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1년전 삼풍백화점이 신기루처럼 무너져내리던 순간을 똑똑히 기억한다. 물론 내가 그 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당시 내가 뭘 하다가 그 소식을 처음 접했는지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할 정도로 그 순간을 뚜렷이 기억한다는 뜻이다.(난 그 당시 MBC에서 방영하던 만화 <개구쟁이 태즈>를 보던 중 속보자막으로 그 소식을 처음 알았다.) 그 당시 몇몇 생존자들이 사고가 일어난 뒤 수일이 지난 뒤에 구출되었었는데, 그 때마다 든 생각은 "어떻게 저렇게 오래동안 살 수 있었을까"하는 것이었다. 물도, 햇빛도 들지 않는 곳, 잠들면 다시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는 곳에서 어떻게 그렇게 또렷하게 정신을 놓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5년 전, 또 한번 그만한 충격으로 다가온 9.11 테러 사건을 영상으로 재현한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이렇게 기적적으로 죽음의 늪에서 빠져나온 이들의 생존기를 따라간다. 예고편을 처음 봤을 때에는 정말 감상적이고 제대로 울리는 영화일 줄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영화는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객관적으로 근접적인 시선으로 생지옥에 빠진 이들이 다시 생명의 불씨를 틔울 때까지의 숨막히는 순간들을 훑어간다. 정치적 시선이 들어갈 법하면서도, 그런 것은 최대한 배제한 채.
이 영화의 두 주인공 존 맥라글린(니콜라스 케이지)과 윌 히메노(마이클 페나)는 뉴욕과 뉴저지를 담당하는 항만 경찰청에 근무하는 평범한 가장이다. 존에겐 아내 다나(마리아 벨로)와 네 아이들이 있고, 윌에겐 아내 앨리슨(매기 질렌할)과 딸 비앙카, 그리고 아내의 뱃속에 딸이 하나 더 있다. 가장으로서의 소박한 행복감에 만족하며 살아가던 이들에게 9월 11일 세계 무역센터의 대재앙이 닥친다. 건물이 주저앉기 전 내부에 있는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임무에 존과 윌, 그리고 돔(제이 헤르난데즈)과 안토니오(아맨도 리에스코)가 투입되지만, 위태롭던 건물은 가차없이 무너져내리고 이 아비규환 속에 투입된 지원 인력 중 살아남은 이라곤 존과 윌 뿐.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고 흙먼지가 호흡기를 조여오는 상황 속에서 그들은 삶의 끈을 놓지 않으려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바깥에선 이들의 생사를 알 길이 없는 가족들이 모은 두 손을 놓을 줄 모르며 애타게 기다리는데.
이 영화의 내용은 지극히 단순하다. 한 쪽에서는 불의의 사고로 거대한 건물 더미에 매몰된 채 구조만을 숨죽이며 기다리는 이들이 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이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가족들이 두 손 맞잡고 애를 태우고 있다. 어떻게 보면 대단히 지루하고 질질 끄는 전개가 될 수 있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그렇지 않다. 어떤 확실한 굴곡이 보이는 극과 극의 모습보다 영원처럼 긴 시간 속에서 특별한 변화 없이 말 한 마디, 숨 한 모금 제대로 쉬지 못하는 모습을 연기하는 것이 더욱 어렵고 대단한 일이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그만큼 니콜라스 케이지를 비롯한 이 영화 속 많은 배우들이 조용하지만 깊은 에너지를 품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니콜라스 케이지는 특히나 이 영화 속에서 죽음의 고비에 갈수록 가까이 다가가는데, 눈에 확 튀게 과장된 연기도 아닌, 갈수록 온몸을 조여오는 고통에 마비된 것처럼 힘을 잃어가는 모습을 실제 상황인 것처럼, 보는 사람도 덩달아 지치고 고통스러운 느낌이 들게 연기해냈다. 그 와중에 그나마 아픔은 덜하지만 살기 위해 역시 부단히 애를 쓰며 배수관도 퉁겨보는 윌 히메노 역의 마이클 페나는 상대적으로 밝으면서도 인간적인 매력이 듬뿍 묻어나는 친근한 모습을 보여주었다.(영화 속 이 배우의 생김새를 보라. 둥글둥글한 것이 정말 성실하게 생겼다!!) 두 경찰관의 아내 역할을 맡으 마리아 벨로와 매기 질렌할 또한 반려자의 생존을 애타게 기원하는 이들의 모습으로서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다. 