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능 리모컨의 태생적 한계

이 만능(?) 리모컨은 상당한 기능적 한계를 갖고 있다. 처음 그가 리모컨을 얻었을 땐 그것이 세상의 모든 사물을 조절할 수 있는 그야말로 전지전능한 리모컨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가 얻은 건 고작 TV-VCR 겸용 리모컨일 따름. 자신을 제외하고 혹은 포함해서 세상을 앞뒤로 감거나 정지시키거나 볼륨을 조절하거나 하는 단순한 기능 밖에 가지고 있지 못하다. 리모컨을 누르는 순간 현실의 모든 것이 TV 브라운관 속의 가상세계로 돌변한다는 것. 이것이 이 리모컨의 가장 유일한 기능이겠다.

사실 리모컨으로 삶을 빨리감기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닥 매력적인 일은 아니다. 만능 리모컨이라면 다른 재미난 일들도 할 수 있었을텐데... 그렇지 않은가.(상상해보자...^^;) 물론 나와 당신들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전부 다 심의를 통과할 만한 것들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는 단순하게 간다. 재미있을 만한(?) 거의 모든 요소들을 배제한 채 패스트 포워드 기능에만 천착한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보여준 기능 중 볼륨기능이 가장 좋았다는 생각.) 그 이유는? 답은 자명하다. 교훈을 줘야하기 때문이지. 오로지 하나의 결론으로 내닫기 위해 용감하게 오컴의 면도날을 들이댄다. 잎 걷어내고 잔가지 자르고 나니 거대한 줄기만 남았다. 가족이라는 휴머니티. 이 헐리웃의 위대한 뿌리!

현대인들에게 고함...?

이 영화가 인내와 노력, 과정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심신의 안위와 결과만을 추구하는 현대인에 대한 풍자. 또한 그런 현대인들에게 주는 충고라 생각해보자. 성공을 위해 자신의 주변은 돌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제 조금 느리게 살아보자라고 말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런 주제라면 이미 진부할 뿐더러 현실과도 동떨어진 것이다. 과연 '성공을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는 사람이 저 미국에, 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물론 70~80년대였다면 이런 주제가 먹혔을 법하다. 세계경제의 고속성장, 미국의 전성기였던 그 때라면. 하지만 이제 세계는 환경의 파괴와 양극화를 얘기하고 있다. 경제대국 저 미국에서조차 어떻게 멋지게 살 것이냐보다 어떻게 더불어 살 것인가를 더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거침없이 들이댄 면도날과 그 깔끔한 결과물에도 불구하고(아니 그런 연유로) 다양한 즐거움과 주제의 적절성마저 잃었기 때문에 '브루스 올마이티'의 그럴 듯한 아류로도, '멋진 인생'에 대한 오마쥬(?)로도 여길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영화가 볼만 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아담 샌들러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의 연기에 미 평단이 좋은 평가를 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지. 하지만 일반 대중에게 그의 소구력은 대단한 힘을 지니고 있다. 그의 말장난이 주는 유쾌함, 여유 있는 그의 웃음이 주는 편안함은 웨딩싱어나 첫 키스만 50번째 같은 아담 샌들러표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느낌일 것이다.

또한 나이가 든다는 것이 점점 더 많은 것을 잃게 한다는 것을 알아가는 당신이라면 영화 후반의 뭉클한 감동도 적절히 느꼈을 것이다.

니 인생을 빨리감아봐!

누가 만약 내게 그런 기회를 준다면 난 절대 사양이다. 물론 과거에는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특히 고3때는 정말 패스트패스트포워드를 하고 싶었더랬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되감고 싶을 때는 많이 있었을지언정 빨리 가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삶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아 가는 것일까? ㅋㅋ 모르겠다.
그냥 아까우니까...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