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주책스럽게 보일 수 있겠지만, 한때 즐겨봤던 케이블 TV 프로그램 중에 <도전! 신데렐라>(외국편)라는 프로가 있었다. 외모로 인한 사연이 있는 사람들에게 성형수술을 시켜주어 다시 삶의 희망을 찾게 해준다는 취지의 리얼리티 쇼였는데, 성형수술이라는 소재때문에 선정성 면에서 도마에 오르기는 했으나 막상 여기 나오는 의뢰인들의 사연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 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외모에 심각한 결함이 있거나 살이 쪄서 이대로 놔두었다간 삶을 포기할 것만 같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방법 면에서는 논란이 있겠지만, 이들에게 다시 삶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는 점에서 성형수술이라는 방법이 꽤나 효과적으로 활용된 셈이다.
그러고 보면 성형수술이라는 것이 발휘하고 있는 영향력은 생각보다 꽤나 큰 것 같다. 외모지상주의를 향한 끝없는 허영을 불러오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외모로 인해 자신에 대한 애정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다시금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한 인간의 인생을 살릴 수도 있는 일이기도 하니 말이다. 아무렴 "마음이 고와야지" 한다지만, 씁쓸하게도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여전히 외모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 영화 <미녀는 괴로워> 역시 성형수술이라는 소재로 웃음과 감동을 부담없이 주면서도 이런 씁쓸한 현실을 그냥 지나치지는 않는다.
극심한 비만으로 인해 사회 생활에 대한 자신감 결여로 심히 내성적인 성격을 지닌 우리의 주인공 한나(김아중). 외모를 따지지 않아도 되는 일로써 인기 여가수 아미(서윤)의 립싱크보컬과 외로운 남자들을 위한 폰섹스업을 병행하고 있는 중이다. 한나는 아미의 립싱크보컬로 일하면서 아미의 프로듀서인 상준(주진모)의 따뜻한 태도에 반해 그를 사모하지만, 어느날 그 역시 한나를 여자로서가 아닌 그저 성공을 위한 도구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한다. 지금까지 그럭저럭 살아왔으나 이젠 더 이상 이대로 살 수가 없다는 결심에 이른 한나는 종적을 감춘 채 친분(?)이 있는 성형외과 의사 이공학(이한위)에게서 대대적인 성형수술을 받는다. 수차례 지방흡입술과 각 부위 보정, 그리고 살인적인운동을 거쳐 약 1년 뒤 그녀는 지나가는 누구나 한번쯤 돌아볼 법한 퀸카가 된다. 한편 한나의 잠적으로 아미의 활동에 제동이 걸린 기획사 측에서는 새로운 인재를 찾게 되고, 한나는 힘들어 하는 상준을 돕자는 순수한 목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속여 "제니"라는 이름으로 오디션을 보게 된다. 아니나다를까, 탁월한 미모와 목소리를 겸비한 "제니"는 정식으로 발탁되고 스타덤에 오른다. 한편, "제니"가 한나일 것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상준 앞에서 한나는 자신의 존재를 숨기기 위한 갖은 노력을 다하는데.
데뷔작 <오! 브라더스>에서 오버하지 않는 웃음과 감동으로 수준급의 재미를 주었던 김용화 감독의 신작이기에 꽤 기대를 했었는데, 사실 처음에 남녀 배우의 면면을 보고는 약간 캐스팅 파워가 약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본 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통해 두 배우는 톱스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
특히 아직은 신인급으로서 주인공을 맡기엔 좀 불안하지 않나 싶었던 김아중의 연기는 발군이다. 뚱뚱한 한나와 날씬한 제니를 오감으로서 여느 평면적인 미녀 캐릭터 혹은 왕따 캐릭터와는 궤를 달리 하는 역할인데 이를 꽤 깔끔하게 소화해냈다. 한나일 때에는 부담스러운 덩치를 지녔지만 인간미와 사랑스러움을 자아내고, 제니일 때에는 인공적인 몸매이지만 세태에 물들지 않은 맹하고 순수한 면을 지닌, 나름의 매력들이 있는 각각의 면모를 모두 잘 보여주었다. 이전 작품들에서 봐왔던 평면적인 대사 처리의 평면적인 미녀 캐릭터가 아니라 조금은 꺼벙하고 순진한, 그래서 자기 감정에도 솔직한 인간미 있는 역할을 보여주어서 더욱 인상깊은 연기가 아니었나 싶다. 거기다 노래 실력 또한 시원시원한 목소리가 수준급이었다. 한마디로 그녀는 이 영화에서 다재다능한 면모를 마음껏 과시했다.
