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이 죽는 날까지 식지 않는다면 행복할까. 한날 한시에 사랑하는 사람과 숨을 거둔다면 더 행복할까. 일견 지고지순해 보이는 이런 낭만적 연애관은 요즘 식으로 보면 조금 낡아 보이고, 자칫 끔찍해 보이기까지 한다. 거꾸로 보면 오직 한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숨막히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치매 걸린 할머니의 순애보쯤으로 요약될 <노트북>엔 직접 손으로 짠 벙어리 장갑의 따스한 분위기가 흐른다. 나이 든 세대와 젊은 세대의 사랑을 엮어나가는 뜨개질 솜씨 덕분이다. 누군가 손으로 공책에 써서 수십년 간직해온 이야기는 낡았을지는 몰라도 진실되다.
갈대가 흔들리는 노을진 강가를 누군가가 혼자 노를 저어가는 인상적인 도입부가 끝나면 병원 자원봉사자로 보이는 한 할아버지가 등장해 치매 걸린 할머니를 위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기껏해야 한 시간에 40센트를 버는 벌목공과 뉴욕의 명문 사립대 입학을 앞둔 부호의 딸이 사랑한다는 1940년대 이야기다. 할머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몰라봐도, 그 낡은 사랑 이야기만큼은 계속 듣고 싶어한다.
빅밴드의 재즈 스탠더드 넘버가 나오면서 화면은 1940년대 미국의 남동부 사우스 캐롤라이나로 넘어간다. 노아(라이언 고슬링)는 시골 별장으로 놀러온 엘리(레이첼 맥애덤스)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짝이 있는데도 거절의 말을 들었는데도 단념을 하기는커녕 노아의 마음은 더 불타오른다. 영화는 가난하지만 휘트먼의 시를 읽는 노아와 부호이지만 음담패설을 즐기는 엘리의 아버지를 대비시킨다. 신분 상승의 차이를 넘어서려는 무모한 사랑을 정직하게 그려낸다. 이런 정직함이 흠도 된다. 어디서 본 듯한 새롭지 않은 이야기들이 나온다. 가난한 청년은 남고 부자 소녀는 큰 도시로 가야 하는 현실만큼이나. 현재와 과거가 어떻게 맺어질지가 궁금증을 낳지만, 이마저도 예상이 가능하다.
감동은 다른 곳에서 나온다. 엘리가 치는 쇼팽의 전주곡과 할머니가 기억이 아니라 마음을 따라서 치는 쇼팽의 전주곡 선율이 이어질 때다. 그리고 나이 지긋한 노신사의 애틋한 마음과 바람 앞의 촛불처럼 깜빡거리는 할머니의 의식이 잠깐 이어질 때다.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곁을 지켜주는 사람의 소중함이 새삼 다가오는 것이다.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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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진행 방식은 치매에 걸려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제는 할머니가 된 앨리에게 할아버지가 된 노아가
앨리의 병을 고치려고 자신들의 옛날 이야기를 마치 소설처럼 읽어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어떻게 보면, 흔한 소재이고, 영화의 러넝타임도 123분에 달해, 지루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중간중간 현재의 상황이 개입되면서 지루함을 덜어준다.
이 아름다운 사랑 얘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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