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남녀차별을 하지 않는다....
어쩌면 축구보다는 축구를 잘 하는 오빠를 사랑했던 소녀는 오빠가 떠난 빈자리를 스스로의 힘으로 메워보려 한다. 그러나 자신만을 빼고는 주위 모두 두 손 두 발 들고 반대하는 형국이 펼쳐진다. 약간은 남녀 차별주의자로 비춰지는 아버지는 두 말할 필요 없고, 자신을 좋아하는 축구부 주장은 가장 강력한 반대자이며,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조차 레즈비언 같다며 운동하는 걸 반대한다. 갈 곳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소녀의 진심을 이해한 아버지가 매서운 코치로 돌변하고, 소녀는 축구부 입단을 위해 고단한 훈련을 감내한다.
여성이라는 편견을 뚫고 축구선수로서 능력을 인정받는 한 소녀의 이야기라는 스토리를 놓고 보면 영락없는 <슈팅 라이크 베컴>이며, 여자가 남자 축구부에 들어가 활약한다는 점만 놓고 보면 <쉬즈 더 맨>이 연상되기도 한다. 그런데 실제 <그레이시 스토리>는 두 영화와는 아주 딴판인 영화다. 우선 그레이시는 천부적 자질을 가진 선수가 아니며, 일종의 노력형 선수다. 그리고 그레이시가 노력하는 과정은 꽤 자세히, 사실적으로,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보통의 스포츠 영화들이 훈련 부분을 축소하거나 경쾌하게 처리하는 것과는 명백히 다른 길을 걷는다. 그리고 그레이시가 극복하는 난관의 종류도 딴판이다. 코미디 영화인 <쉬즈 더 맨>은 별개로 하더라도, <슈팅 라이크 베컴>의 인도 소녀와는 달리 그레이시에게는 변변한 조력자 한 명 없으며, 죽은 오빠의 자리를 대신하고, 전직 축구선수였던 아버지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더 절박함이 느껴진다.
절박한 소녀의 몸부림과 훈련 과정의 고통이 절절히 느껴지다 보니, 이쁘장하고 어린 소녀가 주인공인 스포츠 영화치고 분위기도 밝고 경쾌하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어둡고 진중하다. 그리고 이 영화가 배우 엘리자베스 슈가 한 때 남자 축구팀에서 뛰면서 경험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으며, 교통사고로 숨진 큰 오빠의 모습이 영화에서 죽은 오빠에 반영되어 있는 실화라니 더욱 그런 느낌이 강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실제 주인공인 엘리자베스 슈는 이 영화에서 그레이시의 어머니로 출연한다)
사실 이 영화는 너무나 전형적인 틀을 따라 움직이는 영화다. 특히 그레이시를 못살게 구는 축구부 주장 등의 캐릭터는 너무 작위적이라 거부감이 들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전형적 스포츠 영화, 성장 영화를 맛깔나게 만들어낸 감독(데이비스 구겐하임-앨리자베스 슈의 남편, 사랑하는 아내 얘기인지라 역량이 더욱 발휘되지 않았나 싶다)의 연출력에 박수를 보내며, 공개 오디션에서 뽑혀 결코 쉽지 않은 배역을 소화해내며 신선한 매력을 선보인 칼리 슈로더의 더 큰 성장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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