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에서 벨은 야수의 외모에 처음엔 두려워하지만 그의 착한 심성과 진심에 사랑을 느낀다. 이윽고 키스를 하자, 짜자잔. 야수는 어느덧 반짝반짝 왕자로 변한다. 제목에서 부터 <미녀와 야수>를 연상시키게 되는데. 6개의 달걀이 비싸다고 외치는 시대를 알 수 없는 프랑스인 미녀와 야수보다, 2005년을 사는 해주와 동건이 현실적인 건 당연하다. <미녀와 야수>에서 벨은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희생'하고 '구린 외모'를 극복하는 진정한 사랑을 보여준다(진정한 사랑을 보여주면 결국 그 외모가 모든 여성이 바랄만한 빠방 꽃미남 왕자로 변한다는 게 진정 극복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에 비해 영화는 '거짓말'과 '시각장애', 그리고 '삼각관계'라는 장애를 더하며 디즈니의 동화와 살짝, 틈을 벌리려 한다. 하지만 나는 영화를 보다 이 사람들이 영화 속 인물인지 동화 속 인물인지 의심해보았다.
먼저 미남 검사 탁준하군(김강우 분). 동건을 무지무지 사랑하는 해주의 마음을 알자, 그는 고민한다. 결국 그는 순진하고, 약해지는 해주를 바로 가로채지 않는다. 자신이 무려 악역까지 도맡아 하며 고등학교 동창 동건과 해주의 사랑을 이루어주기 위한 큐피트로 분한다.
해주(신민아 분)양. 꽃미남 검사의 유혹에도 잠시 흔들리긴 하지만, 눈쌀을 치푸릴 정도로 무섭게 생긴(영화 속에서) 동건을 택한다. 해주 양, 정말 얼짱 몸짱이 대세인 대한민국 국민이 맞나? 아, 눈을 뜬지 얼마 안 되서 그런가. 동건에 대해서도, 계속되는 도망에 야속해 하기만 하지, 자신을 속인 건 화도 안낸다. 동화 같다는 또 다른 점은, 해주가 자신의 상상과는 너무도 다른 세상에 눈을 뜨고도 비관하기는커녕 점점 더 동건에 대한 사랑을 꿋꿋하게 지키는 줏대 있는 캐릭터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주인공인 동건도 해주를 위해 거짓말을 하고. 어느덧 친구가 되버린 구룡파 2짱 아저씨(안길강 분)는 자신의 동료를 잡아넣은 검사에게 비굴한 태도로 일관하긴 하지만 귀엽게도, "해주는 포기하라"며 동건과 해주의 사랑을 지지한다. 아. 이 캐릭터들, 정말 착하다.
삼각관계에 부딪히고, 숙취에 "물,물,물"을 찾고, 잘 생기고 직업 빵빵한 검사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2005년의 그들이지만, 절대 비뚤은 갈등을 유발시킬 수 없는 착한 성격만은 동화 뺨친다. 영화의 베이스에 깔려있는 긍정적이고 선한 마인드가 이 코믹 멜로라는 장르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거짓말은 할 수록 부풀려지니 하면 안된다라는 교훈을 여실히 보여주며 동건의 머릿속은 복잡해져가기만 하지만, 영화는 코믹한 에피소드의 나열로 웃음을 잃지 않게 한다.
좀 과장된 상황(류승범은 못생기지 않았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웃음을 자아내는 데에 발휘한 센스는 톡톡 튄다. <올드보이>의 조감독 출신인 감독은 <올드보이>의 장면을 패러디하기도 했고, 재즈 가수 역에 인순이를, 성형외과 의사 역에 윤종신을, 동건의 친구 역에 안어벙 안상태를 캐스팅함으로 보는 이가 느끼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안상태씨의 연기가 난 왜 그리 맘에 들었는지.
담백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배우들의 연기가 자연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가장 좋았던 건 류승범. 사실 영화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절대 못생긴 배우는 아니건만. 그게 못내 가슴 아팠지만, 다른 사람인 양 목소리를 가장하는 것 하며, 우주괴물 목소리까지 모두 자연스러웠다. 신민아도 순진한 해주 역을 딱, 고만큼 순진하게 연기해냈다고 생각한다. 동건이한테 떼를 쓰며 엉엉 울 때는 왜 눈물이 안나오니, 라고 묻고 싶었지만. 뭐, 귀여우니 냅두자.
담백하게 즐기고, 열렬히 웃어 제낀 장면이 있었던 반면, 눈물이 줄줄 흘렀던 장면들도 있었다. 사진 뒤에 '세상에서 제일 예쁜 해주. 세상에서 제일 못생긴 나'라는 글귀가 왜 그리 맘이 아팠는지 모른다. 해주의 맘을 절절히 느끼고 코끝을 잡고 눈물을 참던 동건의 모습에 왜 그리 울었는지 모른다. 내가 유독 영화를 보고 많이 울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리 코미디로 무장했다고 해도, 너무도 서로를 위하는 숨은 배려에 가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아쉬운 점이라면. 마지막에 실연 때문에 우울해야할 것 같은 탁검사가 조폭 아저씨를 쫓아 달려가며 엔딩을 맞이했듯. 이 영화는 너무 가볍다는 것이었다. 못생긴 동건이도 사랑한다는 해주의 말도 외모지상주의에 '담궈'진 요즘 세태에 일침을 가하진 못한 듯 보였다. 아름답게 다시금 사랑을 이뤄냈지만, 영화의 끝까지 해주는 착한 미녀로, 류승범씨도 말했듯 동건은 loser로 남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을 보며, 한국 로맨틱 코메디의 진보를 기대해 봐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화의 '착한' 심성이 나에게도 전파된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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