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의 시선은 확장되어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김기덕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김기덕 영화가 지니고 있는 여성 폄하적 내용에는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 그것이 약육강식의 사회를 다루는 김기덕만의 독특한 방식이고, 착취와 피착취의 구조라고 하더라도 인간이 인간을 그렇게 잔인하게 다루는 방식이 편할 리 없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김기덕 영화가 지금처럼 융단폭격을 받을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단점 못지않게 장점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페미니즘 비평가들은 오직 하나의 잣대로만 김기덕 영화를 혹평한다. 김기덕 영화의 다른 것은 아예 보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페미니즘’ 영화비평을 하고 있을 따름이지, 영화비평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페미니즘 영화비평은 영화비평의 한 방법일 뿐이다. 그것은 절대적 가치를 지닌 방법론도 아니다. 단지 많은 방법론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만약 페미니즘 영화비평이 최고의 가치를 지닌 비평방법이라고 우긴다면, 그것은 그들이 그렇게 경멸하는 ‘파시스트적 페미니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페미니즘 비평가들이 김기덕 영화를 논하면서 혹평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영화에는 주체적인 여성이 등장하지 않고,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본다는 것이다. 나도 그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나 역시 그런 부분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그런데 나는 그것보다 더 원론적인 것이 궁금하다. 페미니즘 비평가들이 말하는 주체적인 여성이란 무엇이며, 그런 여성이 그려진 영화는 어떤 영화인지, 그리고 한국에서 김기덕을 제외한 다른 감독들의 영화에는 여성들이 어떻게 그려지는지, 그 영화에 대한 페미니즘 평론가들의 비평은 어떤지 궁금하다.
먼저 영화 속에 그려진 주체적인 여성은 어떤 여성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페미니즘 계열의 걸작들을 봐도 나는 아리송하기만 하다. 페미니즘 평론가들은 여성의 주체성이 살아 있는 영화를 대략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부장적 시선으로 그려지는 여성이나, 남성의 욕망이 만들어낸 수동적 여성의 욕망이 아니라 여성의 능동적 욕망, 즉 여성의 숨결이 살아 있는 영화를 말한다. 더 나아가 여성영화(Women’s Film)란 가부장적인 관습적 영화 형식을 깨고 여성을 진정한 주체로 그리는 새로운 형식의 영화를 말한다. 때문에 여기서 더 나아가 여성의 시각으로 영화 보기를 제안하기도 한다.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다. 남성 지배를 벗어나 여성의 욕망을 진솔한 여성의 시각으로 제대로 그리는 영화는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런데 조금 더 들어가보자.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영화형식을 깨고 살아 있는 주체적 여성을 그린 영화란 도대체 어떤 영화인가? 정의가 너무 추상적이며, 그것을 그렸다는 영화들도 손에 와 닿지가 않는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 어느 날 배창호 감독의 에세이를 읽다가 공감한 부분이 있다. 그는 대표적인 페미니즘영화로 인정받는 제인 캠피온의 <피아노>를 보면서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했다.
이 영화의 뛰어난 영상적 표현력과 섬세한 심리묘사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못마땅한 장면이 몇 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의 남편이 주인공의 불륜을 목격하고 그녀의 손가락을 자르는 잔혹한 장면과 피아노 연주 대가로 거래처럼 이뤄지다가 점점 진하게 전개되는 에로틱한 장면 등이다. 만약 남성 감독들이 불륜의 대가로 남편이 부인의 손가락을 자르는 장면을 묘사했더라면 강하게 비판할 것이다. 그러나 똑같은 장면을 여성이 연출했으니 그것은 남성에게 잔혹하게 학대받는 여성의 상황을 극명하게 묘사하려는 목적이었다고 이해되는 것이다. 성적인 장면도 마찬가지이다. 남성 감독이 이 장면을 그대로 연출했다면 성의 도구로서의 여성이 되는 것이나 여성 감독이 그려냈으니 그것은 여성의 성 심리의 표현이라고 말한다.(배창호, <창호야 인나 그만 인나: 배창호 감독의 영화 이야기>, 여백미디어 펴냄, 2003, 216쪽)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이 말이 굉장히 깊이 와 닿았다. <피아노>에 나타난 여성의 섬세한 감정과 흐름을 인정하지만, 이 영화가 페니미즘의 대표작으로 꼽힐 만큼 페미니즘 입장에 충실한가 하는 것은 나에게 의문이었다. 만약 이 영화를 남성이 만들었다면 어떻게 평가했을 것인가? 물론 여성이 만들었기 때문에 여성의 섬세한 감정이 살아 있고 여성을 주체적으로 그릴 확률이 높지만, 그렇다고 모든 여성 감독의 영화가 페미니즘영화는 아니다. 비록 여성이라고 하더라도, 관습화된 남성 중심적 영화에 물들지 않은 이들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여성의 주체성을 형식으로까지 승화시키는 영화를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같은 시각으로 봤을 때, 페미니즘 평론가들이 극찬한 <집으로…>가 페미니즘 입장의 영화라고 볼 필요도 없다. 오히려 나는 철없는 외손자에게 모멸당하고 고통을 겪더라도 참아야 하는 외할머니의 인고의 삶을 다룬, 지극히 반페미니즘적인 영화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이문열의 <선택>과 그리 다르지 않은 영화이다. 그런데 페미니즘 평자들은 왜 아무런 문제제기도 않고 극찬 일색으로 갔을까? 아마도 이정향 감독이 여성 감독이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같은 내용으로 남성 감독이 연출했다면 그런 평가를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글 : 강성률-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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