온갖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자신을 바로잡기 위해 냉정과 열정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야 하는 그들의 모습이 꽤 마음에 와 닿았다. 직접 겪어본 사람이 아니라면 이 죽음보다 긴 시간의 고통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으랴. 이를 무리없이 소화해냈으니 모두들 대단한 연기를 보여줬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나부터가 작년 즈음에 올리버 스톤 감독이 9.11 테러를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보나마나 논쟁적인 영화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 만큼 영화가 이렇게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휴먼드라마의 모양새가 된 것이 의외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날선 목소리로 9.11 테러를 둘러싼 강대국의 무자비한 폭력을 거침없이 꼬집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분들이라면 적잖이 실망도 했을 것이고. 아마 베트남전이나 케네디 암살 사건같은 것과는 달리 일어난지 5년 밖에 되지 않은 최근의 사건이라 다소나마 조심스런 시선으로 다가가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영화가 닭살 돋게 만드는 애국주의와 영웅주의로 무장한 미국식 휴먼 드라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도발적으로 나가지는 않는 대신에 최대한 사실적으로 나가기로 결심한 듯 싶다.
영화는 5년 전 우리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사고 당시의 그 참혹한 비주얼을 직접 보여주지 않는다. 처음부터 주인공들의 시선만 따라가고, 그들이 건물 안에서 구조작업을 펼치고 있던 중 청천벽력같이 건물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것이다. 외부에서 그 순간이 어떻게 펼쳐졌는가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주인공들이 건물에 매몰된 이후에도 그렇다. 우리에겐 테러, 국제정세 등 잔뜩 무게있는 단어들이 마구 연상되는 이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는가에는 카메라를 향하지 않고 오로지 끈질기게 삶의 끈을 놓지 않는 주인공들과 그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만을 번갈아 비출 뿐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9.11 테러라는 대단히 정치적인 문제를 소재로 하고 있으나 절대 정치적으로 다가가고 있지 않다. 물론 일부러 그런 것일테고. 일부러 부드럽게 나간 영화더러 날카롭지 못하다고 손가락질하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주인공들이 정말 놀라운 생존력으로 결국 살아남고, 그들의 직업이 경찰이긴 하지만서도 이 영화는 절대 영웅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주인공들은 너무나 친근하고 인간적이다. 그들은 건물 더미에 온몸이 깔린 상태에서까지 진지하고 영웅적인 고민을 하며 생존에 대한 일념으로 교과서적인 대사들만 늘어놓는 사람들이 아니다. 인간으로선 너무나 당연한 살고자 하는 욕구와 그런 욕구와 달리 점점 발걸음을 빨리 하며 다가오는 죽음의 손길 사이에서 때론 나약하게 무너지고 때론 아등바등 버티려 하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담겨 있다. 극중에서 히메노는 잠시 잠이 들었는데 꿈에 예수님이 물병을 들고 서 있더라는 얘기를 한다. 관객들은 다소 황당한 꿈 얘기에 웃음을 터뜨린다. 마냥 진지한 영웅주의로 무장한 영화라면 이런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예수님이 물통을 들고 있는 모습은 쉽게 매치하기 어려운 이미지라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간절히 물이 그립고 먹을 것이 그리운 그들이기에 어느덧 그들을 향한 안타까움의 시선으로 새삼 바뀌는 것이다. "얼마나 목이 마르고 마실 게 그리웠으면..."하는 마음 말이다.
