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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면서도 슬픈 묘한 느와르... 킬러들의 도시
ldk209 2009-03-09 오후 4:13:56 1192   [2]
웃기면서도 슬픈 묘한 느와르... ★★★☆

 

킬러들이 활동해야 할 무대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대도시다. 그런데 수도 브뤼셀도 아닌 벨기에의 한적하고 작은 관광도시 브리주에 킬러 두 명이 스며들었다. 딱히 지시 받은 것도 없고, 할 일도 없으며, 젊은 킬러 레이(콜린 파렐)가 즐길 만한 데도 별로 없다. 반면 나이든 킬러 켄(브랜단 글리슨)은 간만에 맞보는 평화로움을 만끽하며 느긋한 자세로 보스의 연락을 기다리는 중이다. 만약 영화를 보기 전에 시놉시스를 보지 않았다고 하면, 영화의 초반부는 ‘이게 대체 뭐하는 시츄에이션인가?’라는 의문이 나올만하며, 약간은 늘어진다.

 

초반부의 늘어짐은 이 영화의 배경이자 주인공 중의 하나인 도시 브리주의 느낌을 상징하는 듯하다.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첫눈엔 멋진 도시지만, 거기서 거기인, 하루만 돌아다녀도 더 이상 볼 게 없는, 중심지의 카페에 앉아만 있어도 브리주의 모든 시민과 관광객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도시 말이다.

 

초반부의 이런 늘어짐을 메우는 것은 원인모를 레이의 신경질적 반응과 켄의 느긋함, 그리고 그 사이를 간간히 비집고 들어오는 골 때리는 유머들이다. 레이의 입에선 사사건건 욕설이 튀어 나오고, 특히 뚱뚱한 관광객에게 ‘종탑에 올라가지 말라’며 농반 진반의 시비를 거는 장면에선 킥킥거리는 웃음이 터지는 동시에, 도대체 이 영화의 정체는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만 깊어져간다.

 

영화는 중반부에 들어서서 대주교 암살 때 ‘킬러들의 규칙’을 어긴 레이의 결정적 실수가 드러나고, 이를 이유로 보스 해리(랄프 파인즈)가 켄에게 레이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긴장과 속도감이 높아진다. 비로소 우리는 왜 레이가 이런 심심한 브리주에 와서 마음 편히 쉬지 못했으며, 켄에게 미술관의 그림(히로니무스 보스의 ‘최후의 심판’)을 보며 ‘결국 킬러들이 가야 할 지옥의 세계’ 운운한 이유를 알게 된다. 죄를 지은 인간들의 죄책감은 킬러들이라고 해서 피해갈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인 것이며, 사람을 죽이는 직업인 킬러들에게도 선한 본성은 남아 있는 것이다. 특히 이와 관련해 가장 인상 깊으며, 가장 긴장감이 높아지는 장면은 레이를 죽이기 위해 총을 들고 벤치에 앉아 있는 레이의 뒤로 접근하는 켄과 자신의 실수로 괴로워하던 레이가 자살하기 위해 총을 머리에 대는 장면이 만나는 순간이다.

 

<킬러들의 도시>는 2009년 아카데미 각본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 비록 수상은 못했지만, 영화를 보면, 왜 각본상 후보에 올랐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촘촘하게 엮여져 있다. 이를테면, <킬러들의 도시>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한 명 한 명이 허투루 쓰이는 데가 없으며, 적절한 자기 몫이 끝난 후 의미 있게 퇴장한다. 레이가 영화 촬영장에서 만난 아름답지만 위험한 여인 클로이(클레망스 포시)는 레이가 비로소 브리주라는 도시에 정을 붙이게 하는 계기가 되는 동시에, 총의 입수와 영화의 결정적 마무리를 가능하게 해 주는 난쟁이 배우(분명 피터 딩클라지 같은 데, 여기저기 정보를 뒤져봐도 보이질 않는다)와의 연결고리가 된다. 심지어 레이와 클로이의 식사 중 시비가 붙는 관광객의 존재는 레이가 브리주를 떠나지 못하게 발목을 잡는 역할을 담당한다.

