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 관객들은 웬만해선 헐리웃의 뻔한 영웅주의 SF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지구를 구해야 하는 중요한 임무에 몇몇의 미국인들을 정예멤버로 뽑고는 그들에게 영웅으로서의 거창한 무게감을 잔뜩 실어주고, 그들의 대사와 행동 하나하나에 닭살 돋을만큼 큰 의미를 부여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그저 그들의 임무수행이 잘 되기를 기도하고만 있는 모습이 그렇게 유쾌하게 다가오지는 않는 까닭이다. 탁 터놓고 생각해보면, 아무리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정예멤버라 해도 그 상대가 우주의 거대한 힘인 이상 역시나 나약한 인간임은 매한가지일텐데 말이다.
현란한 비주얼적 감각을 무기로 인간의 심리를 때론 재기발랄하게 때론 신랄하게 그려 온 대니 보일이 이런 뻔한 듯한 SF영화 컨셉에 손을 댔다. 그의 신작 <선샤인>은 지구를 멸망의 길로 몰아넣고 있는 죽어가는 태양을 살리기 위해 태양으로 향하는 이들의 이야기로, 언뜻 줄거리만 들어서는 <아마겟돈>스런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포스터만 봐도 그럴 법하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재능을 잊지 않은 듯한 대니 보일 감독은 이런 설정에 자기만의 시선을 그것도 뚜렷하게 새겨넣었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50년 후, 태양이 수명을 다해가면서 지구에는 어둠만이 깔려있고 생명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지구를 살리기 위해 죽어가는 태양을 살리는 임무에 착수하고, "이카루스 1호"가 출발하지만 선체를 비롯한 대원들 전원이 행방불명된 채, "이카루스 2호"가 8명의 정예멤버들과 함께 태양으로 향한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지만, 태양에 가까워지기 시작하면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곳곳에서 터지고, 대원들의 목숨은 점점 위태로워진다. 그들은 태양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자칫 뻔하게 들릴 수 있는 줄거리를 지닌 SF영화를 대니 보일 감독이 만들었다는 것부터가 특이한데, 등장하는 배우들의 면면은 더욱 주목할 만하다. <28일 후...>에서 대니 보일과 인연을 맺은 킬리언 머피에서부터 양자경, 사나다 히로유키, 크리스 에반스, 로즈 번 등 인종과 국적을 초월한 세계 각국 배우들이 "이카루스 2호"에 함께 탑승했다. 하나같이 자신들만의 독특한 매력과 카리스마를 갖추고 있어 이 배우들의 연기 경연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영화를 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캐파 역의 킬리언 머피는 "이카루스 2호"의 여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로서 특유의 몽환적이고 혼란스러운 느낌의 연기로 "이카루스 2호"의 불안한 분위기를 대표적으로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강인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본능에 이끌리는 면모를 보이는 코리 역의 양자경, 선장으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임무를 저버리지 않는 카네다 역의 사나다 히로유키, 마초적인 성격이지만 임무에 대한 열정 또한 뜨거운 메이스 역의 크리스 에반스, 대원들 중 가장 연약하고 인간적인 성격을 지닌 캐시 역의 로즈 번, 태양의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사로잡히는 서릴 박사 역의 클리프 커티스 등 뚜렷한 개성을 지닌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이 이 영화의 재미 중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기도 한다.
다른 것도 아니고 태양이라는 거대한 존재에 접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SF영화를 기대한다면 스케일이 큰 볼거리를 기대할 수 있겠는데, 이 영화에 스케일 큰 볼거리가 없는 건 아니다. 초반부 마치 태양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접시 모양의 핵탄두를 실은 "이카루스 2호"의 모습은 스크린도 차마 다 소화하지 못하는 그 거대한 위용에 입이 떡 벌어지게 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보다 중점을 두는 곳은 단지 스펙터클한 볼거리 뿐 아니라 눈을 시리게 할 만큼 선명하게 대비되는 감각적 이미지들이다. 영화 속에서 직접 목격하는 대원들 따라 관객들도 눈이 부셔 손으로 그늘을 만들고 싶게 만드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빛과 그 반대편에 선 늪과 같이 밑도끝도 없는 어둠의 대비, 스치기라도 하면 전신이 불타오를 뜨거움과 온몸을 산산조각 낼 만한 차가움의 대비, 그 중간에서 하얀 색감으로 깔끔하고 차분한 듯하면서도 냉철한 분위기 또한 풍기는 선체 내부의 광경 등 시각적, 촉각적으로 뚜렷하게 대비되는 이미지들의 충돌이 관객들의 머리 속에 영화의 이미지를 더욱 선명하게 심어놓는다. 거기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워지는 카메라워크, 말그래도 눈 깜짝할 사이에 다른 장면을 심어놓는 도발적인 편집 기술 등 영화는 분명하게 드러나는 감각적 이미지들을 영화 전반에 깔아놓음으로써 영화의 치열한 분위기를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영화는 이렇게 압도적으로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이미지들의 대비 속에 8명이라는 얼마 되지도 않는 인간군상을 집어넣는다. 수학적으로 계산하기조차 힘들만큼 끝간 데 없이 사방을 지배하고 있는 빛과 어둠, 열기와 냉기 속에 고작 8명의 사람들은 먼지보다도 작은 존재들이다. 이들이 지구의 운명을 건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긴 하지만, 영화는 이들에게 그런 거창한 짐을 지우지 않고 제각기 다른 갈등으로 충돌을 빚는 평범한 인간들임을 강조한다. 그저 일방적으로 대의만 생각한 영웅의 모습이 아닌, 사사로운 욕망에 나약하게 흔들리는 평범한 인간들이기에, 이들의 면면은 생각보다 악하고 생각보다 이기적이다. 이렇게 나약한 이들인데, 우주 만물에 있어 절대적인 존재나 다름없는 태양과 만나는 태도는 오죽할까.