이처럼 피해자들을 구하고자 했다가 자신들이 매몰되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 경찰의 모습은 이들이 마냥 우러러봐야 할 영웅이 아니라, 평범하지만 거대한 힘을 갖고 있는 보통 사람의 모습임을 실감케 한다. 그들도 죽음으로 이끌지 모를 잠이 두렵고, 옆에서 갑작스레 나는 폭발음이 무서운 건 마찬가지다. 똑같이 죽음 앞에선 두렵고 가족이 그리운 인간인 것이다. 이를 유독 절실히 느낄 수 있는 이야기가 또 있다. 맥라글린은 갇혀 있는 내내 부엌 못고쳐준 걸 계속 이야기한다. 심지어 의식을 잃어가는 중에 보이는 환영에서도 아내가 부엌 얘기를 하니 말이다. 참으로 시시콜콜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그래서 "못고쳐 준 부엌 꼭 고쳐주고픈" 맥라글린의 그리움은 더 가슴에 잘 와닿는지도 모르겠다. 죽음의 문턱을 넘을지도 모를 상황에서, 특별한 영웅이 아닌 이상 보통 사람이라면 나라의 미래나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기 보단 어제 잘 해주지 못했던 가족이, 깜빡 잊고 하지 않았던 자그마한 일들이 더 가슴에 사무치게 남을테니 말이다. 그만큼 이들은 어깨에 힘을 주지도 않고 그 어떤 정치적 시선도 갖지 않은, 그저 가족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보통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 어떤 거창한 정치적 전략이나 닭살 돋는 애국심보다도, 그저 곁에 있는 동료와 이웃을 위해 끝까지 삶의 끈을 놓지 않는 마음이 오히려 이들을 살게 만든다. 무고한 희생자들을 줄줄이 낳는 테러나 그런 테러에 대한 감정적인 복수나 모두가 성공적인 결과를 낳지는 못한다. 결코 사람을 살릴 수 있을 만큼의 괴력을 발휘할 수는 없다. 나를 생각하며 웃고 있을 가족, 나를 믿으며 굳건히 곁에 있어줄 친구가 있기에 우리는 그 많은 위기 속에서도 초인처럼 벌떡 일어서는 것이다. 영화는 이렇게 거창한 애국심도 허울좋은 영웅주의도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박하지만 깊은 사랑과 믿음의 힘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정치적 시선을 벗어나려는 시도까지도 정치적일 수 있다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딱딱한 시선을 유지하며 그렇게까지 차갑게 보고 싶지는 않다. 보복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잔혹하고 무자비하게 폭탄을 쏟아붓는 미국이 몹쓸 나라처럼 보여도, 그 아래에서 아는 것도 별로 없이 욕심없이 부지런히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까지 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영화 속 등장인물들 중에 해병대 아저씨는 다소 에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사람도 분명 나름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발휘하고 생명을 구하는 장한 일을 하기도 하지만, 자기 이름보다도 해병이라는 직책을 먼저 내세울 만큼 자긍심, 애국심이 강한 이 사람을 보고 있자면 마냥 감동적이지만은 않다. 아니, 이 사람 나올 때마다 많은 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허세 부리지 말라"는 어떤 분의 말이 확 떠오르는 캐릭터였다. 나중에 해병에 재입대에서 이라크까지 갔다는데, 나라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다소 맹목적으로 보이는 것이 좀 거슬렸다. 혹시 아는가, 그 장한 애국심과 미국 국민들에 대한 애정에 힘입어 이라크에서 거침없이 총질과 폭탄 세례를 해댔을지. 너무 큰 포부를 품어서 상대적으로 공감은 제일 안됐다.
하지만 이런 다소 당황스러운 아저씨의 모습은 잊어버리고, 이 영화 속에서 욕심없이 사람이 사람에 대해 갖는 가장 원초적인 애정으로 서로의 삶을 다독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분명 보고 나서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9.11 테러에 대한 정치적 시선만 어느 정도 걷어낸다면, 영화는 우리가 잊고 있을 만큼 자그마한 삶의 요소들이 실은 괴력을 갖고 있다는 걸 꽤 설득력 있게 상기시킨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때론 겁도 없이 무모하게 보일 수 있는 설익은 영웅주의, 애국주의보다는 예수님조차도 물통을 들게 할 만큼 생존에 대한 강한 열망, 헛것으로까지 어제 하지 못한 작은 일이 눈에 밟힐 만큼 시시콜콜한 일상에 대한 애정이 그들을 살아있게 하는 것이다. 맥라글린이 "당신이 나를 살아있게 했어"라고 얘기한 대상은 마냥 국기만 휘날리며 버티고 있는 국가도, 거창한 사상이나 종교도 아니다. 같이 아파하며 그를 기다리고 희망을 놓치지 않고 있었던 그의 아내, 그의 가족이었다. 떡대만 좋은 영웅은 필요없다. 때론 가장 사소한 것이 가장 거대한 힘을 낳는 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