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우연히 어제 <비열한 거리>를 보고 오늘 <수>를 보았다.
<비열한 거리>와 <수> 모두 몸뚱아리로 부딪혀 싸우고 죽고 죽이는 영화다. 밑바닥 남자들의 피냄새 나는 이야기이다. 두 영화는 같은 듯 다르고 어느 부분은 비슷하다.
<비열한 거리>는 한국 깡패영화의 계보 안에 있다. 약간의 잔재미가 달라졌을 뿐이지 기조는 같다. 우선 깍두기머리 형님들이 양복입고 나온다. 그들은 주로 술집 룸에서 양주를 마시며 적당히 코믹하면서 무식하다. 사투리를 쓴다. 믿었던 동생이 배신하고, 큰 형님을 대신해 손을 더럽힌 주인공은 결국 배신에 배신을 당하고 장렬히 죽는다. 가난한 가정사가 거론된다.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고있는 어머니와 세상물정모르는 여동생, 철거촌에서 쫓길 상황에 쳐한 가족사가 발목을 잡는다. 사랑하는 여인과 이루어지지 않는다. 깡패 조직에 발을 들이지만 않았다면 정많고 착하고 순진무구하기 짝이 없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싸움은 나르시즘을 물씬 풍긴다. 인물들의 액션과 그들의 표정, 음악, 연출은 모두 폭력의 미학과 나르시스트 주인공을 표현하기 위해 안달한다.(철 지난 홍콩 느와르의 그늘 아래 있는 한국 조폭영화들중 하나다.) 영화의 중요한 키워드는 '희생'과 '배신'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름답게, 비장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수>는 일본에서 생활한 감독의 영향이 작용한 듯, 한국에서 찍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느낌이 다르다. 우선 조폭들의 모습. 코믹함이란 찾아볼 수 없다. 술집 룸싸롱 씬 없다. 컷이 바뀔때마다 터프하게 담배 피우는 깡패새끼들 나오지 않는다. 욕설 없다. 정에 얽히고 설켜들어가지 않는다. 넘버투와 넘버쓰리간의 보이지 않는 서열싸움 없다. 조직안에 어린 아이들이 포함되어 있다. 칼, 도끼, 망치등 도구 사용이 많다. 가난한 가족사에 기댄 신파 없다. 엄청난 양의 피, 폭력성을 보여준다. 스토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잔가지를 치지 않고 직선으로 움직인다. 주인공 '수'의 캐릭터를 보여주고 그의 목표가 무엇인지 거론되자 영화는 끝까지 그 한가지만을 위해 달린다. 나르시즘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이 철인이나 불사조처럼 당최 죽지 않는다는 끈질김만 보인다. 영화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복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끈질긴 복수다.
조인성과 지진희의 캐릭터를 본다면? 조인성의 캐릭터엔 여자들의 로망과 남자들의 로망이 모두 총 집합 되어있다. 게다가 얼굴작고 키 크고 섹시한 조인성이 아닌가. 그는 배려심있고, 속깊은 사내이면서, 주늑들지 않는 능글거림도 가지고있고, 식구들을 지 몸뚱아리처럼 지키는 배짱이 있다. 캐릭터로만 보자면 조폭이 아니라 코믹멜로에도 잘어울릴 사내다. 그에 비해 지진희를 보자. 농담이나 쉰소리가 통할것 같은 남자가 아니다. 터프해보인다 싶으면 차갑고 냉정하다. 식구들을 거느리고 다리를 털면서 걷는 남자가 아니다. 그는 혼자 행동하고 자신만의 공간, 혼자만의 아지트를 가진 사내다. 연민의 곁조차 주려 하지 않는 남자, 혼자 칼을 갈며 노랠 흥얼거리는 남자다. 다른 장르에서 살아남으려면 좀비가 나오는 호러정도나 가능하다.
상업성에선 조인성이 위고, 신선함에선 지진희가 위다. 연기에 있어선 조인성이 물만난 물고기처럼 쩍쩍 달라붙는 느낌이었다면 지진희는 순간순간 흐름을 놓치는 경우가 보인다. 마약중독자를 위협하는 건물옥상씬이 그렇고, 강성연과의 모든 씬이 그렇다. 순간 연극을 하듯보이다가, 너무 딱딱하게 굳어있거나 오버한다. 쉬운 캐릭터는 아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감독은 '수'가 쉴 시간을 주지 않았다. 한번이라도 웃을 수 있는 순간도 없고, 따뜻함이나 평온함을 느낄 찰라도 없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차가운 심장을 유지해야 했다. 어려웠을 것이다. 강성연의 설정자체도 문제다. 그녀는 이상한 캐릭터다. 필요할 때 나타났다 그렇지 않을 땐 감쪽같이 없어져준다. 두 사람 사이에 신파의 기운이 없는 것은 좋았는데 그러던 둘의 관계가 갑자기 키스를 나누는 사이가 되어있을 때 놀랐다. 이 부분에서 장르의 통속성이 튀어나올 필요가 꼭 있었을까. 죽을 수도 있는 싸움을 앞둔 남자와 키스하며 "죽지마"라고 말하는 여자 캐릭터가 꼭 필요했을까. 유치함이 유치함으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복수나 배신이란 사실 말처럼 우아하고 비장한 것이 아니라 유치한 것이다. 그걸 유치하지 않게, 무지개떡처럼 색을 입혀 그럴듯 하게 쪄내는 것이 조폭, 느와르 영화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의 밑바닥에 있는 그 유치한 덩어리를 잘라내서 어떤 단면을 보여줄 것인가. 그 굴절과 반사와 영향력과 진동은 무엇인가.) 재능이 뛰어난 감독들은 그걸 능숙하게 다루고, 드러낼 것이고 그렇지 않은 감독은 어느 순간 헛점을 보이게 된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최양일 감독의 영화는 초반에 날 휘어잡았다. 말이 많지 않고, 촬영 스타일이 통일되어있고, 영상적이다. 그에 비해 유하감독의 영화는 초반부터 철거촌에 병든 엄마를 보여주었다. 유치한걸 유치한 방법으로 드러낸 것이다. 무엇보다 비가 올때 영화감독 친구와 함께 있는 조인성의 공간을 보여준 이~쁜 영상-빗줄기그림자가 벽에 투둑투둑 떨어지고 부드러운 조명이 조인성의 얼굴을 보여줄 때 정말 싫었다. 촬영감독과 유하감독은 영화를 시퀀스별로 혹은 통으로 스타일을 잡지않고, 비가 올땐 이쁘게 보여주자구에 동의한 것이다. 그러면서 조인성의 감정을 유치하게 드러냈다. 영화 <수>는 마지막 씬에서 날 지치게 했다. 그 전에 느낀 감정을 모두 까먹을 정도로 지겨웠다. 지진희가 너무 오래 살아남았거나 그가 상대해서 싸워야 할 깡패들이 너무 많았다. 결국 그의 복수와 살인은 유치함을 드러내고 말았다. 최양일 감독 자신이 어느 시점에서 멈춰야 할지 잃은 듯 보였다. 비장한 싸움으로 묘사되는 것보다는 나았다. <달콤한인생>보다는 지긋지긋한 <수>가 낫다. 개인적으로.
사람의 큰 감정들을 다루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 속엔 그만큼의 뒤틀림과 표현 불가능함과 논리적이지 않은 미묘함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함정에 빠지지 않고 보여줄 것인가. 어떻게 건너뛰고 갈 수 있을까.
|
|
|
1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