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고>에서 천재성을 발휘하였지만 오스카 트로피 하나에 만족해야 했던 코엔 형제가 이번엔 제대로된 사건을 터뜨렸다. 1월에 WGA(미 작가협회)파동으로 인해 기자회견 방식으로 진행되었던 65회 골든글로브 상에서 각본상과 남우조연상(하비에르 바르뎀)을 거머쥐고, BAFTA 감독상, 미 작가조합의 각색상까지 쥐었다. 이제 남은 것은 오스카 트로피 뿐인데, 여태껏 좋은 작품들을 많이 발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아카데미와는 인연이 없었던 코엔형제. 하지만 이번 8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8개 부문 노미네이트를 마크함으로써 정말 제대로된 사고를 친 것이다. 더욱이 아카데미가 그 권위에 비판을 받아오던 중(작년부터 성찰의 기미가 보였지만) 올 해 처럼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갖춘 작품들이 즐비한 가운데 이뤄낸 노미네이트라서 더욱더 빛이 난다고 할 수 있겠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바로 밑에 글 쓴 이의 말처럼 절대 쉬운 영화가 아니다. 5번을 봤지만 아직도 '이거다'란 파악에 대한 확신을 못가졌다.(물론, 내가 머리가 나쁜 것일지도..ㅎ)
영화는 토미 리 존스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조부때부터 보안관을 해왔고, 그 땐 권총도 갖고 다니지 않았으며..여기서부터 영화의 주제의식은 영화 곳곳에서 계속해서 나열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얼핏 스토리만 쭉 따라가다보면 영화가 주는 포인트를 놓치기 쉽다. 왜? 스토리만 따라가기에도 스크린은 보는 이의 얼을 쏙 빼놓으며 시종일관 극적 긴장감을 타이트하게 잡고 있기 때문이다. 조쉬 브롤린(느웰린 모스 役)(아메리칸 갱스터의 부패한 형사역이나 B급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플래닛 테러를 봤을 듯, 거기 출연)과 하비에르 바르뎀(안톤 쉬거 役)의 대결구도는 극이 종반부를 향해 달려가는 동안 한시도 한 눈 팔 기회를 주지 않는다.
선도 악도 아닌 평범한 용접공이던 모스가 얼떨결에 발견하게 된 거액의 마약자금, 그리고 그것을 목숨을 걸고 지킬만큼 가지고 싶어하는 욕망과 집착. 인간인지 '인간백정'인지 구분이 안가는 냉혈의 살인마 안톤 쉬거. 두 인물의 쫓고 쫓기는 영화의 주요 스토리만 해도 충분히 관객을 몰입시키기엔 충분하다. 여기에서 바르뎀의 연기는 단연 빛난다. 얼굴에 분장을 한 듯 하얀 분칠을 하고, 자신만의 철학으로 조용히, 천천히 사람들을 위협하는 모습은 공포영화에서도 쉽게 느끼지 못하는 '공포' 그 자체이다. 죽기 전 사람들은 모두 '이럴 필요까진 없잖아you don't have to do this'라고 말을 하지만, 자신만의 철학에 철저한 그에게는 그냥 마지막 가는 길의 유언장일 뿐이다. 조용히 '다들 그렇게 말하더군always said like that'이라고 말 할 뿐이다. 실제로 하비에르 바르뎀은 영화 촬영 내내 자신의 씬이 없으면 혼자 컨테이너에 들어가서 '쉬거되기'에 열중했다고 한다. 그의 연기에 박수를 보낼 뿐이다.
하지만, 원래의 주제의식을 전달하는데에도 이 영화는 너무나 친절하다.
쉬거의 협박이나 살인의 피해자가 되는 인물들을 대부분 혼자있는 노인들로 설정함으로써 노인들에 대한 모습을 인생의 경험자이자 선행자라기보다 사회적 약자, 그리고 그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낙후성(80년 텍사스를 배경)을 지적한다. 또한 항상 살해당하는 노인들에게 쉬거는 .얼마나 여기 살았냐, 여기서 계속 살았냐'는 식의 질문을 함으로써 한 곳에 정착하여 오래 살며, 삶에 점점 순응해가는 노인들에 대하여 간접적으로 비춰주었다. 또한 토미 리 존스(보안관 에드 톰 벨 役)의 행동과 대화를 통하여 곳곳에서 변해가는 노인에 대한 관념과 '노인'으로 비춰지는 모습들을 나열함으로써 주제의식 전달에 있어 충실함을 보여준다.
4번이나 봤지만, 생각하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더 보고싶은 그런 영화, 코엔 형제의 연출력과 표현력, 주제 전달력 및 배우들의 열연이 모두 더해진 2008년 최고의 명작 중 하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이다.
놓치면, 정말 후회한다.
(사실, 시원한 결말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대중의 관객성향에는 조금 맞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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