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바람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밀어붙여, 나는 퍼부울 테니...'
-로버트 프로스트 '쓰러져있다' 중에서...-
또 동치성이다.
그리고 또 정재영이다.
여자 이름으로는 화이라는 이름을 자주 애용하던 장진 감독...
이번에는 동치성이라는 이름을 또 사용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장진의 페르소나가 되어버린 배우 정재영을 또 기용하였다.
이미 연극무대에서 그를 많이 기용을 했을테고 '킬러들의 수다', '아는 여자', '박수칠 때 떠나라'(비록 꾸러기파 두목으로 잠시 출연했지만...), '웰컴 투 동막골'(박광현 감독 작이지만 원작은 장진 감독이다. 따라서 역시 장진 감독의 입김도 무시할 수 없던 작품) 등등...
간접적으로, 직접적으로 장진 감독은 정재영이란 배우를 매우 좋아하여 그를 자신의 영화에 자주 기용하였다. 물론 그만큼 값어치를 하는 배우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장진 감독이 좀 이상해졌다.
(누군가는 '박수칠 때 떠나라 때' 부터라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그만의 특유의 유머가 많이 줄어든 것이다.
내 친구중에 장진 감독의 영화를 매우 좋아하여 '킬러들의 수다'에 자청해서 액스트라로까지 나온 녀석이 있다.
그 친구도 이번 작품을 보면서 나에게 이야기하길 '장진 작품을 내가 참 좋아하지만 이 작품 만큼은 아니다'라고 이야기한 것을 보면 얼마나 실망감이 큰지를 알 수 있다.
자 이제부터 그 이유를 살펴보자.
이 영화는 장진 감독과 강우석 감독이 공동으로 만든 영화사인 KnJ 엔터테인먼트의 두번째 작품이다.(첫번째 작품은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였다.)
그렇다보니 이 작품은 강우석 감독의 도움이 없었다고 말할 수 없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장진 감독 작품이 변한 이유는 강우석 감독의 충고(혹은 조언)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진 감독도 사실 따지고 보면 좀 엉뚱한 구석이 있지만 연극 연출, 쇼 오락프로그램의 작가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지라 어찌보면 그 역시도 '작가주의 감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 반대로 강우석 감독은 '작가주의' 보다는 흥행위주의 작품을 만드는데 더 관심이 많다고 보여진다.
장진 감독 식의 유머도 중요하지만 항상 그 유머만 영화에서 보여질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유머가 많이 줄어들고 작품 성격도 우울한 작품 성격 때문에 그만의 재미난 입담을 볼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초반의 이 작품은 장진식 유머가 죽어있는 것은 아니었다.
치성이 머문방이 독방에서 중앙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앞뒤 독방 사람들의 메신저 역할을 하던 장면이라던가, 주중이 처음으로 총쏘는 법을 배우는 장면에서 방아쇠를 잘못당겨 공군 비행기를 얼떨결에 격투시키는 장면 등은 장진이 아니고서는 해낼 수 없는 독특한 장면들이었다.
하지만 탈옥에 성공한 이후부터 장면은 우울해진다.
물론 치성을 어쩔 수 없이 공격한 같은 조직원이자 감방에 있던 부하가 자살을 선택하는 장면이라던가 몇 몇 장면에서는 너무나도 우울한 장면들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다른 조폭 영화와도 비슷한 길을 걷게 된다.
독특한 스타일을 자랑하던 장진 감독 조차도 조폭이라는 코드를 소화하는데는 실패한 것이다.
감방 탈옥 후 성봉식을 치성이 공격하는 장면에서 유머있게 그 장면을 풀었다면 좋았을거늘 다른 조폭영화와 마찬가지로 잔인하게 칼을 쑤시는 장면(물론 영화 속에서는 소리만 나왔지만...)은 뭔가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몇 몇 장면은 너무 심심하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장진 감독의 스타일은 세트라던가 그것을 촬영하는 방식에서 재미있게 드러난다.
가령 '박수칠 때 떠나라'에서 오프닝 부분에서 호텔 천장에서 바라본 각 방의 투숙객의 모습이라던가 '다섯개의 시선-고마운 사람'(옴니버스 영화)에서 밀페된 공간인 줄 알았던 취조실이 알고보니 너무나 공백이 많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은 관객을 오히려 기만시키려는(?) 깜찍한 음모를 꾸미기도 한다.
'거룩한 계보'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고마운 사람'에서 나왔던 그 장면을 다시 사용하고 있는데 치성이 다친후 주중이 통제되어 있는 병실을 찾아가는 장면에서 밀폐된 공간인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는 병실 침대 두개만 보이고 나머지는 텅 빈 모습을 보여준다. 관객을 즐겁게 기만하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정재영 외에도 새로운 인물들이 보이는데 스타 차승원을 '박수칠 때 떠나라'에서 기용한데 이어 이번에는 정준호를 기용하였다. 장진 영화 속에는 대부분 배역이 연극무대에서 내공을 쌓은 전문배우들을 주로 기용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최근 이런 모습은 놀랍기만 하다.
정순탄 역을 맡은 유승용도 사실 장진 영화에서는 감초같이 등장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래도 비중이 높게 등장하였다.
또 재미있는 점은 드라마에서 감초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의 기용도 자주한다는 점인데 '박수칠 때 떠나라'에서 엽기 지배인으로 등장한 이한위라던가, 역시 드라마에서 많은 연기를 보여주었던 김규철이 장진 영화에 투입되었다. 두 배우는 소름끼치는 악역을 보여주었다.
이 외에도 장진 영화에는 단골로 등장하는 정규수, 장영남, 김일웅, 이문수, 박정기 등의 모습을 볼 수 있다.(장진 영화의 배우들에는 필모그래피가 항상 겹쳐있다. 두세 작품씩 말이다.)
장진 그만의 특유의 유머가 줄어든 영화... 아쉽고 안타깝다.
한쪽에서는 장진 감독이 초심을 잃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자만감에 빠졌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러나 앞의 내가 이야기한 장진 영화를 좋아한 그 친구도 그렇고 나 역시 장진 감독의 영화를 좋아했던 사람으로써 이번 작품은 뭔가 아쉬운 작품이 들었다.
장진 감독님... 당신의 감칠맛 나는 유머는 어디로 사라졌나요?
PS. 몰랐던 사실....
이 영화에서도 화이(장진 감독이 자주 이용하는 여자 배역 이름)는 등장한다.
과연 누굴까?
다섯명의 탈옥범이 들른 사진관...
사진관 여주인(윤유선)이 바로 화이이다.
장진 감독은 동치성과 화이를 좋아하는 감독임은 분명한 사실인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