 

레이 역을 맡은 콜린 파렐이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분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배우들의 연기도 이 묘한 블랙코미디이자 느와르, 갱스터 등 잡탕 영화의 매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나는 개인적으로 죄책감에 시달리는 콜린 파렐의 연기도 좋긴 했지만, 켄을 맡은 브랜단 글리슨의 연기가 더 눈에 들어왔다. 일부 영화평론가들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브래드 피트 대신에 콜린 파렐이 올랐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긴 했지만, 그것보다는 브랜단 글리슨이 남우조연상 후보에는 올랐어야 되는 것 아닌가 싶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분량은 짧지만 원칙에 목매다는 보스 해리 역의 랄프 파인즈 역시 이름에 걸맞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아무튼 영화 광고처럼 킬러들의 액션은 별로 없지만, <킬러들의 도시>는 곱씹을수록 괜찮은 의외로 진지한 블랙코미디물이며, 영화를 보고나면 영화에 대한 호불호와는 관계없이 벨기에의 브리주란 도시를 가보고 싶다는 마음은 분명히 들것이다.

 

※ 클로이 역을 맡은 클레망스 포시를 보자마자 분명히 다른 영화에서 봤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어디서 봤을까? 집에 와서 찾아보니 <해리 포터와 불의 잔>에서 프랑스 보바통 마법학교 대표로 마법대회에 참가한 플뢰르 델라쿠르. 소설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플뢰르 델라쿠르는 론의 형과 결혼해서 시리즈 마지막까지 볼드모트 및 그의 추종자들과 맞서 싸우는 역을 맡는다. 당분간 계속될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계속 볼 수 있게 되기를.

 

※ 영화의 원제인 <In Bruges>와 한국어 제목 <킬러들의 도시>는 분위기에서 너무 판이하다.(테리 길리엄 감독의 <브라질>이 한국에서 비디오로 출시되었을 때 제목이 <여인의 음모>였다. 대체 왜 그렇게 제목을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항간엔 <여인의 음모>의 음모를 다른 의미로 해석해 야한 영화를 연상하고 빌렸다가 실망했다는 농담이 떠돌기도 했다) 게다가 한국에선 이 영화가 마치 대단한 총격전이 펼쳐지는 말 그대로 킬러들의 액션이 난무하는 것처럼 광고하는 통에 액션 영화를 예상하고 극장을 찾은 사람들의 원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심지어 ‘내 인생 최악의 영화’라느니 하면서. 물론 문화는 개인의 취향이 가장 크게 선호도를 좌우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름 괜찮은 영화가 광고로 인해 욕을 먹거나 하는 걸 보면 괜히 마음이 언짢긴 하다. 아무튼 한 명이라도 더 극장에 오게 하기 위해 약간의 과장 광고를 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인정해줄 수 있지만, 마구잡이 편집으로 원작을 훼손한 건 도저히 이해하지도, 용서하지도 못하겠다. 이러니 편집되어 훼손된 한국 개봉 버전의 영화를 보느니 외국 영화는 차라리 불법 다운로드 받는 게 낫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것 아니겠는가.

 


(총 0명 참여)
prettyaid
잘읽었어요^^   
2009-06-26 17:29
jhee65
확실히 제목은 좀   
2009-06-06 11:30
powerkwd
잘 읽고 갑니다 ^^   
2009-05-28 13:32
ldk209
고맙습니다.. ^^   
2009-03-21 22:15
bsbmajor
항상 최고의 리뷰를 써주시는 ldk209님 ^^   
2009-03-15 15:32
dreamgirl79
공감가는 글이네요...^^
정말 제목은 좀 아니다 싶어요~
다른 관객들도 낚였다고 어찌나 욕(?)을 해대시던지...   
2009-03-13 09:00
yeon1108
내용이 궁금하네요 ^,^   
2009-03-1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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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들의 도시(2008, In Bruges)
배급사 : 시너지
수입사 : 플래니스 / 공식홈페이지 : http://www.killercit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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