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속에서 움직이는 우리의 모습들은 어떤 모양을 가지고 있을까? 현재의 내 모습에 안주하며 자유롭게 움직이다가 순간 과거의 내 숨은 기억을 들춰내며 움찟 머뭇거리며 한동안 아무런 느낌이나 생각도 없이 그저 주위를 빙빙돌게 만들다가 기억속에서 채 가시기도 전에 현재의 내 생활들과 또 다른 교감을 형성하면서 과거속의 숨은 기억들이 자꾸 나를 밀어내고 들춰내 현재의 내 기억속에 하나 둘 파고들어 혼란을 일으키는 혼돈의 모습이 아닐까?
[지금 난 동거를 시작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아니 내 기억속에 던져진 모습들 보다는 조금 덜 되었지만… 그런데 그 기억속에서 자꾸만 옛사랑의 기억이 떠오른다 떨치면 떨칠수록 더없이 밀려오는 힘없는 적막감과 공허함과 함께…]
와니와 준하 - 영화 [와니와 준하]는 상당히 맑고 순수한 아니 그보다 더 풋풋하게까지 느껴지는 한편의 순정만화 그 자체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없을 정도로 우리가 어릴적 가슴을 울꺽 적시면서까지 밤새워 읽은 투명한 동화책 한 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너무도 맑고 투명해서 그 안을 들어가기가 차라리 겁날 정도로 수수하지만 막상 그 안을 파고 들어가면 겉에서 본 나의 느낌과는 또 다른 더 화사하고 더 싱그러운 내음을 맡을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첫사랑의 기억을 안고 동거를 시작하는 와니와 와니의 지난 첫사랑이 아직 가슴속에 남아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이끌림에 와니의 곁에서만 서성이는 준하의 애뜻하고 수수한 사랑이야기!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와니의 심리 상태를 아주 살며시 들락거리며 그녀의 움직임에 자연히 주변의 사람들도 움직이게 되면서 현재의 와니 곁에 있는 준하와 과거의 기억속에 자리잡고 있는 영민… 그렇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아픈 기억을 떨치려 새로운 기억속에 접근해 보려 애쓰지만 와니의 기억속엔 이미 너무도 많은 자리를 영민에게 빼앗겨 버린 듯 하다 하지만 하지만 그 모든 기억들을 뒤로 한 채 사랑도 현실임을 직감하게 된다 그 어릴 적 그 수줍은 소년의 뒷모습 사이로 그리고 어느 새 훌쩍 커버린 키 넘어로 나 자신보다도 나를 더 잘 알고 생각해 주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영화 [와니와 준하]는 순정 영화답게 처음 도입부와 끝 말미를 와니와 준하의 모습이 담긴 애니메이션을 깔끔하면서도 아름답게 표현했고 1인칭 주인공 시점답게 독백의 형식으로 각 장면 장면들과 화면들이 불필요한 화면 하나 없이 깨끗한 모습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나의 눈을 그리고 관객의 눈을 끝까지 이끌게 만들어 논다 또한 영화배우로서의 이미지가 아닌 드라마나 CF의 모습이 더 강했던 김희선의 연기변신과 함께 영화배우로서 한단계 성숙된 변신으로 완벽에 가깝게 자신의 캐릭터를 소화해 냈고 주진모와의 환상적인 연기는 과히 칭찬하고도 남을 만하다 게다가 최강희와 조승우의 맛깔스런 양념 연기는 정말 딱이야!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상당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근래에 보기드문 아름답다 못해 눈이 부신 작품이다 옛 사랑은 기억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한다 특히나 첫사랑의 아픈 기억들은 더더군다나… 내게 있어 편안한 휴식처가 되주고 내게 있어 삶의 한 이유가 된 사람이라면 더욱이…
가을이 무르익어 점점 가파른 곡선으로 치달아 겨울을 불러내고 있는 이 계절에 사랑의 또다른 이름으로 잠시 자신의 기억속에 존재하고 있는 먼 기억들은 잠시 접어두고 자신의 주위에 있는 -내가 늦게 들어와 무서울까봐 TV를 예약해 놓거나, 비에 젖지 말라고 우산을 챙겨주고, 아플 때 곁에서 나를 밤새 병 간호 해주는- 사람을 둘러보는 것이 어떨까? 지금도 그 사람은 당신을 바라보고 있을지 모른다 자신만 느끼지 못할 뿐 지금도 당신의 주위를 헤메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