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스 페로스, 21그램...이 두 영화를 보고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과 작가인 기예르모 아리아가를 좋아하게 됐죠.
그래서 이번 '바벨'도 무척이나 기대하고 보았습니다.
언제나 시간과 공간을 뒤죽박죽 뒤섞어 영화를 만드는 이냐리투 감독.
영화가 시작되니 저에겐 이런 방식이 이젠 익숙하더군요.
이전 영화에 비해서는 시간순서대로 배치한 방식이라 차라리 이해하기는 쉬운 편이었구요.
이 감독의 영화, 그 분위기, 그 배우...다 좋더군요.
이 '뒤죽박죽'에서 이냐리투 감독의 영화에 대한 호오가 갈리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뭣하러 이렇게 뒤섞어서 이렇게 만드느냐. 구태여 이렇게 할 필요가 있느냐'는 점에서
이냐리투 감독의 영화를 낮게 평가를 하더라구요.
하지만 잘 보시면 강렬하게 시각적으로 자극하는 장면을 하나씩 집어넣어
나중에 퍼즐 맞추기를 할 때 시간적 순서를 짐작하기 쉽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리하면서 독창적인 감독이라고 생각해요.
이젠 그만의 '브랜드'를 내세울 수 있는 젊은 거장이 아닌가해요.
언제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감독과 극작가 콤비이구요.
아모레스 페로스, 21그램, 바벨...이 세 작품에 무수히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공통점은
삶의 깊은 절망을 바닥까지 체험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거죠.
감정 이입을 잘 하는 분이라면
이 영화의 수많은 주인공 중 누구에라도 감정 이입을 시킨다면,
눈물을 흘리며 보게 됩니다.
아 인생은 왜 이럴까...왜 이들에겐 이다지도 힘들까...왜 나에겐 이다지도 힘겨운 걸까...
영화 기자나 많은 분들이 일본 에피소드가 겉돈다고 지적하신 걸 많이 봤는데
저는 그 에피소드도 괜찮았습니다.
한창 이성에게 호기심은 생기는 나이인데, 자신에게 접근하던 이성이, 자신이 수화를 하는 것을 보고
도망갈 때, 자신을 괴물이나 되는 것처럼 취급할 때, 이 고립된 소녀는 얼마나 갑갑함을 느낄까요?
어떤 방법을 택할 수 있을까요? 그녀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그 절망을 공감할 순 없을 거예요.
소통의 힘겨움을 잘 나타내주는 에피소드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밑바닥까지 드러내보여주어야 하는 처절한 상황,
전혀 나의 일이 아닐거라고 생각했던 상황이 순식간에 닥쳐올 때 인간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감독은 원초적인 상황에서도 모든 치부를 덮어줄 수 있는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총에 맞아 거동이 불편한 아내 케이트 블랜쳇이 소변을 볼 때 남편 브래드 피트가 도와주는 장면이죠.
저는 아모레스 페로스 dvd를 가지고 있는데 스페셜 피처 중에 극장판에선 삭제된 장면을 보여주는데
그 영화에도 역시 그런 장면이 있었더군요.
아름다운 모델이 교통사고가 나서 거동을 못하는데, 그와 동거하고 있던 남자가 화장실 가서 소변을 보도록 도와주는 장면...아모레스 페로스에서는 삭제했지만 바벨에서는 그와 비슷한 장면을 넣은 것을 보니, 이 감독은 이 장면에 대한 욕심이 있었나 봅니다.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방식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절망에, 고통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쉽게 감정 이입을 하고 즐길 수 있는 '낯선 '영화 바벨.
벌써부터 다음 작품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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