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모친에 대해 가지는 애정에 대한 심리학 용어로 유명한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 이야기가 있다. 오이디푸스가 태어난 후 태양의 신 아폴론은 오이디푸스의 아버지이자 테바이의 왕 라이오스에게 ‘친아들의 손에 죽을 운명’ 이라는 예언을 했고 라이오스는 그 예언을 피하기 위해 오이디푸스를 내다버린다. 그 후 친 부모인 라이오스에게 버림받고도 살아나 다른 사람이 친 부모인줄 알고 자라온 오이디푸스는 ‘친아버지를 죽이고 친어머니를 범하는 운명’ 이라는 신탁을 듣고 그 운명을 피하기 위해 부모 곁을 떠나지만 오이디푸스가 그의 친 부모라고 믿었던 그들은 오이디푸스의 친 부모가 아니었으며 그가 떠나 정착한 곳은 결국 그의 진짜 조국인 테바이였다. 오이디푸스는 실수이긴 하지만 친 아버지 라이오스를 죽이고 당시 테바이에 벌로써 내려진 스핑크스를 물리치고 왕위에 올라 어머니를 아내로 맞게 된다. 시간이 지나 오이디푸스와 어머니 사이에 아이들까지 생겼을 때 그들은 예언자에 의해 예언이 실현되었음을 알게 되어 어머니는 자결하고, 오이디푸스는 눈을 멀게 되는 결말을 맞게 된다. 그들의 기구한 운명은 그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테바이에 내린 저주에 의해 정해져 있던 것일 것이다. (테바이 건국 당시 아레스에 의해 저주가 내려졌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이것 또한 내가 내 인생에 대해, 그리고 살아가는 이 세계에 대해 안다고 믿는 것과 실제로 아는 것의 차이임을 알 수 있다. 이 이야기에서 안다고 믿는 사람은 오이디푸스와 라이오스, 즉 사람이며 실제로 아는 것은 신일 것이다. 오이디푸스 부자(父子)는 그들에게 주어진 운명을 알고 있다고 믿고 피하려 하지만 결국 주어진 ‘매트릭스’ 안에서 결국 운명대로 ‘그렇게’ 된다. 영화 매트릭스와 비교해 보자면 그들은 네오와 트리니티, 모피어스와 같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매트릭스 내에서 자신들에 주어진 운명을 피하려 한다. 하지만 그 행동 또한 그들에게 주어진 ‘그렇게’ 되는 프로그램의 일부일 뿐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그들의 운명을 위해 ‘그렇게’ 행동한 것이 된다. 매트릭스의 주인공들이 ‘매트릭스’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것을 깨기 위해 빨간 약을 선택하고 훈련하고 싸우는 것 또한 그들에게 주어진 운명일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네오가 트리니티를 처음 만나기 전 항상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컴퓨터 앞에서 밤을 새우고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찾는 것 또한 주어진 운명적 세계에서 진짜 세계를 운명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나는 잠들기 전에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누워 있다 보면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세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내 몸의 작은 세포 하나. 그 작은 세포 하나에도 또 다른 세계가 있을지 모른다는 아주 작은 세계에 대한 생각도 해봤고 지금 내가 살아가는, 우주의 끝조차도 모를 정도로 큰 이 세계 또한 어쩌면 또 다른 차원의 세계의 일부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그렇게 매트릭스의 매트릭스의 매트릭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정말 끝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살아가는 자체의 이유에 허무함을 느낄 때도 있다. 내가 열심히 공부를 하고 과제를 하고 꼭 그런 것 뿐이 아니라 내가 하는 모든 선택들이 결국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닌 이미 내가 그렇게 할 운명 이라면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들어 할 이유가 있을 까 하고 말이다. 내가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네오가 모피어스와 함께한 쿵후 대련, 고층건물 건너뛰기와 같은 훈련들도 의미가 있을 까 하고 생각이 들었다. 과연 네오와 그의 친구들이 빨간 약을 먹음으로써 알고 있는 그것은 진정으로 알고 있는 것일까? 어쪄면 그들이 빨간 약이 아닌 파란 약을 먹어 다시 매트릭스 세계로 돌아가 ‘안다고 믿는 사람’이 되었을 때 진정한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그들 또한 또 다른 매트릭스에 의해 주어진 운명을 걷고 있는 프로그램의 하나일 뿐일까..? 난 오늘도 잠들기 전에 내가 사는 이 세계에 대해 또 생각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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