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있습니다
5.18은 현대사에 가장 큰 사건 중에 하나이다.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지 못할 무자비한 사건 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5.18사건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알고 있는 만큼 모르는 사실도 많다. 영화는 관객이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닌, 모르고 있는 사실을 들추어 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엔, 그 영화는 '용감한'영화가 된다. 그러나, 역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을 재현함으로써, 실화가 주는 힘을 관객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화려한휴가'는 바로 그 후자를 택했다. 실화가 주는 힘으로 영화를 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굉장히 잘 만든 영화다. 그러나, 분명히 단점도 존재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을 꼽자면 바로 '대중성'이다. 심도있게 다루면 한 없이 무거워지고 가볍게 다루면 한 없이 경박해지는 것이 실화인데, 이 영화는 딱 그 중간을 적절하게 유지하고 있다. 영화적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인봉과 용대가 바로 이런 상업성을 보여주는 캐릭터이다. 그리고, 곳곳에 등장하는 시가전 장면은 이런 상업성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시가전 장면이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하는데, 바로 너무 상업적인 면을 보여준 감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관객의 감정을 격하게 만든다. 즉, 가슴이 벅차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영화안에서도 보여지는데, (아마 감독도 영화를 찍을때 감정이 격해지지 않았나하는 생각도든다.) 병조(장애인)의 시체가 거리에서 보여지고, 대학생이 연설을 하는 장면이나, 민우가 도청 옥상에 올라가 기를 내리는 장면등은 영화 자체가 너무 감정적으로 빠지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비록, 비극적인 사건이지만 카메라는 언제나 객관적이여야 한다. 카메라는 관객과 영화를 이어주는 매게체이자 감독의 눈이다. 감독의 눈이 눈물에 젖은 채로 있었기 때문에 이런 장면들이 나오지 않았나싶다.
박하사탕에서 나온 유명한 장면을 떠올려보자. 광주로 투입된 김영호(설경구)가 여학생을 실수로 죽이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매우 덤덤하다. 헨드헬드도 아니다. 주변은 너무나도 고요하고, 설경구의 절규만이 들린다. 이런 장면이 바로 객관적인 장면인 것이다. 비록, 박하사탕은 '인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담았고, 화려한휴가는 '사건'자체를 담았기때문에 이런 차이가 존재했다고 본다.
이제 몇 장면을 분석해보자. 영화의 처음 시작은 푸른 논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공수부대가 광주로 파견될 때 농부는 논에서 잡초를 뽑아내고 있다.(물론 벼가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 뽑았을 것이다.) 감독이 이 장면을 처음과 공수부대 파견때 넣은 이유가 무엇일까? 벼는 문학적으로 '민중'을 의미한다. 유명한 이성부의 시 '벼'에서도 벼가 민중이라는 의미로 해석되지 않는가? 영화는 처음부터 '힘에 굴복하지 않는 강인한 민중'을 보여주고 전개한다. 이는 매우 효과적인 암시라고 할 수 있다.
또, 민우와 진우가 티격태격하는 장면과 그 뒤에 이어진 장면을 보자. 진우가 기타를 사달라고 하면서 민우의 돈을 가져가는 장면에서, 두 사람은 집 안을 돌아다니며 서로를 잡으려 한다. 그 때, 카메라는 집 밖에 있다. 그런데, 집에 있는 창문에 쇠창살이 쳐져있다. 바로, '갇혀있다.'라는 느낌을 주기 위함이다. 광주는 군인들에 의해 완전히 '갇혀있는'상황이 아니였던가? 그리고, 바로 이어서 신애와 진우(신애 아버지)가 나오는 장면을 보자. 그 장면에선 문이 활짝 열려진채로 카메라가 집 밖에 있다. 이는 이런 '갇혀있는'상황을 열어젖히는 데에 진우가 가담하고 나선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도청앞에서 군인들이 시민에게 발포하는 장면에서 애국가가 들린다. 이런 아이러니한 장면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의 구성방식이기도 한대, 그래서인지 굉장한 효과를 주었다고 생각된다. 저번에 '밀양'의 평을 쓸 때도, 비슷하게 언급을 했었던 효과인데, '밀양'에서는 슬픈 장면에 너무도 환한 햇빛을 보여주므로써, 너무도 지독한 현실에 가슴을 아프게했던 반면, '화려한휴가'에서는 시민들을 말 그대로 '개죽음'으로 만들면서 '나라를 사랑하는 노래'인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말 그대로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하여 관객들의 감정을 더욱 더 동요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쓰여진 빠른 편집과 헨드헬드 촬영도 애국가의 약간 느린 음과 반대되어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잘 전달했다.
(그러고보면 제목도 아이러니하다. 시민을 죽이러 가는데, '화려한'이라니.)
그리고 마지막장면을 보자. (바로 전 장면에선 신애가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라고 말한다.) 모든 주요 등장인물들이 나오면서, 판타지스러운 장면. 신애와 민우의 결혼식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카메라가 점점 신애와 민우에게 클로즈업하면서 아주 천천히. 매우 천천히 페이드 아웃된다. 바로 '우리를 기억해 달라'는 여운이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는데, 특히 김상경의 연기는 매우 뛰어났다. 그다지 튀지도 않으면서 캐릭터와 잘 동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주연보다 더 뛰어났던 박철민, 박원상, 나문희, 손병호씨의 연기도 매우 좋았다.
비록 격한 감정때문에 약간 불편한 감도 있었지만, 이 영화는 근래 만든 한국영화 중에 가장 잘 만든 영화로 꼽고 싶을 정도였다. 진실을 들추어내는 것은 언제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비록, 그 용기가 '화끈하게' 발휘되지는 않았으나, 이 영화는 충분히 그런 용기를 보여주었고, 또 상업영화의 틀 속에서 보여준 정치학은 나름대로 설득력 있었다.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아무도 만들지 않았던'이야기를 풀어낸 이 영화에 박수를 보낸다.
20자평 - 충분히 잘 재현해낸 5.18. 조금만 더 객관적이였으면 ...
유의사항 - 5.18이 무슨 사건인지는 알고 가시길 ...
이 장면만은 - 애국가가 울려퍼지면서 시민에게 발포하는 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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