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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진 감독의 대표작들을 들여다보면 일종의 공통된 코드가 있다. 복수의 주인공들의 얽히면서 왁자지껄한 소동극을 펼친다는 점, 곁가지를 두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달려간다는 점, 소동극 속에서 폭력과 욕설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는 점, 아무튼 웃음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책임진다는 점 등등.
이런 공식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귀신이 산다]부터였다. 이것은 김상진 감독과 늘 함께였던 박정우 작가와의 결별(?)도 작용했을 것이고, [광복절 특사]에서 슬슬 나타나기 시작한 김상진식 코미디의 동어반복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변화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차승원의 원맨쇼가 전부인 [귀신이 산다]의 완성도는 김상진 감독의 전작들보다 결코 뛰어나다 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이후 김상진 감독은 무려 3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3년 동안 김상진 감독은 박정우 작가와 다시 뭉쳐 [형제는 용감했다]를 준비했으나 잠정 보류된 상태이고, 강우석 감독이 떠난 시네마서비스의 경영에 더 신경을 썼다고 한다. 그러다 강우석 감독이 다시 경영일선에 복귀하자 현장으로 돌아왔고, 그 복귀작으로 [권순분여사 납치사건]을 택했다. 일각에서는 이 영화를 “재기작”이라 부를 만큼 [귀신이 산다]의 실패와 오랜 공백 후에 나온 작품에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지사. 김상진 감독은 처음으로 원작(일본소설 [대유괴])이 있는 시나리오를 맡아 자신의 색깔을 덧칠한다.
[권순분여사 납치사건]에 더욱 관심이 가는 것은, 이 영화의 설정과 출연진에 있다. 기가 막힌 국밥으로 2,000억 원대 재산을 번 권순분 여사(나문희). 인생의 실패로 자살 직전까지 내몰린 궁상맞은 3인방이 권순분을 납치해 몸값을 요구한다. 그러나 권순분의 자녀들은 어머니의 납치에 무관심하고, 이에 분노한 권순분 여사는 적극적으로 납치극에 가담하여 자신의 몸값을 받아주겠다 한다. 그 몸값이 무려 500억 원.
김상진 감독의 영화답게 [권순분여사 납치사건]도 기가 막힌 상황극이다. 깡패 같던 녀석은 선생님이 되고 모범생은 조폭이 된 인생역전극 [신라의 달밤], 탈옥수가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려는 소동극 [광복절 특사] 등 그의 영화는 무언가 뒤틀린 상황 속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인질범이 자신의 몸값을 받아주겠다는 [권순분여사 납치사건] 역시 마찬가지. 게다가 그 권순분 여사를 연기한 나문희의 존재감까지 맞물리면서 이 영화는 상당한 기대를 불러 모은다.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는 어리버리한 3인조 도범(강성진), 근영(유해진), 종만(유건)이 권순분 여사를 납치하는 내용이고, 후반부는 자식들의 무관심에 분노한 권순분 여사의 지략으로 500억 원의 몸값을 얻어내는 내용이다. 전반부는 김상진 감독 특유의 웃음이 살아있는 소동극이고, 후반부는 마치 [오션스 일레븐] 등의 범죄영화를 보는 것처럼 구성되어 있다. 특히 열차를 이용해 몸값을 얻는 대목은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영리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대신 웃음은 지양하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김상진 감독의 전작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주유소 습격사건] 등의 소동극처럼, 이유 없이 때려 부수는 난장판 속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뽑아내던 박정우 작가와의 콤비 플레이를 이 영화에서 기대해서는 안 된다. 대신 김상진 감독은 이 영화를 명절 시즌에 맞추어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는 착한 드라마에 방점을 찍는다. 부모를 홀대하는 자식들을 이야기하면서 그러한 속내가 조금 더 직설적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권순분여사 납치사건]은 추석 시즌에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팝콘무비로서의 본분만 충실히 한다. [열혈남아]에 이어 다시 한 번 스크린에서 인상 깊은 존재감을 심어준 나문희의 발군의 연기, 군데군데 심어놓은 가벼운 웃음들은 그 본분 속에서 건질 수 있는 몇 가지 장점이다. 반면, 리듬의 변화 없이 선하게만 흘러가는 정형적인 드라마와 감독 고유의 색깔이 묻혔다는 것은 단점이다. 만약 처음부터 김상진 감독 특유의 코미디를 기대했다면 후자가 더 크게 다가올 것이고, 명절 시즌에 가볍게 즐길 팝콘무비를 기대했다면 전자에 공감이 갈 것이다. 어느 쪽에 방점을 찍든, 후반부를 좀 더 편집하고 리듬의 강약을 조절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결과물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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