주진모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전형적인 순정만화 속 매력남의 캐릭터라 평면적으로 느껴지긴 하나, 이런 역할을 주진모가 맡았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인상깊게 남는다. 그는 영화 속에서 여태까지 이 정도로 그의 매력을 극대화할 만한 밝고 화려한 캐릭터를 맡은 적이 거의 없다. 늘 어둡고 거칠거나 수수한 역할만 맡아서 그의 외형적 매력이 완전히 보여지지 않았던 탓인지, 상당수 네티즌들이 이렇게 잘생긴 배우가 왜 그렇게 뜨질 못하나 하는 시선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어느 조건 하나 빠질 것이 없는 완벽남으로서, 정말 오랜만에 그가 지닌 외형적 매력을 한껏 뽐낸다. 남자인 내가 봐도 참 인물 좋다는 생각이 볼 때마다 들고, 상영관 내에서도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장면이 꽤 오래 등장할 때에는 주위에서 감탄사가 막 흘러나오기도 했었다. 그만큼, 그는 이번 영화에서 자기 매력을 한껏 살릴 수 있는 역할을 제대로 잡은 듯 싶었다.
두 주연 뿐 아니라 조연들의 연기 또한 일품이다. 상준보다 나이는 훨씬 많은데 훨씬 철없이 구는 기획사 사장 아들 역의 성동일의 주책 연기, 죽마고우로서 한나에게 쓴소리 쓴감정도 서슴없이 보이는 진짜 친구 정민 역의 김현숙, 치매 증세가 있지만 딸을 향한 사랑은 지워진 적이 없는 한나의 아버지 역의 임현식 씨, 본의 아니게 약점 잡힌 게 있어 군말없이 대규모 시술을 해주는 성형외과 의사 이공학 역의 이한위 씨에 이르기까지, 양념같은 웃음과 감동을 끊임없이 선사해주는 조연 배우들의 연기가 있었기에 이 영화의 재미가 더욱 풍성해지지 않았나 싶다. 뿐만 아니라 이범수, 이원종, 류승수, 박휘순 등 카메오 배우들의 짧고 굵은 연기도 놓쳐선 안될 볼거리이다.
이 영화는 근래 한국 코미디 영화로선 보기 드물게 상당히 "팬시"하다. 사회로부터 자신을 격리시켜 사는 한나의 집마저도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고, 상준의 집은 여기가 집인지 바인지 헷갈릴 만큼 화려하다. 뿐만 아니라 여러 번 선보여지는 공연 장면 또한 허접스런 흉내 수준이 아니라 꽤나 많은 손이 간 듯 나름 큰 스케일을 자랑한다. 다소 만화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만화가 원작이니 트집잡을 것은 되지 못하고, 보통 한국 코미디 영화라 하면 다소 예스러운 화면을 생각하기 쉬운데 이렇게 비주얼에 공을 들여 젊은 감각을 맘껏 보여주는 코미디 영화는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깔끔한 비주얼에 맞게 영화의 웃음과 감동 코드 또한 감독은 전작 <오! 브라더스>에서처럼 적당한 선을 지키며 발랄하고 따뜻한 시선을 보낼 줄 아는 균형을 보여주었다. 뚱뚱한 한나가 겪는 여러 설움은 한편으론 안타까우면서도 서슴없이 웃을 수 있는 밝은 느낌을 주고, 날씬해진 뒤 겪는 격세지감은 다소 과장되고 만화적이면서도 여전히 발랄한 웃음을 준다. 한나와 제니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는 에피소드들 역시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오는 자연스런 유머로 부담없는 웃음을 선사한다. 후반부에 주는 따스한 감동 또한 극도로 우울해지면서 눈물을 강요하기보다는 뿌듯한 미소를 머금게 만드는 기분 좋은 감동이다. 12세 관람가인 만큼 폭력, 선정적인 면이나 욕설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렇게 <미녀는 괴로워>는 오락 영화로서의 기능만 보더라도 군더더기 없는 담백한 몸매를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앞서 말했듯, 소재부터가 단지 오락적으로만 다룰 수는 없는 소재이다. 그런 만큼 이런 상황이 반영된 사회 속에서 주인공들이 느낄 법한 갈등 또한 의미 깊게 다루었다. 아무리 뭐든 "잘 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외모에 신경쓰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해도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속물처럼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을 원한다.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현대인이기에, 이상형으로서 마음씨를 중요하게 보지만, 외모를 아예 안 본다고는 말을 못하겠다. 영화는 연예계를 배경으로 함으로써 이런 외모지상주의의 면면을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여전히 뚱뚱하고 못생긴 사람은 인격체라기보다는 능력 좋은 도구 정도로 여기는 사회 속에서, 이들의 자신감과 감정 표현력은 갈수록 안으로 숨어들어갈 뿐이다. 제대로 감정 표현하고 제대로 자기 삶을 사랑하고 싶으면, 예뻐져라고 세상이 부추기는 셈이다.
