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이 아니라 기담이다. 혹은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라, 이상한 이야기다. 1942년 경성에 위치한 신식병원을 무대로 하는 세 가지의 기이한 이야기를 엮어낸 <기담>의 제목은 일종의 선언이다. 무리한 공포를 기대하지 말라는, 무섭지 않은 것을 무섭다고 우기지 않겠다는. 세개의 이야기, 세명의 주인공, 세 가지의 비극을 (옴니버스가 아닌) 단일한 시공간 속 하나의 플롯으로 풀어낸 영화의 구조 역시 그 제목과 묘하게 어울린다. 서로 다른 목소리의 내레이션이 각각의 이야기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어줄 뿐 별다른 소제목이나 단락 구분없이 이어지는 영화 <기담>이 가장 세심하게 신경쓴 것은 이야기의 맛이기 때문이다. 학교나 병원 같은 공적 공간에 깃든 이야기들, 여름밤을 하얗게 밝도록 두런두런 이어지던 이야기들, 잠자리에서 더욱 또렷해지던 신기한 이야기들.
“제국주의가 극으로 치닫고 있었지만 안생병원 안에선 태풍의 눈처럼 고요했다.” 얼굴도 보지 못한 정혼자와 결혼을 앞둔 의학도 정남(진구)이 겪는 일장춘몽을 담은 첫 번째 이야기. 이루지 못할 사랑을 비관하여 강물에 몸을 던진 여고생의 시체가 병원에 들어오고, 시체안치실 당번인 정남은 “가장 좋은 시절을 영원히 봉인해놓은” 그녀를 부러워한다. 죽은 영혼과의 결혼식 이후, 하룻밤 꿈처럼 흘러가는 일생을 사계절의 순환 속에 표현한 시퀀스. 극한의 아름다움에 깃든 처연함이라는 정서는 일면 상투적이지만, 30분 남짓의 짧은 이야기 안에서는 효과적으로 기능한다. 아리따운 시체가 뿜어내는 음습함, 일본 공포영화을 연상케 하는 현음악의 팽팽한 긴장감 등에서는 맹목적인 충격효과를 피하려는 성실함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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