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물론 생각했던 것보다 덜 힘들고 더 좋은 방향으로 갈 때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난감하고 고된 상황을 만날 때도 많다. 꽤 답답한 고3 생활이 지나면 드넓은 캠퍼스 벌판에서 여유로운 한떄를 즐길 대학생이 되겠지하고 생각했지만 막상 대학생이 되니 쉴 틈 없이 밀려오는 과제와 시험의 압박공세에 이 역시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실감하듯이 말이다. 어느 CF 카피대로, 낭만은 짧고 생활은 긴 법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이 마냥 무심하지만은 않은 것이, 이렇게 우리가 그저 꿈같은 일로만 담아놓았던 낭만을 가끔 현실로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16강 진출을 그저 꿈처럼 생각했던 우리에게 4강 진출이라는 믿기지 않는 성적을 가져다 준 2002년 월드컵 떄처럼 말이다. 영화 <눈부신 날에>는 이처럼 우리에게 꿈같은 일이 떄론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음을 일깨워 준 2002년 월드컵 때를 다시 끄집어내서, 퍽퍽한 삶 속에서 종종 우리를 가슴 벅차게 하는 "눈부신 날"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특이한 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이전까지는 퍽퍽한 삶 자체에 주로 집중했던 박광수 감독이라는 점이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둔 시기, 종대(박신양)는 투견, 소싸움 뒤에서 어두운 일에 종사하는 밑바닥 인생이지만 그러면서도 투우사라는 낭만적인 꿈을 버리지 않고 있는 남자다. 사람이 원래 환경의 동물인지라, 살아가는 환경따라 덩달아 까칠한 성격을 가진 그가 어느 날 야바위판 바람잡이를 하다가 철창 신세를 지게 되는데, 그런 그에게 보육원 교사인 선영(예지원)이 갑자기 찾아온다. 그러고는 한다는 얘기가 종대에게 사실은 아이가 있다는 것. 좀 있으면 아이가 입양되는데, 그때까지만 아이 소원대로 좀 보살펴 달라는 선영의 부탁에 종대는 금시초문인지라 완강히 거부하지만, 유치장에서 꺼내주는 건 물론이요 보육비까지 별도로 주겠다는 제안에 귀가 솔깃한 종대는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받아들인다. 그리고는 그의 컨테이너 집으로 오게 된 아이 준이(서신애). 종대에겐 영 달갑지 않은 아이지만 준이는 그런 종대가 아빠라면서 그저 좋기만 하단다. 워낙에 까질했던 종대는 그런 준이의 모습 앞에 점점 삶의 변화를 맞이하기 시작한다.
근래 한국영화에서 성인배우와 어린 배우가 함께 호흡을 맞추는 경우가 속속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 영화도 그런 경우다. 다행히 두 남녀 주인공인 박신양과 서신애 양의 호흡은 상당히 잘 맞는다. 깔끔한 외모에 거침없는 말투를 구사해 보통 이지적이거나 아니면 아주 막 사는 사람이거나 두 상반된 이미지를 넘나드는 박신양은 이 영화에서 후자 쪽을 연기하는데, 거친 그 바닥에서 사는 사람답게 쉽게 성질내고 예의도 그다지 없는 남자의 모습을 역시나 능숙하게 소화해내는 한편, 준이를 만나면서 점점 내면에 꾹 숨겨져 있던 감성적 면모를 조금씩 드러내며 결말로 갈 수록 인간미를 얻게 되는 모습도 설득력 있게 연기해낸다. 흙더미에서 마구 구르면서 살아온 덕에 성격에도 먼지가 많이 묻었지만 여전히 순수한 꿈을 갖고 있는 남자를 특유의 쭉쭉 내지르는 연기 스타일로 멋지게 보여준 듯 싶다.
요즘 드라마 <고맙습니다>를 통해 부쩍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서신애 양은 시기 상으로 이 영화가 <고맙습니다>보다 한참 전에 찍은 것임에도 여기서부터 될성 부른 떡잎의 모습을 보여준다. 보기에도 <고맙습니다> 때보다는 부쩍 어려진 모습이지만, 아이답지 않은 능청스런 대사 소화 속에서도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드러내며 웃음과 감동을 이끌어내는 모습이 여기서부터 그 재능이 제대로 빛을 발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신애 양도 연기를 성인배우답지 않게 연기를 잘 하는 덕분에 박신양과의 호흡도 참 잘 맞았던 듯하다. 더구나 박신양이 맡은 역할의 성격이 아주 어른스럽고 의젓하기보다는 대책없는 편이 강해서 오히려 어린 배우와의 연기 호흡이 정서적 차이가 별로 없이 잘 조화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 외에도 보육원 교사로서 준이를 애지중지하는 여인 선영 역의 예지원 또한 절실한 감정 연기로 기대 이상의 연기를 보여준다. 조연급 배우들인 류승수와 이정섭, 그리고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내 제대로 악랄한 모습을 드러낸 이경영의 연기도 눈여겨 볼 만하다.