그런데 막상 예뻐지랬다고 예뻐지고 나면 그만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자신없는 외모때문에 스스로를 격리시키며 살아왔던 사람이 갑자기 환골탈태하여 나타난다고 해서 사람들이 오냐 하고 반갑게 맞이하지만은 않는다는 거다. 얼굴에 칼을 댔다는 것, 신체에 무언가를 집어넣었다는 것에 사람들은 혐오감을 느낀다. 사람의 손길을 거쳐서 만들어진 외모라는 이유로 언제부터 자연미를 선호해왔다는 듯 순식간에 거리감을 두는 것이다. 안드로이드, 괴물이라는 사람으로서 듣기 거북한 말까지 서슴없이 내뱉으면서 성형미인은 그저 그런 외모를 지닌 비성형인보다 더 못한 대접을 받기 일쑤다. 예쁜 사람은 좋아하는데 고친 건 싫어한다, 그렇다면 자연미인을 좋아한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세상에 다수를 차지하고 있을 "자연"이되 "미인"은 아닌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가. 예쁘기를 원하면서 "예뻐진 사람"을 보고는 탐탁치 않게 여기는 데에서 웃지 못할 사회의 모순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한나 혹은 제니 또한 이런 갈등을 어김없이 겪는다. 수술을 통해 예뻐지면 고민 해결일 줄만 알았던 한나는 막상 수술하고 난 뒤, 성형미인에 대해 세상이 가지는 일반적인 시선들을 접하고는 적잖은 실망감을 느낀다. 예쁘지 않으면 루저 취급 받고, 그렇다고 남들 바람대로 예뻐지면 얼굴 고쳤다고 괴물 취급하는 세상 속에서 도대체 뭘 어째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것이다. 이를 통해 영화는 끊임없이 외모지상주의를 추구하면서도 외모지상주의가 낳은 산물인 성형수술이라는 행위에 대해서는 비호감이라 여기는 사회의 이중적인 시선을 어느 정도 풍자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영화가 작정하고 사회를 향해 도발적인 시선을 던지는 비상업영화가 아니라, 일단은 대중의 부담없는 즐거움을 목적으로 하는 상업영화인 이상, 영화는 여기서 더욱 직접적으로 성형수술의 폐단과 그로 인한 파국같은 비극적인 면을 다루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도전! 신데렐라>에 나오는 수많은 의뢰인들처럼 한나 역시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고 자기애를 발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외모만 가치 있는 걸로 따지면서 외모에 자신없는 이들에게 절망을 안겨주고 결국 얼굴에 칼을 대게 만드는 사회를 비판하면서도, 이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전제 하에 성형수술이라는 것이 단지 허영만 심어준다기보다는 자신을 다시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성형수술이 삶의 질 개선에 "통하는" 사회를 풍자하면서도, 이를 통해 다시 일어서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성형수술의 적지 않은 영향력에 대해서 어느 정도 긍정적인 시선으로 논하며 도발적이지 않은 중립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기특하다.
한나의 아버지는 여전히 사람의 한계를 규정지어 놓는 사회의 단면을 지적하기라도 하듯, "하고 싶은 걸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걸 하라"고 얘기한다. 현대 사회에 있어서는 이런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경계에서 외모라는 요소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외모지상주의 사회 속에서 성형수술이란 이런 경계를 허물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한 수많은 방법 중 하나일 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이렇게 "외모"가 자아실현의 한 바탕이 되는 씁쓸한 현실 속에서 나름대로의 자아실현을 이뤄가는 한 여인의 모습을 통해 현실이 뜨끔하게끔 적당히 풍자하면서도 이 여인을 향한 따뜻한 웃음과 감동도 관객들로 하여금 놓치게 하지 않는다. 적당한 풍자와 화려하면서도 깔끔한 오락적 재미. 잘하면 이 영화, 유난히 대작이 없다는 한국영화에서 생각지 못한 다크호스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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