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사랑을 꿈꾼다. 하지만 시작을 꿈꾸는 이가 있다면 끝을 맞이하는 이들이 있다. 모든 일에는 처음과 끝이 있듯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시작의 달콤함이 언제까지 지속되면 좋으련만 그 끝자락에 남는건 씁쓸함이다. 사랑은 그렇게 딜레마와 같다. 시작과 끝의 감정이 그리도 다르다는 것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이 그리도 만만하게 볼 상대는 아닌 것 같다.
사랑에 관한 잠언들은 대부분 진실이다. 시작부터 영화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지닌 다양한 표정을 아이리스(케이트 윈슬렛 역)의 나레이션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그녀의 일방통행식 사랑이 처참하게 부서지는 순간이다. 3년간 그녀를 애태우던 구애는 이단(에드워즈 번즈 역)의 약혼발표로 삽시간에 무너져내린다. 아만다(카메론 디아즈 역) 역시 시작부터 애인과의 관계가 박살난다. 그녀의 히스테리인지 남자의 잘못인지 구분할 수 없지만 분명 사랑이 조각나는 순간을 맞이한다. 사랑앞에 상처입은 두 여인이 내린 처방전은 여행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에서 동떨어진 어딘가로 달아나버리는 여행. 영국의 서레이와 미국의 LA의 거리적 간극은 그렇게 정서적 교감을 형성하며 묘한 인연의 끈을 엮기 시작한다.
홈 익스체인지(home exchange)라는 묘한 방식으로 서로의 영역을 바톤 터치하는 두사람의 모습은 상당히 이색적이다. 단순한 휴가라고 말하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는 두사람의 여행이 맞이할 것은 이미 시작에서 예고되었다. '여행끝에는 사랑이 있다.'라는 셰익스피어의 잠언은 그 두여자의 여행이 맞이할 운명같은 행보에 대한 기막힌 복선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 영화가 지닌 태도로 봐서도 그건 이미 관객에게도 예정된 하나의 결말일 따름이다. 다만 그 여행의 끝에 맞이할 사랑이 어떤 방식으로 접근되는가의 문제다.
'왓 위민 원트'.'사랑할때 버려야 할 것들' 등의 영화로 여성의 섬세한 심리를 묘사하고 이성간에 은밀히 작용하는 사랑의 함수관계를 다채롭게 펼쳐보이던 낸시 마이어스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표출해낸다.
영화가 유감없이 보여주는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우리의 삶으로부터 지닐 수 있는 존재감의 무게감이다. 사랑따위야 한낱 감정에 지나지 않다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 그 감정이 존재하느냐 배제되느냐에 따라 삶의 표정은 확연히 달라진다. 적어도 영화속의 아이리스와 아만다가 마일스(잭 블랙 역)와 그레엄(주드 로 역)을 만나기 전과 만난 후의 달라진 모습은 이 영화가 내세우는 근거이자 이 영화가 관통하고자 하는 주제이다.
15세 이후로 눈물을 흘리지 못하던 아만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릴때 그녀에게 그레엄은 단지 즐거운 휴가시절에 만난 특별한 인연으로 끝날 수 없는 사랑으로 판명되고 아이리스가 제스퍼(루퍼스 스웰 역)를 매몰차게 밀어낼 수 있게 되었음은 그녀에게 새로운 사랑의 기운이 허락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마치 건조한 열풍인 산타아나가 새로운 인연을 가져다주듯 그들의 도발적인 크리스마스 휴가는 그 낯선 환경만큼이나 예상하지 못했던 인연을 선물한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는것은 이 영화가 영화산업자체를 은연중에 비꼬는 면모이다. 멀티플렉스도 블록버스터도 DVD도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 시나리오오 명성을 얻은 아더(엘리 윌러크 역)는 자본이 아닌 열정이 좌지우지하던 영화판의 산 증인이다. 그는 흥행으로 좌지우지되는 영화판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직시한다. 순간의 흥행실적이 없으면 마치 자판기의 물건처럼 교체되어버리는 영화판의 현실은 문화적 장인정신보다는 상업적 장삿속으로 전락해가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존재는 이 영화가 내건 사랑이라는 대전제안에 삶이라는 소주제를 부여하고 영화의 중후한 맛을 더한다.
쥬드 로, 잭 블랙, 카메론 디아즈, 케이트 윈슬렛 등 할리웃의 내노라는 배우들의 이름만으로도 이 영화는 구미를 당기게 한다. 배우들의 명성과 할리웃의 깔끔한 보증서안에서 이 영화는 만족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또한 중간에 등장하는 더스틴 호스만의 까메오 등장도 하나의 부록이다.
잠옷을 사러간 남녀가 각자 점원에게 남자는 바지만을, 여자는 윗도리만을 주문함으로써 서로를 쳐다보게 되는 순간 그찰나가 운명적 만남이라고 이 영화는 이야기한다. 인연이란 건 운명같은 만남이다. 하지만 사실 운명이라는 건 우리가 만들어가는 사실에 명명된 하나의 가제일 뿐이다. 우리는 매일같이 우연속에서 필연을 채워가며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알 수 없는 만남의 굴레 속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 운명같은 만남을 지속하는 것은 본인의 노력이다. 첫키스의 황홀함이 이별의 눈물로 빚어지게 될 것은 어쩌면 당연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낭만의 유효기간은 딱히 정해지지 않았기에 우리는 이별의 예감보다는 그순간의 달콤함을 누려야만 하는 것이다.
영화에는 주연이 있고 조연이 있다. 우리는 모두 주연감인데 종종 우리는 조연처럼 행동한다. 그건 스스로 자신을 학대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두려워하거나 사랑을 망설이는 사람들은 그 사랑으로부터 상처받을까 두려워서라고 말하곤 한다. 물론 사랑이 만만한 감정은 아니다. 그것이 행복만을 보장하진 않는다. 하지만 분명 사랑은 행복을 가능케한다. 그리고 그 비중을 다루는 것은 본인의 노력이다. 사랑은 그 아픔을 각오할만한 가치가 있는 미덕이다. 마치 영화속 그들의 표정처럼 그 사랑이 지닌 흐믓한 표정앞에서 사랑을 부정하고 싶어할 필요는 없을 것만 같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리라는 정호승 시인의 싯구처럼 사랑은 그만큼의 고통을 감당할만한 그릇이라는 것. 이 영화의 아름다운 감성이 보여주는 흐믓한 미덕이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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