지구를 구해야 한다는 대의 외에 개인적인 욕망들로 인해 충돌하는 대원들에게 태양은 공략의 대상이기 이전에 동경의 대상이다. 우리가 지구상에서 하늘 위로 올려다 봤을 때 목격하던 그런 태양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와 빛깔, 열기를 지닌 태양 앞에서 그들은 눈도 제대로 못뜨면서 그 압도적인 카리스마에 최면에 걸린 듯 빠져든다. 신의 경지와도 같은 태양 앞에 그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신의 위치에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때문에 그토록 태양의 위용에 한없이 중독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신의 권위에 도달하고자 하는 그들에게 태양이라는 존재는 한없이 뜨겁고 한없이 눈부시면서도 그들이 여정 내내 꿔 온 꿈처럼 그저 한가운데로 떨어지고 싶은 절대적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거대한 태양이라는 존재에 도전하기에, 인간들의 내면은 거기에 따라줄 만큼 넓지 못하다. 그 끝을 모를 우주 한복판에서 바람 앞의 먼지와도 같은 그들은 그만큼 나약하고 좁은 내면을 갖고 있다. 태양에 점차 가까워지면서 모습을 드러내는 위기 앞에 대원들의 생명이 위태로워지고, 그들은 그런 위기 속에서 그다지 침착하지 못하다. 거대한 절대적 존재 이전에, 일단 자신의 생존권부터 부여잡는 그들은 그러한 자신들의 원초적 욕망에 거침없이 휘둘린다. 자신들이 살아남을 산소를 확보하기 위해 수년 간 동고동락해온 대원들 중 누가 죽으면 좋을지 계산하는 소름끼치는 계획을 아무렇지 않게 추진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죽어야 할 상황에서 이상적으로 떠올리는 의리는커녕 내가 살아야 한다고 미친듯이 매달린다. 그렇게 점점 상황이 극한으로 치달으면서 웅장했던 우주 대탐험은 공포스러운 생존 게임으로 변해간다. 자신을 위한 생존의 욕망은 결국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그 어떤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압도적인 위용의 태양 앞에서 생존을 위해 점점 비열해지고 추악해지는 대원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커다란 욕망과 작은 내면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이 섬뜩하면서도 참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
이처럼 <선샤인>은 대원들이 띠고 있는 외적인 임무의 대단함 따위에는 그렇게 관심을 갖지 않고, 그렇게 거대한 임무를 띤 대원들이 지니는 욕망과 본능의 괴리를 섬뜩하게 포착한다. 1초라도 노출되면 얄짤없이 송장으로 변하게 하는 우주의 냉엄한 스펙터클 속에서, 그러한 우주에 도전하고자 하지만 실은 내면의 치졸한 본능에 힘없이 휩쓸리고 마는 인간 군상을 조명함으로써, 우주 만물 앞에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 하는 냉소적인 질문을 던진다. 여러 장르를 관통해 왔지만 대니 보일은 이 영화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인간의 우스꽝스러운 본성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뒷골목에서 돈가방 갖고 옥신각신하든, 드넓은 우주에서 위대한 임무를 수행하든, 나약한 인간의 본성은 어디 가지 않는다는 비정하지만 분명한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엔딩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전개가 확 도발적이지만은 않은 건, 어느 정도 상업적인 영화를 만듦과 동시에 사실 이전까지 냉소 속에서도 일말의 희망을 숨기지 않았던 대니 보일 감독의 성격을 잘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엔딩의 희망 역시나, 여느 헐리웃 재난영화처럼 거대한 사명감과 책임감을 무기로 한 닭살돋는 영웅주의가 아니라,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의 존엄성에 대한 절실한 열망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그 여운은 더욱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또한 후반부에 가서 뻔한 SF영화 공식에서 벗어나 스릴러와 호러를 교묘하게 결합시키려는 감독의 시도 역시 보는 사람에 따라 살짝 당황스러울 수 있으나 꽤 새롭게 느껴졌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태양을 정면으로 잠시동안 바라보면서, 지금 이 위치에서 태양을 봐도 이렇게 눈이 부신데, 정말 바로 눈 앞에서 태양을 마주한다면 그 빛과 열기의 규모는 과연 얼마나 될까하고. 뭐 어림잡아 머릿속으로도 계산이 될 턱이 없는 수준이겠지만. 당장 하늘 위를 올려다 봐도 인간을 한없이 초라한 존재로 만드는 거대한 우주의 실체가 멀쩡하게 버티고 있다. 노래 가사처럼 우리가 태양을 피할 수 있을까? 아무리 걸어다녀도 태양이 항상 우리 곁을 비추고 있듯이, 우리가 태양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렇게 거대한 우주가 멀쩡히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음에도 그 속에서 온갖 욕망에 휘둘리며 갈등하는 인간들의 모습은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보일지.
<선샤인>은 인간의 영웅적 속성과 같은 거창하고 멋진 면모를 결코 찬양하지 않는다. 영화의 처음을 장식하는 킬리언 머피의 차갑기 이를 데 없는 나레이션부터가, 나는 다른 걸 이야기할 거라고 공언하는 듯하다. 이 영화는 스크린도 채 다 비추지 못하는 태양과 우주의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주면서도, 찻잔 속의 소용돌이처럼 초라하게 맴도는 인간의 본성을 더욱 선명하게 이야기하는 영화다. 장르영화를 만들면서도 여느 영화에서도 보지 못한 명징한 이미지의 대립과 자기만의 주제의식을 뚜렷이 심어놓는 대니 보일 감독의 수완은 여전히 살아숨쉬고 있음을 이 영화는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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