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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얼마나 시간이 남았나요? 더 재킷
hepar 2008-01-05 오후 2:00:11 1402   [5]

스포일러 있습니다.

여기 죽음이 예정된 사람이 있습니다. 불치의 병에 걸렸거나 시한부 판정을 받은 거라면 기적에라도 매달려 볼 수 있을텐데, 이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미리 보게 됩니다. 십수년 뒤의 미래로 날아가 그의 묘비를 보게 되는 거죠. 그럼 그가 현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요? 바로 죽음을 원인을 찾아서 그걸 없애는 거겠죠. 그래서 그는 미래로의 알 수 없는 여행을 시작합니다. 자신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

 하지만 죽음은 지척에 있었고 그에겐 시간여행을 할 충분한 시간이 없었습니다. 좀 의아하죠? 시간 여행을 하는데, 시간이 없다니 말예요. 하지만 그건 이 사람의 시간여행 방법이 좀 특이해서 그렇습니다. 영화 '백 투더 퓨처'처럼 직접 시공간을 뚫고 미래로 건너가는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영혼이 미래로 건너가 육신을 갖게 되는 거거든요. 육신이 현재에 있으니 시간여행과 상관없이 현재의 시간은 계속 흘러가게 되는 겁니다. 써놓고 보니 참 말이 안 되죠. 그치만 그렇게 따지면 백 투더 퓨처는 말이 되던가요. 시간 여행의 새로운 방법론(?)을 개발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봐주죠 뭐.

어쨋든, 그는 자신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누구도 죽음의 이유를 몰랐거든요. 아니, 말해 주지 않았던 거죠. 결국 그는 자신의 운명에 체념하게 돼요.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거죠. 그렇게 체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몇 가지가 있었을 거예요.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자신이 죽음으로써 다른 이들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겠죠. 내가 죽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이가 행복할 수 있다면. 이건 너무 진부해서 유치할 지경이지만 어쨋든 그는 그 길을 택하게 됩니다.

다른 이유가 있다면 아마 지금의 그는 잉여의 삶을 사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예요. 그는 1992년, 걸프전쟁의 와중에 머리에 총상을 입고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적이 있었답니다. 그는 그걸 자신의 첫번째 죽음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러니까 그 첫 번째 죽음 이후의 삶은 원래 내 것이 아닌 삶이다. 뭐 이런 거죠. 그래서 아마 자신을 희생하는데 오래 주저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는 그 잉여의 삶이 다른 이들의 운명을 바꾸는데 쓰여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그의 운명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마지막에 그는 자신이 바꾸어 놓은 미래의 모습,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한 삶을 보고서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습니다. 그렇게 영화는 끝나죠.

이 영화 어딘가 모르게 '나비 효과'랑 많이 닮았지요. 포스터도 그렇지만 시공을 넘나들면서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의 운명을 바꾸려고 한다는 내용도 비슷하네요. 이 영화가 2005년에 만들어졌는데 우리나라에서 뒤늦게야 개봉하는 이유도 조금은 알 것 같네요. 2004년 말에 나비효과가 개봉해서 엄청나게 흥행을 했었잖아요. 수입사에서 이 영화가 나비효과의 아류 정도로 여겨지는 걸 염려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자세히 보면 나비효과와 이 영화는 상당히 다르지요. 나비효과의 주인공이 과거의 조작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바꾸고 싶어했다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현재의 조작을 통해 미래의 모습을 바꾸고 싶어합니다. 또, 나비효과의 주인공이 운명과 대결을 펼치다 결국 자신의 존재 자체를 지울 수 밖에 없었다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미리 운명과 타협하고 자신을 죽이는 대신 다른 이들의 운명을 바꾸는 방법을 택하게 되죠. 두 영화 모두 운명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들을 보여주지만 그 해석은 조금씩 다른 것 같네요. 

이 영화가 독특하게 읽히는 것은 앞서 말했듯, 현재를 바꾸기 위해 과거로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바꾸기 위해 현재의 조건들을 변화시키려 한다는 겁니다. 이건 어찌보면 태도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사람들은 종종 그러잖아요. 지금의 내 모습이 불만족스럽게 느껴지면 과거로 돌아가 잘못된 선택들을 바로잡는 상상을 하곤 하죠.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아니까 이내 후회하게 되고 자책하고 주저앉고. 그렇게 넋두리만 하면서 살아가잖아요. 그게 보통의 삶이 아니던가요. 그러면서 정작 지금의 현실에는 눈 돌려버리기도 하는, 참 어리석은 게 인간이잖아요. 오죽하면 이런 책이 나왔겠어요.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과거의 모든 것들이 지금에 와서야 의미를 갖게 되는 참 서글픈 인간의 숙명 같은 게 아닐까 싶어요.

게다가 이 영화, 미국에 대한 은유가 들어있네요. 영화 초반, 걸프 전쟁이 배경으로 나오지요. 주인공이 첫번째 죽음을 맞는 것도 바로 걸프 전쟁의 수습기간이었구요. 그는 반침략을 가장한 침략 전쟁에서 겨우 살아나지만 이듬해인 1993년에 결국 다시 죽게 됩니다. 그런데 그가 건너간 미래, 2005년이겠죠, 그때는 어땠나요. 맞아요. 바로 그 땅에서,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죠. 이번에는 민주주의를 가장한 침략전쟁이었죠. 미국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네요. 바로 주인공과 같은 나이의 젊은이들이 지금도 사막의 전장에서 수없이 죽어가고 있잖아요.

영화 마지막 대사 기억나세요? 두 주인공을 비춘 마지막 장면이 하얗게 페이드 아웃된 뒤에 이런 대사가 나오죠. '우리에겐 얼마나 시간이 남았나요? (How much time do we have?)'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으려면, 그것들이 우리를 망치지 않게 미리 준비하려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충분한 걸까요? 아니, 우리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기나 한 걸까요? 영화는 그렇게 묻고 있는 것 같아요. 영화처럼 미래로 달려가 우리가 행한 것들의 결과를 직접 볼 수는 없겠지만 한 번쯤은 그걸 상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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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small
글쿤요   
2010-03-14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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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재킷(2005, The Jacket)
제작사 : Mandalay Entertainment / 배급사 : 롯데쇼핑(주)롯데엔터테인먼트
수입사 : (주)코리아스크린 / 공식홈페이지 : http://www.thejack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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