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용이 담겨있으니 원치 않으시면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보통 사랑하는 연인 혹은 결혼한 부부라는 애정 관계는 둘로 정의된다. 남녀, 남남, 여여...성별이 어찌됐건 두사람만의 관계라고. 거기에 한 사람이 더 추가되면 우리는 흔히 그것을 '삼각관계'라고 부른다. 어느 배우가 말하길 자신은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갈등요소인 인물을 '고춧가루'라고 부른다더라. 이와 이 사이에 낀 고춧가루말이다. 이렇듯이 '한쌍에 낀 또다른 하나는 모든 것을 불편하게 만든다'라는 게 진리였건만 이 영화는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라는 것을 아기자기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소 미화시켜서.
영화 [키친]에는 세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순수하고 맑고 한없이 사랑스러운 여자, 안모래. 자유분방한 방랑벽과 천부적인 요리 감각을 지닌 프랑스 교포, 박두레. 한 여자에게 지붕과 담장처럼 포근하고 든든한 남편, 한상인. 이 영화는 언뜻 보면 '아내가 결혼했다'를 떠올리게 한다. 한 여자가 양손에 하나씩 쥔 두명의 남자를 도저히 놓을 수가 없어 안절부절하는 내용이니까. 하지만 이 영화는 '아.결'에 비하면 동화같다. 그러면서도 어찌보면 더욱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어릴 때부터 줄곧 함께 지내온 남자 상인과 이른 결혼을 해 지금까지 그의 아내로 살아온 모래는 연애다운 연애라는 것을 상상한 적도 없이 살아왔다. 그러다 감정에 솔직하고 때문에 순수하게 달려드는 두레에게 한순간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전쟁과 사랑은 방심하는 순간에 불쑥 우리의 인생속에 끼어들어버리니 말이다. 모래는 자신의 마음이 편하자고 남편에게 다른 남자와 관계한 사실을 털어놓는가하면 두레를 피하는 듯하면서도 자신이 그를 좋아하고 있다고 끊임없이 티를 낸다. 나쁘게 말하면 꼬리 아홉 달린 여우중에 여우이고, 좋게 말하면 때가 묻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새하얗게 이기적인 여자, 모래는 어느 순간 두 남자의 애정과 질투속에 놓이게 된다.
어릴 때부터 키우다시피 한 모래를 아내로 맞이하고 지금까지도 그녀를 지켜주고 보살피는 남자, 한상인. 어느덧 아내와 자신은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남매처럼 보여질 정도로 연인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시작부터 사랑이 아니라면 아닌 모래가 의지하고 자신은 그녀를 지탱해주는 이 관계. 평온한 삶속에서 이것이 사랑이냐 아니냐 애써 반문하지 않던 상인의 앞에 최대의 갈등요소 박두레가 등장하면서 그는 아내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지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어린 시절 프랑스로 입양된 천재 프렌치 쉐프 박두레. 자신이 너무나 좋아하는 상인을 쫓아 평생 오지 않을 것 같던 고국으로 돌아오고 이어 자신이 너무나 좋아하는 그의 아내, 모래에게 운명같은 사랑을 느끼게 된다. 보는 내내 '진짜 들키려고 작정했구나'싶게 모래에게 들이대는 면모를 보여준다. 그 가볍고 별 의미없어 보이는 말들이 참 매력있고 마음에 걸리게 하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을 지닌 남자다.
삼각관계는 항상 그 말미에 선택을 강요당한다. 누구를 더 사랑하는지 그래서 누구를 선택하고 누구를 버릴 것인지를 말이다. 그런데 동시에 두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사실은 그런 선택이 불가능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상인이 주는 안정감과 두레가 주는 설레임은 동일한 가치를 지녔지만 전혀 다른 것이니 말이다. 상인과 두레를 하나로 뭉쳐서 다시 반으로 쪼개 가지는 것이 아니고는 모래에게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근데 현실적으로 한 여자를 사랑하는 두 명의 남자...이 세명이 한집에서 알콩달콩 살 수 있을까? 대답은 '글쎄...'다. 감독도 그 점은 보여주지않는다. 하지만 [키친]에서처럼이라면 '못살것도 없지' 싶기도. 물론 나는 여자이고 그래서 이 3인용의 사랑이 나름 만족스러운 결혼의 대안으로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남자들 입장에서는 여자가 신민아 정도의 매력녀라도 '절대 안돼'라고 응수 할수도 있을테니.
필자는 이 영화속의 두 남자가 결혼이라는 과정에서 오는 애정의 변화를 앞뒤로 잘라놓은 것 같다고 느꼈다. 설레임과 모험심을 불러일으키는 두레와의 사랑은 결혼 전, 혹은 막 사귀기 시작한 시점이고 안정감과 가정이라는 틀에서 가족의 일원으로 공유하게 되는 상인과의 사랑은 결혼 후, 혹은 결혼한 후 오랜 시간이 흐른 즈음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 둘을 모두 공유하며 평생을 살고 싶어서하는 여자들의 심리...물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주연배우들이 모두 역할과 꼭 맞게 캐스팅되어서 특별히 연기력을 의식하면서 보지는 않았다. 꼭 맞는 옷을 입은만큼 영화 자체에 몰입하기 쉽게 해주었고 여자 감독 특유의 섬세함과 예쁜 화면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리고 주지훈이 불어를 해서 그런가 '앤티크'의 냄새가 난다 했더니만 역시나 제작에 참여한 민규동 감독님^^; '앤티크'는 꽤나 혹평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만 [키친]은 워낙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전반적으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DVD가 나오면 다시 보고 싶은 영화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