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된 삶에는 진정성이 없다....
우리나라의 담배인삼공사도 그렇지만, 특히 미국 등 세계적인 담배 기업들의 매출은 해가 갈수록 떨어지는 추세다. 당연하게도 건강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회 풍조는 더욱 강화될 것이기에 이들 기업의 돈벌이는 과거에 비해 악화되리라는 건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그러자 이들 기업들은 매출액 유지 및 이익 확대를 위해 청소년 또는 아직은 건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저개발 국가를 주요한 타깃으로 삼고 있다. 젊고 멋있고 건강한 남녀 모델을 기용한 광고라든지 온갖 판촉물들이 청소년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제3세계 국가에서 거대 담배 회사의 담배는 거의 공짜나 다름없이 헐값에 판매되고 있다. 헐값에 담배가 판매되고 있다는 건 담배가 중독성이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일단 담배 맛에 길을 들이게만 하면 판로는 확보된다고 보는 것이다.
지금은 끊은 지 꽤 됐지만, 나도 한 때는 하루에 두 갑 정도를 피웠던 골초였다. 담배가 없으면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는 주장을 서슴없이 했고, 잠들기 직전과 일어나자마자 피는 담배 한 개비의 꿀맛을 인생 최고의 미덕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랬던 내가 담배를 끊은 건 건강 때문은 아니고, 고작 담배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는 내가 추접스러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미리 계획하고 끊은 것도 아니고, 어느 날 그냥 안 피기 시작한 게 벌써 몇 년이 흘렀다. 그래서인지 주위 사람들이 물어보면, 나는 담배를 끊은 게 아니라 꾹 참고 있는 거라고 얘기하곤 한다. 어쨌거나 안 피긴 하지만 무조건적인 건강주의자들보다는 차라리 담배를 피우는 게 더 행복한 삶에 가깝다는 생각은 한다.
담배업계 로비회사인 담배연구소의 부소장이자 대변인인 네일러는 어디를 가나 사람들로부터 경멸에 찬 시선을 받으며 지내지만 화려한 말빨 하나로 그 모든 불리한 상황을 헤쳐 나가는 사람이다. 그의 입심은 대단해서 담배로 인해 폐암에 걸린 청소년의 이해를 얻어 내기도 하고, 금연을 위한 TV 토론회의 분위기도 자기 것으로 바꿔 놓기도 한다. 그가 거의 유일하게 만나 소통하는 친구들도 무기회사와 주류회사의 로비스트로 근무하고 있다. 셋의 입장은 비슷하다. 대중들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받지만 궤변과 회사의 의뢰를 받은 연구결과를 토대로 관련 산업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들이 회사를 위해 활약을 하면 할수록 이는 곧 죽음과 직결된다. 이 영화가 상당히 유쾌한 분위기를 깔고 진행되지만 그 바탕에 서려 있는 죽음의 그림자로 인해 그다지 유쾌할 수만은 없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는 TV로 생중계된 국회 청문회에서 예의 그 입담을 과시, 난국을 돌파하고 위기의 담배 업계를 구한 히어로가 된다. 그리고 새로운 분야인 핸드폰 업계의 대변인이 되어 핸드폰 통화가 뇌에 부작용을 미친다는 어떠한 연구결과도 나오지 않았음을 역설한다. 외견상 그는 분명히 성공한 로비스트이며, 화려한 삶을 구가한다. 그러나 관객은 그를 동정하지도 않으며, 그의 성공한 삶을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삶이란 근본적으로 진정하지 않은 거짓된 삶이기 때문이며, 선의 미덕이 없는 삶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정식 개봉하지 않은 <흡연, 감사합니다>는 1994년에 출판된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저예산 영화치고는 아론 액커트, 로버트 듀발 등 쟁쟁한 출연진을 자랑하며, 미국에서 소규모로 개봉했다가 입소문을 타고 개봉관을 확대해가며 흥행에도 성공한 바 있다. 미국 사회뿐만이 아니라 위선으로 점철된 현대인의 삶에 대한 수준급의 풍자 코미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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