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영화를 처음 접한 것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막 직장생활을 시작한 스물 다섯무렵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왕가위의 영화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표를 예매해서 극장에 갔고, 영화를 보고나서는
그냥 장만옥의 미모와 음악, 분위기에 취해 역시 왕가위야, 어쩌고 하는 감탄사를 친구와
주고받으며 극장문을 나섰다.
그때는 정작 내용은 별 기억에 남지 않았고, 거의 이해도 하지 못했다.
끼사스 끼사스 끼사스 하는 음악과 양조위의 담배연기, 비에 젖은 채로 나란히 걷던 양조위와 장만옥의
뒷모습 등이 영화가 남긴 인상의 전부였다.
그런데 서른을 넘긴 나이에 이 영화를 다시 보니
이제는 왕가위의 다른 어떤 영화보다도 내 마음에 가장 와 닿는다.
금성무의 풋풋한 짝사랑보다 양조위와 장만옥의 이루지 못한 로맨스가 더 애잔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내가 벌써 불륜이라는 소재에 공감할 나이가 되었다는 뜻일 게다.
사랑이란 어느 날 갑자기 불쑥 찾아온다.
그것은 결혼을 했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의지대로 다스릴 수 없는 게 사람의 감정이다.
감정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기느냐 마느냐는 개인의 선택이겠지만.
어쨌든 그런 감정의 떨림을 나도 경험했고, 다행히 그 경험은 내 안에서만 머물렀다.
'마음으로 그 여자의 벌거벗은 몸을 상상했다면 너는 이미 간음을 한 것이다.'라는 성서의
구절 앞에서 약간 찔리지만, 결과적으로, 표면적으로 나는 결백했다.
나에게 그런 전과가 있어서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장만옥과 양조위의 감정에 완전히 몰입됐다.
그들의 떨리는 시선, 망설임, 어색한 침묵 등의 의미를 내가 너무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어서 신기했다.
하지만 영화 속의 그들도 나처럼 착해서 지난 사랑을 마음에 묻고 둘 다 자기 위치로 돌아갔다.
'불륜'이라는 게 어느 선까지를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배우자가 아닌 이성과의 사랑을 불륜이라고 말한다면 이 영화는 역시 불륜에 관한 영화다.
하지만 질펀한 섹스 영화가 아닌, 사춘기 소년소녀처럼 떨림을 간직한 중년들의 사랑을 그린 순정물 같은 영화다.
불륜영화를 이렇게 산뜻하고 애잔하게 만드는 걸 보면 왕가위라는 감독도 참 때묻지 않은 사람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륜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불륜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그리고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은 불륜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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