겉으로 보기에 생판 모르던 상태에서 처음 만난 아버지와 딸의 사랑이라는 이야기가 특별할 것 없는 또 하나의 신파극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하지만(실제로 어느 정도 그런 면도 있다), 이 영화가 꽤 특별하게 보이는 것은 감독이 박광수라는 점일 것이다. 데뷔작 <칠수와 만수>에서부터 블럭버스터였던 최근작 <이재수의 난>, <여섯 개의 시선>의 단편들 중 한 편인 <얼굴값>에 이르기까지 그는 한국 사회에 대한 시선을 꾸준히 놓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의 영화들은 한국의 현실이 매우 농도 짙게 반영된 탓에 시종일관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곧잘 유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눈부신 날에>는 좀 다른 경우다. 그가 그동안 만들어 온 영화답지 않게, 어른과 아이의 교감, 불치병 등 대중영화에서 흔히 보아 온 요소들이 많이 들어 있어 데자뷰 현상을 일으킨다. 하지만 겉모습만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실은 속 내용도 지금까지의 박광수 감독의 작품들과는 많이 다르다.
<눈부신 날에>는 제목처럼 다분히 동화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주인공은 낡은 컨테이너에서 어줍잖은 삶을 사는 사람이지만 그가 아이를 만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삶은 한편의 동화같다. 거친 세상 속에서 마음도 거칠어졌던 그가 점차 내면의 순수한 꿈을 되찾고(투우사라는 꿈도 우리나라 사람 입장에서 얼마나 동화같은가), 결국 삶을 향한 진실한 의욕을 다시 발견하는 모습은 현실적으로 보이기 보다는 동화처럼 다소 과장되기 보이는 면이 없지 않다. 이렇게 한 인간이 정서적으로 극적 변화를 겪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지라 결말은 어느 정도 수긍하는 선에서 좀 더 나아가지 않았나 하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러한 그들의 동화같은 낭만도 철저히 현실에 천착해 있다. 종대는 투우사 중에 우리나라 사람은 본 적이 없다면서 투우사가 되기를 그 나이 될 때까지 꿈꾸지만, 그가 살고 있는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똑같은 동물 싸움이긴 하지만, 그가 생각해오던 낭만과 멋은 찾아볼 수가 없다. 소싸움장에서 돈을 받고 상대편 소를 싸우지 못하게 주사를 놓는 흉칙한 일을 하기도 하고, 투견장에서 일하며 돈을 벌기도 한다. 투우와 투견이나 위험 부담이 크고 격렬한 건 마찬가지겠지만, 이들에게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투우는 빨간 천을 들고 소를 가지고 노는 투우사의 모습에서 (물론 매우 힘들겠지만) 마치 환상과도 같은 고고한 멋과 낭만이 느껴진다. 하지만 투견장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 그저 살기 위한 처절한 혈투, 배신의 뒤에는 죽음에 가까운 보복만 남아 있을 뿐, 멋과 낭만 같은 건 사치에 불과하다.
이러한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준이도 다르지 않다. 준이의 꿈은 축구선수. 이 역시 특이한 것이, 아직 여자축구가 그리 활성화되지 못한 현실에서 준이는 여자임에도 축구선수에 대한 남다른 열망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아빠인 종대보다도 축구경기를 더 열심히 보며 선수 이름을 죄다 꿰뚫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준이의 꿈에 있어서 그가 여자라는 건 오히려 작은 제약일지 모른다. 정작 그를 묶어두고 있는 건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때까지 살 수 있을지를 의심케 하는 말 못할 사연이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들의 꿈 뒤에는 그 꿈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현실이 있어 상대적으로 그들의 어두운 삶을 부각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꿈과 낭만 속에서도 질퍽한 현실을 여전히 비중있게 다룬다는 점에서 박광수 감독다운 면모가 여전히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박광수 감독은 이런 현실을 절망으로 떨어뜨리지 않는다. 늘 실제 사건을 중시했던 그답게, 이 영화에서도 우리가 겪은 적이 있는 실제 상황을 꺼내듦으로써 절망이 아닌 희망을 제시한다. 바로 2002년 월드컵이다. 16강 진출도 할 수 있을까 의심하던 마당에, 앞서 열린 평가전에서 유럽의 강호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고, 나아가 월드컵에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4강 진출이라는 성적을 올리게 되면서 우리들은 마치 꿈과 같은 희열을 맛보았다. 이 무렵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속에서 종대와 준이도 우리와 같은 감정을 느꼈다. 모진 현실 속에서 꿈이란 그저 꿈에 불과하겠구나 하고 낙담하려던 그들 앞에 월드컵의 기적은 그들에게도 꿈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결국 그들은 아직 불씨가 죽지 않은 그들의 꿈을 간접적으로나마 이루지 않았는가.
이처럼 이 영화 <눈부신 날에>는 박광수 감독의 새삼 달라진 면과 여전한 면을 함께 담고 있는 듯하다. 구체적인 한국의 현실에 초점을 맞췄던 그답게 이번 영화에서도 2002년 월드컵이 한국인에 안겨준 정서적 충격을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도, 이야기를 매듭짓는 방식은 새삼 다르다. 이전에는 현실 속에서 좌절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여전히 현실은 만만치 않다는 진행형 결말을 제시했다면, 이 영화에서는 현실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힘을 줌으로써 제목처럼 "눈부신 날"을 맞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한 것이다. 후반부의 일종의 반전은 그 명분에 대한 이후의 설명이 다소 부족한 탓에 그저 느닷없는 수준에서 끝나는 면이 없지 않지만, 우리가 이미 경험한 적이 있는 기적과도 같았던 현실 속에서 희망을 길어올리는 감독의 모습은 우리를 흐뭇하게 한다. 우리가 이미 겪은 적이 있기에, 거기서 나온 희망 또한 아주 말도 안되는 건 아니지 않는가. 늘 현실에 천착했던 사람으로서, 박광수 감독은 현실이 우리를 참 힘들게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 무엇보다 강한 희망을 줄 수도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