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화려함은 오늘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될 수 있다. 다만 현실 부적응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부재의 미학처럼 현실도피적일 수도 있다. 그것은 결국 현실 속에서의 슬픔과 고독, 더 나가서 비극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과거의 뒤안길이 현실의 인간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은 역설이다. 왜냐 하면 과거는 환상만을 낳고 있으니까.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인간은 현실 속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며 그것만이 만족한 삶을 지탱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미키 루크의 자서전적인 영화라 할 만한 the Wrestler는 인생 전체를 관조할 수 있도록 이끄는 마력이 있었다. 잘 나갔던 나이 먹은 레슬러 선수, ‘랜디’는 이제 그냥 그런 소시민, 아니 한 물 간 사람으로 생활한다. 과거의 영광은 잊지 않고 있었고 몇몇은 그런 과거를 기억하고 향수하고 있는, 하루하루를 간신히 연명하고 있는 사나이일 뿐이다. 아이들과의 즐거운 장난도 마다 않지만 그는 월세가 밀려 자신의 집 밖에서 자야만 했고 어디 일자리 없을까 해서 Mart Manager에게 구걸하듯 Part-time job을 얻곤 한다. 그런 그의 생활에서 자주 있지 않은 레슬링 대회는 그나마 자신의 영광을 기억하게 하고 또한 관객을 만나게 되고, 자신과 함께 몸을 맞댄 동료들을 사귀고 만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레슬링 시합은 비록 퇴락한 선수일망정, 그에겐 유일한 즐거움과 안식을 얻는 장소이다. 비록 사전조율은 하지만 격렬한 몸싸움과 예기치 않은 위험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다. 이런 영광된 과거의 장소와 소시민적 삶이 랜디에게 공존하고 있었다. 마음은 레슬러지만 몸, 즉 현실은 그냥 그런 중년층이 바로 그다.
한 물 간 레슬러인지 그는 역시 한 물 간 스트립댄서인 ‘캐시디’와 각별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저 그런 그녀 역시 언제나 한 발 물러선 곳에서 그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사랑하고 싶어도 서로간의 주변 여건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기에 그냥 그런 관계로만 지내고 마는 것이다. 형편 없는 환경을 가진 자들간의 연결은 그렇게 쉽지 않은 것인가 보다. 어느 것도 이젠 마음대로 되지 않은 랜디는 과거의 미키 루크와 전혀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한 철이 지나버린 뛰어났던 영웅의 말로는 그저 그렇게 가고 있었다.
이런 기막힌 상황에서 격렬한 레슬링은 그에게 육체적 치명타를 가한다. 힘든 노구를 이끈 평범하지 못한 한 인간에게 심장의 이상을 주었고 결국 은퇴를 종용하게 됐다. 즉, 이젠 그의 평범치 않은 인생 중 그에게 유일한 희망이 되어 준 레슬링을 포기하도록, 그래서, 다른 인생을 살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그는 조용히 그것을 수긍한다. 그래서 그는 다른 행복한 삶을 살아가려는 욕심을 부리게 된다.
그 때부터 그는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보려 한다. 그것을 위해 싱글맘과 인간적 상처로 허약해진 캐시디의 모든 것을 함께 짊어지겠다는 약속과 함께 사랑을 적극적으로 하려 하고 잊혀졌지만 마음 한구석에 잠재해 있던 딸과의 인생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딸을 만나 사죄를 하고 새로운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보이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Part-time worker이지만 일과 생활에서의 즐거움도 찾으려 한다. 그는 은퇴자로서의 소시민적 삶을 찾으려는 머나먼 길을 가려는 것이다. 그리고 혼자만의 인생이 아닌 더불어 함께 하는 삶을 살고자 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려는 마음을 다졌고 노력했다.
하지만 순조로운 것은 없었다. 약속을 어긴 이유로 딸과의 관계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고 함께 힘든 인생을 살고자 했던 여인 역시 종잡을 수 없는 변덕으로 분노만 치밀어졌다. 그리고 그나마 일하고 있는 직장에서의 노동은 과거와 현실의 갈등만을 촉발시켰다. 그가 새로운 행복을 찾고자 했던 곳, 어디에서도 그는 안식은커녕 문제만 초래하고 말았으며 그는 더욱 외롭고 힘들어만 갔다. 과거의 영광을 극복하고자 선택한 곳들이 도리어 자신에겐 불행만 안겨 주고 만 것이다. 그는 현실을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이 될 수 없음을 확인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자 마음 먹는다. 어차피 어디 갈 곳도 없으니까. 그래서 다시 돌아간다. 과거의 레슬러란 영광의 세계로.
현실 속에서의 행복은 쉽지 않다. 다만 노력할 뿐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 많은 사람들은 노력만큼의 행복은 물론 희망조차 꿈꾸기 힘들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더욱 외롭다. 그 원인이 소외든 대비 없는 미래를 살던 행복을 위한 해결이 현대인들에겐 너무 힘들어 보인다. 이게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본 모습이다.
우린 그저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런 흡족하지 못한 생활에서 우리들이 꿈꾸는 행복은 안타깝게도 주변에 있지 않고 환상, 혹은 망상에 있는 것만 같다. 랜디가 자신의 꿈을 아무리 현실에서 찾으려 해도 파편화되고 분자화된 인간 세상에선 찾기 힘든 것처럼 현대인 역시 마찬가지의 선택만 강요당하고 있다. 그래서 일에 취하기도 하고 괴이한 일에 탐닉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해결책은 너무 먼 곳에 있다. 인간의 따뜻한 감정을 찾기 힘들어 버린 지금 우리에게 오직 환상만이 행복을 찾는 길일 수밖에 없는지 의문이다. 하지만 다른 선택이 보이지 않는다. 랜디가 레슬링으로 간 이유를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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