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폭풍의 언덕, 주홍글씨 등등 세계명작전집에서 보아왔던 익숙한 이름 "오만과 편견".
하지만 제목만 알고 있었지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이 소설이 3월에 영화로 개봉된다는 사실에, 요즘 흔히 나오는 흥행위주 유치찬란 영화에 식상해있던 나는 간만에 작품성 있는 영화가 나오리란 기대감과 함께 이 소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원래 하나의 작품이 책과 영화로 동시에 존재한다면, 우선 책부터 읽은 뒤에 영화로 보는
버릇이자 철칙이 있던 나였기에 먼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기로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몇군데의 도서관을 찾아보았지만, 대출상태였거나 책상태가 좋지않아서
빌려볼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내가 사는 지역의 한 영화극장에서 오만과 편견 시사회를 연다는 메일을 우연히 받게
되었다.
지방에 사는 데다가 이벤트 당첨같은 행운은 경험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기대하지 않고
시사회에 응모를 했다.
이게 왠일?
난생 처음으로 시사회란 것에 당첨되어서, 개봉도 안한 영화를 극장에서 먼저보게 되는 행운을
얻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난 제목만 알지, 내용도 주인공 이름도 모른채 영화를 보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보게 된 영화는 꽤 괜찮았다. 열정적인 불꽃같은 사랑보다는 잔잔한
안개같은 사랑을 좋아하는 여자의 입장에서는 지루함을 느낄 수 없었고, "오만"과 "편견"이란
어렵고도 무거운 주제를 남녀의 사랑을 통해 쉽게 전달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사실, 폭풍의 언덕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어서 읽기를 중단한 이후부터, 왠지 고전 속
사랑이야기는 어둡고 복잡할 뿐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왔었다. 하지만 오만과 편견의
사랑은 깔끔하고 아름다워서 좋았다. 여자가 좋은 남자 만나 집안, 인생 다 피게 된다는
신데렐라식 흐름은 다소 아쉽기도 했다.)
남자관객들에게는 딸 다섯인 집안의 재잘재잘 호기심이 시끄러워 싫었을수도 있지만,
언니 여동생 북적북적한 가족구성원이 내게는 부러움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작은아씨들처럼.)
나역시 처음에는 무뚝뚝하고 인상이 어두운 다아시가 무척이나 마음에 안들었지만, 알고보니 표현력이 부족했을 뿐이지 괜찮은 사람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첫느낌만을 믿고 모든 것을 결정짓는 사람의 편견(더불어 자신의 판단이 정확하리라 믿는 것도 오만이 아닐까 싶다.)이 나의 뒤통수를 때리는 기분이었다.
"태극기 휘날리며", "이프 온리"처럼 진한 감동을 주며 눈물나는 영화는 아니지만, 값진 문학작품을 영화화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원작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작품성이 느껴지는 이런 영화가 많이 나왔으면 싶다.
(추신 : 여주인공이 익숙하지 않나요? "러브 액츄얼리"에서
남편의 친구-결혼장면 촬영했던-에게 사랑고백을 받은 여자였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앞니가 예쁘게 드러나는 사랑스러운 미소는 여전하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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