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을 쓰기에 앞서, 과연 '랑페르(L'Enfer)'란 영화가 정말 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지옥을 표현한 것일까 그리고 표현했다면 어떤 표현일까 궁금해서 검색 사이트를 찾아 지옥에 관한 그림을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검색이 된 작품은 로댕의 ‘지옥의 문’으로 영화 ‘랑페르’와 관련지어서 눈에 들어오는 조각은 ‘허무한 사랑’이라는 부분이었습니다.
해석에 앞서 예술작품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게는 겸손하게는 뒤통수 긁기 같은 행동이나 심하게는 억지 해석이라는 오만한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만 어떤 전형적인 식자(識者)들의 시각만이 정답으로 여겨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시각에 대해 옳고 그름을 너무 따지려 드는 것은 예술에 대한 계층적 괴리를 가져 올 수 있다고 봅니다.
다시 ‘허무한 사랑’과 ‘랑페르’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듣기에 로댕의 이 작품은 사랑의 상실감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물론 로댕이 생각한 사랑의 상실감과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가 표현한 사랑의 고통이 분명 같은 것은 아니겠지만 한편으론 사랑을 지옥으로 표현할 정도의 절박함을 이끌어내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같은 시각에서 비슷한 결과물을 낼 수 있겠냐고 반문한다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긴 합니다.
<< 로댕의 ‘허무한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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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에 새가 부화하면서 아직 깨어지지 않은 알을 밀어냅니다. 그리고 나머지 알 하나가 남았을 때 그 새는 몸을 비틀다 우리 밖으로 떨어집니다. 이 새를 한 노인이 교도소를 나오면서 그 새를 우리 안으로 들여보내고 새는 마지막 남은 알마저 바닥으로 떨어뜨려 버리는 것이 이 영화의 시작이자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지옥도의 단면입니다.
영화에는 세 여인이 나옵니다. 소피(엠마누엘 베하르)란 여인은 남편의 외도에 대해 깊은 절망감을 느낍니다. 영화에서 엠마누엘 베하르란 배우를 지우고 본다면 권태기에 성적인 욕망은 치솟지만 냉정한 남편에 의해 그것을 무시당하는 여인으로 눈 화장을 빼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매우 절박한 연기를 하는데 남편의 불륜을 목격하고 그것 때문에 남편과 싸우면서 더 비참해 지기 위해 당신을 쫓았다는 말을 하면서 결국 억눌려있던 모든 감정을 폭발해 버립니다.
셀린느(까린 비아드)라는 여인은 말을 잃어버린 늙은 어머니를 보살피는 여인입니다. 그녀의 삶은 보는 이들이 지루할 정도로 전형적인데 이것을 그녀는 익숙함으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그 흐름을 깨는 것을 평정상태를 깨뜨리는 행위로 간주하고는 피하게 됩니다. 같은 빵에 같은 신문을 사고 같은 열차 검표원이 같은 인사를 건네지만 갑자기 나타난 세바스티앙이라는 남자가 그 평정상태를 건드리게 되고 그녀는 그것을 사랑이라 생각하고 그 평정상태에 대한 균열을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론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안느(마리 질렝)라는 여인은 늙은 불문학 교수인 프레드릭에게 집착합니다. 그의 전화를 기다렸지만 그는 냉담하기만 하고 결국 그의 마음이 떠났다는 것을 알았지만 안느는 그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하고 계속 그를 뒤쫓습니다.
안느는 결국 프레드릭에 대한 집착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그의 학교에 입학시험을 보는데 면접 때 제시어로 등장했던 것이 바로 ‘메데이아’라는 작품입니다.
메데이아는 영화 ‘랑페르’가 영감을 얻었을 법한 작품입니다. 그리스의 비극작가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으로 그리스 신화의 악녀 메데이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메데이아는 남편 이아손의 성공을 위해 이아손의 경쟁자들을 제거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탐욕에 눈이 먼 이아손은 메데이아를 마녀로 몰아버립니다. 이에 분노한 메데이아는 자신들의 자식을 죽이고 남편에게 처절한 복수를 한다는 내용의 이 작품은 비록 극적 구성은 다르지만 (사실은 떨어져 사는 자매들인)세 여인이 겪었던 유년시절의 악몽 같은 이야기들을 통해 두 작품과의 연관성이 있음을 클라이맥스에서 보여주게 됩니다.
<< 들라크루아의 ‘격노한 메데이아’ >>
들라크루아의 ‘격노한 메데이아’ 대한 정보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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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연설명을 하자면 다음과 같은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이 그림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맨 앞에 큰 원은 세 자매의 어머니 혹은 그들이 어렸을 때 겪은 충격적인 사건들이고 두 화살표는 소피와 안느를 뜻하는데 물론 두 사람에 얽힌 대상은 다르지만 서로 ‘불륜’이란 것을 통해 가해자가 되고 또 피해자가 되는 구도를 보여주고 있고 가운데 평정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셀린느로 그림에선 생략되었지만 세바스티앙이란 인물에 의해 평정상태가 무너지게 됩니다.
영화 ‘랑페르’를 이런 단순한 구조를 통해 마치 TV드라마처럼 보고 본다면 쉬운 드라마지만 흥밋거리를 생각하면서 볼 영화는 아닙니다. 배우들이 감정을 쉽게 드러내고 판에 박힌 정도는 아니지만 어렵지 않은 대사와 인물구도 전개과정으로 구성된 영화라 사랑을 지옥에 빗댄 철학이라면 상당히 어려운 표현을 쓸 거라는 기대내지 착각에서 이 영화를 본다면 기대 이하라고 생각하실 분도 더러 계실 것 같습니다.
사랑을 하면서 절망을 느낀다면 그것은 그 사랑에 대한 대상이나 방식에서 오는 문제에서 비롯되는 경우겠지만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이 영화는 그래도 사랑이란 것은 하고 아파하는 것이 사랑이 상실된 상태보다는 낫다는 것은 이야기 해 주는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느꼈는지는 다소 스포일러로 남을 수 있기 때문에 ‘랑페르’란 영화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계실 분들께 숙제로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 본 자료는 Daum 금융플라자와 Naver의 백과사전에서 자료를 참조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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