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려면 제일 먼저 갖추어야 할 조건이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바로 짜임새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영화라는게 우리네 삶의 반영이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관한 것이니 만큼 영화에서 이야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너무나도 크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맛깔나게 잘 엮어가는 솜씨 역시 굉장히 중요하다. 바로 이런 것들이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가 망하고 저예산 영화가 의외의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까닭이다.
요새들어 한국영화계에도 이야기의 힘을 잘 알고있고 이를 활용할 줄 아는 감독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봉준호, 박찬욱 등 이제는 거장이 되어버린 감독들에서부터 이름모를 수많은 신인감독들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풍>과 <한반도> 같은 영화들이 나오는 걸 보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그저 얄팍한 CG 등의 볼거리와 애국심에 호소하기에는 우리 관객들의 수준이 너무 높아져버린 탓이다. 연애에도 밀고당기기가 중요하듯 영화에도 조이고 놓고가 중요하다.
끊어질듯 끊어질 듯 팽팽하게 조여오는 긴장감 속에 갑자기 영화의 흐름을 탁~놓아버려서 일순간 웃음을 주고 다시 언제 그랫냐는 듯 팽팽한 긴장감 속으로 영화를 내모는 흐름들..<친절한 금자씨>나 <살인의 추억> <달콤한 인생> 등의 영화가 바로 이런 케이스다. 주제 자체는 참으로 심각하고 무겁지만 관객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장치들을 웃음이라는 방법으로 곳곳에 숨겨놨다. 영화 보는 내내 영화가 보는 무게감에 짓눌린 관객들에게 잠시 쉬어갈 장소로 활용된다.
그런가 하면 영화 내내 루즈하게 풀어져있다가 막판에 갑자기 팽팽하게 조여오는 영화들도 있다. 최근 크게 흥행에 성공한 <미녀는 괴로워> 등이 바로 그렇다. 영화 보는 내내 웃기다가 막판에 가서 짠~한 감동이나 생각할 거리를 주는 영화들. 혹은 팽팽하게 조였다가 놓는게 어렵다면 시중일관 조여버리거나 놓아버리는 전법도 있다.
최근에 개봉했던 사생결단이란 영화가 바로 전자에 속하는 영화다. 자칫 잘못하면 영화 자체의 무게감에 짓눌려버릴 수 있지만 이정도로 짓누른다면 정말 제대로 짓누른거다. 이런 면에서 정말 아쉬웠던건 몇 년전 개봉했던 <이중간첩> 후자에 속하는 영화의 대표주자는 아마도 <엽기적인 그녀>가 아닐까..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은 결말에 그런 감동이 찾아올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햇을 거다.
하지만 아무리 짜임새 있게 잘 만들어졌어도, 그 공을 단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바로 그 이야기를 스크린 속에서 만들어가는 배우의 역량부족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오늘 소개할 이 영화가 바로 그런 경우에 속한다.
유하감독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감독 중 하나다. 영화에 그닥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이야기의 힘만으로 영화를 이끌어갈 수 있는 몇 안되는 감독 중 하나다. 유하감독의 필르모그래피를 보자. 1990년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 2001년 <결혼은 미친짓이다> 2004년 <말죽거리 잔혹사> 그리고 2006년 <비열한 거리> 16 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감독으로서 겨우 5편만을 찍었다는 것은 명백한 태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5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주옥같다면 태업은 대업으로 인정받아 마땅할 것이다.
유감독은 저 위의 5작품의 각본과 감독을 동시에 맡았다. 감독이 각본까지 맡았다는 것은 정말 큰 의미가 있다.영화를 만들 때 남이 만들어낸 이야기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더 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에서 역시 이야기의 힘을 아는 감독이다-_-b 유감독님의 전작품을 다 보았다. 그리고 그 때마다 작품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기대 속에서 보았던 비열한 거리에는 정말 의외의 복병이 숨어있었다. 그건 바로..조인성이란 배우.
아, 먼저 인정할 건 인정하자. 이 영화는 분명 '배우' 조인성에게 있어서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간 그가 출연해왔던 영화 속에서 보여주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함으로서 그의 배우로서의 운신의 폭이 확 넓어졌고, 그를 보는 관객들의 시선도 달라졌음이 사실이다.
실제로 그는 이 영화를 위해 온 몸을 다 바쳤다. 리얼한 액션신 하며 진흙탕과 같은 조폭 세계를 떠도는 청춘의 그림자 서린 표정 연기하며..하지만...열심히 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은 별개의 사실이란거..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가끔씩 비치는 그의 선한 얼굴표정과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목소리 연기.
본인은 아마도 몇 년전 크게 히트를 쳤던 드라마 '피아노' 속 주인공을 떠올리며 연기를 했을터지만..영화 중간중간 엿보이는 클래식과 같은 영화 속 그의 착한 표정은 영화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영화 내내 거슬렸다.
혀짧은 권상우도 <말죽거리잔혹사>에선 새로 태어나게 했던 유하감독인데..조인성은 그리 다루기 힘들었던 것일까..이런 나의 생각은 영화 속 조인성의 어릴적 친구로 분했던 남궁민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워낙 영화속 캐릭터 자체가 흐리맹맹했던 지라..영화 중반가지는 별다른 열연 없이도 그럭저럭 어울렸는데, 영화 후반 절친한 친구를 배신하는 장면에서는 내공이 많이 없음을 드러낸다.
이보영 역시 영화 내내 이렇다 할 만한 임팩트를 주지 못한채 그저 흐리멍멍한 캐릭터를 흐리멍멍하게 연기했다. 영화 <타짜>에서 김혜수와 같은 아찔한 매력을 바랬던 건 나만의 욕심인걸까. 워낙 캐릭터 설정자체가 저리했던지라 이보영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겠지만..
어쨌든 나의 시선을 가장 사로잡은 것은 바로 이 배우. 진구였다. 영화 <낭만자객> <달콤한 인생>등에서 단역을 거치면서 점점 '배우'로 성장해가는 그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말 어느 영화에서나 맡은 역활을 무리없이 자연스레 소화해 내는 능력이 그 나이에 비해 굉장히 놀랍다.
그래도 오해는 말자. 영화는 상당히 잘 만들어졌고, 나의 까탈스런 배우 편력과 편견만 없으면 주연배우들의 연기도 무난한 편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와중에도 여전히 '그래도 조인성의 목소리는-_-' 이런 생각이 들지만 ㅋㅋ
유하감독의 다음 작품과 배우 진구의 다음 연기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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