며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 나간다. 시간과 기준을 오간다는 건 이런 식이다. ‘행크-강도 3일 전’ 등의 부제가 붙은 부분은 말 그대로 행크의 3일 전을 보여주며, 곧바로 ‘앤디-강도 당일’ 이런 식으로 옮겨 다닌다. 영화는 강도 사건을 처음에 보여주고 행크와 앤디의 며칠 전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들이 어떤 사정에 빠졌고, 어떻게 이 범행이 계획되었으며, 어떻게 실패하게 됐는지를 설명해준다. 강도 사건 이후로는 찰스의 시점도 추가해서 점점 파국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워나간다.
그런데 시점과 시간의 교차가 단순히 강도 사건을 흥미롭게 재구성하기 위해 사용된 것은 아니다. 세 명의 시점과 시간이 교차하면서 보는 관객은 이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 감춰진 비밀과 비극의 단초들을 알 수 있게 된다. 즉, 앤디의 부인 지나는 앤디만이 아니라 행크와도 몰래 연인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으며, 앤디의 어린 시절은 아버지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일종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자리 잡고 있다. 정말 비극적인 건 어머니가 사실상 아들들의 손에 쓰러진 후 비로소 아버지는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을 건넸다는 것이다.
단순한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후 두 형제의 상황은 점점 비극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행크가 범행을 위해 데려온 죽은 잡범의 아내는 깡패 오빠 덱스(마이클 섀넌)를 데려와 1만 달러를 내 놓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한다고 협박하고, 심지어 아버지는 지지부진한 경찰 수사에 질려 직접 범인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영화는 주제에 걸맞게 시종일관 객석을 무겁게 짓누른다. 가벼운 웃음조차 허용되지 않는 이런 분위기는 약간은 과장된 듯한 음악 효과로 인해 더욱 배가된다. 이제 영화는 후반부로 들어와 세 명의 시점 교차를 중단하고 일직선을 달리듯 내달리기 시작한다. 그 마지막 종착역에 목도하게 되는 찰스의 결단은 거의 숨이 멎는 듯한 충격을 던져 준다. 아무리 흉악하고 죄를 지었다고 해도 가족은 용서할 수 있다고 믿는 일반적인 믿음을 이 영화는 거부한다. 가족의 가장 큰 적은 가족 내부에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 무엇보다 놀란 건 이 영화가 시드니 루멧 감독이 83살의 나이로 만든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 나이에 영화를, 그것도 2007년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받은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에 경외감이 솟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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