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자신의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다고.. 말하는 세상. 그 만큼 인심이 흉흉하고, 무엇엔가 의지하기엔 너무나도 가치관이 다양해진 세상. 이 세상 속에 매일 전달되는 뉴스에는 훈훈하고 가슴 따뜻한 소식보다는 범죄로 얼룩진 소식들이 우리 귀와 눈을 희롱해 왔다. 그 모든 것에 대한 원인을 밝혀내기가 어렵기에 사람들은 그저 나와는 상관없는 일들로 치부하였고, 관심 조차 가질 생각을 못했다. 각박해진 세상.. 그 속에 작으나마 피어나는 '아름다운 마음'들이 있기에 아직은 이 세상이 살만하다고 이야기 한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 는 어쩌면, 위에 서문과는 동떨어진 의도의 영화이다. 무슨, 노숙자 문제 해결 감동 영화도 아니거니와 청소년 가장 돕기 캠페인성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서문을 위와 같이 장식한 이유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의 연결 고리가 이 세상에 주어진 무형의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동이라 하면, 여러분들은 무엇을 떠올리는 가.. 남녀간의 이루어 질 수 없는 애틋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 (ex. 러브 어페어), 남을 돕는 것에 자신의 생명도 아낌없이 주는 이야기 (ex. 페이 잇 포워드), 가족간의 따뜻한 이야기 (ex. 댄서 인 더 다크, 빌리 엘리엇) 답은 헤아릴 수 없다. 각자에겐 그 취향이 있으므로.. (필자는 위에 적은 모든 영화에 눈물을 뿌렸다 - 여린 마음에서가 아니라, 정말 무언가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에)
<뷰티풀 마인드>는 통속의 전기 영화이다. 노벨상에 빛나는 미국의 대 수학자 (미국 얘기 나왔다고, 안경 쓴 모습으로 바라보지 말자 - 절대 팍스 아메리카성 영화 아니다) '존 포브스 내쉬 주니어 (이하 존 내쉬)'에 대한 50년의 삶을 아우르는 영화이다. 그 같은 천재가 끝까지 영원히 부귀 영화를 누리는 천재로 남지 못하고, 좌절과 고통을 겪고.. 다시금 인간 승리를 보이는 그저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가 되는 과정을 3자의 입장에서 가장 잘 표현했다. 그렇게 될 수 있던 것은 이 영화가 타 전기 영화처럼 극 사실에만 치중을 하여 오버랩을 시킬 수 있는 (흔히 말해 전지 전능한 신처럼 만들어 버리는 경우) 것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논픽션을 가미하였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싶다. 오히려, 논픽션 때문에 더 오버성이 강하지 않냐고 의문을 제기 하시는 분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그 논픽션이 쓰였던 것은 위대한 수학적, 경제학적 업적을 부각 시키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니라.. 바로 '존 내쉬' 의 괴짜 행동에 대한 차별성을 위해 쓰인 것이다. 예를 들면, 수학적 공식을 창문에 써 놓구 연구를 한다든지, 평생 연을 맺게 되는 '알리샤'를 만나.. 프로포즈를 하는 순간까지의 순진무구한 모습들이다.
194X년, 20대 프린스턴 대학원에 시험도 보지 않고, 우등으로 들어오는 '존 내쉬 (러셀 크로우 분)'.. 그는 일반인들과는 너무나도 평이하게 대학원 생활을 한다. 그의 단 하나 목적은 바로 자신만의 '오리지널 아이디어'를 발견하는 것. 기숙사 창문을 칠판 삼아 수학적 논리를 계산하고, 친구들 놀 때도 무언가에 매달려 수학적 연산을 하는 그이다.
결국 '존 내쉬'는 150여년을 끌어온 경제학 법칙을 단번에 뒤바꾸고, MIT 교수로 재직하면서 천재의 탄탄대로가 눈 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여느 사람처럼 그에게도 사랑이 다가온다. '존 내쉬'의 강의를 듣는 물리학도 '알리샤 (제니퍼 코넬리 분)'는 '존 내쉬'와 너무나도 독특한 연인이 되고, 결혼을 한다. 얼마 후, 국가에서 일생 일대의 부름을 받게되고 최고의 암호 해독가가 되는 '존 내쉬'에게 시련이 닥쳐온다. 현실과 꿈이 구별 안되게 되고, 과대망상에 정신 분열이 그를 에워싼다. 결국 그는 평범하다 못해, 더 깊은 나락에 떨어진다.
일반적으로, '천재'라 불리 우고 '신동'이라 불리 우는 사람들이 끝까지 성공 신화를 이끌어 갔다는 보도를 접한 바가 거의 없다. 왜, 어째서 그렇게 되지.. 문제를 내기 전, 답을 알고.. 신과 친구를 해도 무방할 꺼 같은 그들이 왜 그렇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존 내쉬' 역시 끝까지 성공신화를 보장 받은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는 그렇게 되지 못했다.
그들은 바로, 이 문제를 간과한 것이다. 모든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학문적으로 증명이 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문제 조차도 수학 공식에 대입하고, 물리 법칙에 적용하며, 살아왔다. 그들에게 모든 문제는 지성에 의해 판단되어야 하는 것이었고, 결국 그들에게 따뜻한 감성은 없어진 것이었다. 그렇기에 '존 내쉬'는 사람들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게 되고, 늘.. 자신의 안에 갇혀 있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왕따가 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이다. 사랑과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조차도 경계를 늦출 수 없는 그들의 마음속은 지금 살아가는 세상과 별 다를 바가 없음은 너무나도 가슴 아픈 사실이다. 발버둥 치고, 이겨내려 해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과 너무나 매치 업이 잘된다.
'가끔은 하늘을 보자' 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잊고 살아왔던 것들. 분명 있었지만, 또한 없어지는 않는 것들에 대한 모든 것에 가치를 부여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도 때로는 필요할 거 같다. 세상은 바로 그렇게 사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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