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06 용산CGV 15:40 민선이
왕가위가 왔네...... 화면에 언제나 붉은 색을 섞어 넣어 술도 잘 못 마시는 내가 적포도주를 마신 것처럼 알딸딸 취하게 하는 내 감성성의 페르소나 같은 사람.
윤동주도 기형도도 백석도. 김광석도 유재하도 이상은도. 신경숙도 배수아도 하루키도.
말없이 떠난 (아직 연인은 아닌)여자와 열심히 본분을 다하며 기다리는 남자. 설정은 [중경삼림]과 같지만 어느새 배우들이 바뀌어 있다. 모래빛 머리털과 따뜻한 눈빛의 주드로와 피속에 인더스 강의 덤덤함이 흐르는 (연기보다는 노래가 100배 더 좋은)노라 존스로. 거기다 타고난 노름꾼 나탈리 포트만과 사랑을 잃은 상실감이 나른하게 흐르던 레이첼 와이즈까지.
하지만 배우가 동양인이든 서양인이든, 백인이든 흑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노인이든 아이이든 간에 "왕가위사람들"은...언제나 기다릴 줄 알고 작은 것에도 소중한 의미를 만들 줄 알고 그리고 상처주지 않도록 돌아올 줄 안다. 후회하고 울면서도 벌떡 일어나 지구를 반 바퀴쯤 돌고...돌아올 줄 아는 나의 "왕가위사람들".
칸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되어 아주 혹평(호평이 아니라 혹평)을 받았다는데, 사람들은 이런 미덕 말고 왕가위한테 도대체 무얼 원하는 걸까. 오히려 [2046]때 느껴던 위화감 없이 초심으로 돌아가 즐겁게 영화를 찍은 왕가위를 본 것 같아 나는 참 반가웠다.
이 영화를 보고 났더니 나에게도 추억이 잔뜩 생겼다. 내것은 아니지만 내것인 것 같은 추억들이 잔뜩 생겼다.
1) 매일 불루베리 파이를 한 판씩 먹어 치우던 일
2) 손님들이 카페에 (일부러) 놓고 간 수많은 열쇠들을 유리병에 넣어두고 거기에 담긴 사연을 하나씩 해 주던 일
3) 자기가 손수 만 담배를 내밀던 카페의 남자를 만났던 일
4) 차를 사려고, 사실은 날 버린 연인을 잊으려고 죽어라 일하던 일
5)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잘 빠진 신형 잭을 가지라던 당차지만 여린 포커꾼 여자를 만났던 일
6) 경창관이며 알콜중독자인 남편을 그렇게도 미워했으면서 자살한 그가 남긴 외상술값 800달러를 대신 갚고 그 영수증을 오래도록 보드에 꽂아 달라고 부탁하던 쓸쓸한 여자의 뒷모습을 잠자코 쳐다보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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