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너무도 어울리는 영화를 마침 비가 오는 날 보았다. 이전까지의 장진 감독의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남자냄새 자욱한 영화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번도 배우들이 생각하거나 고민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 영화의 슬로건처럼 밀어붙이고 퍼붓고 전진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보는 게 지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장면장면에 충실하다보니 전체적인 이야기는 잃었다는 것! 장진 감독 특유의 익살스러운 이야기와 대사는 이제 거의 정점에 도달했는데 탈출을 위해 벽을 부수려 한다던가 탈옥수가 교도소로 면회를 가는 것 등은 가히 존경의 수준을 넘어 경이로워 보였다.
정재영은 선(線)이 무척 강한 배우이나 그 속에 선(善)을 품고 있기에 장진의 영화와 무척이나 닮아있다. 하지만 그에 못 미치는 정준호의 연기력은 눈에 밟혔다. 사실 영화를 보면 정준호는 조연에 불과하다. 모든 것이 정재영으로 돌아 가기 때문에.
다른 영화에 비해 BG가 무척 많이 쓰였는데 앞의 한시간 동안 나오는 피아노 소리는 나름대로의 테마가 있어 무척이나 듣기 좋았다. 그리고 상황과 역설되는 음악은 그 나름대로의 운치와 재미를 느끼게 해 주었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와서 <거룩한 계보>는 크게 의미를 부여한다던지 사회적인 메세지라던지 그런 답답한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패러디의 냄새가 날 만큼 비슷한 영화의 다양한 모습들이 나온다. 주변인물들의 캐릭터도 워낙 특이하고 강하기 때문에 자칫 빠질 수도 있었으나 큰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게 적재적소에 잘 잡아주었다.
<아는 여자>의 느낌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도 있겠다. 하지만 보이는 그대로 느낀다면 영화는 재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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