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를 시사회를 통해 보았다. 원래 다른 사람과는 달리 영화를 감독 위주로 보는 성향이 강하고 유하 감독의 작품은 이제껏 빼놓지 않고 감상했기에 당연히 이 작품에 거는 기대는 매우 컸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배우의 연기력 수준 또한 매우 중요하지만 영화를 그림으로 비유해 볼 때 감독은 어떤 작품을 만들지 구상하고 스케치를 하는 화가이고, 배우는 그 그림에 녹아들어 있는 사물이나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감독이 어떤 식으로 연출의도를 가지고, 어떤 식으로 배우들의 연기를 이끌고, 어떤 식으로 극의 결말을 구상할 지에 따라서 영화가 크게 달라지는 것을 고려해볼 때 분명 영화는 감독의 비중이 큰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비열한 거리’를 보면서도 과연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데 주력하면서 영화를 감상했다.
이 영화는 이야기 전개가 탄탄하고 간간이 나오는 액션 신에서도 처절함을 느끼게 할 정도로 사실적인 묘사에 성공했다. 배우들의 연기도 완벽하다고 할 순 없었지만 그런대로 작품에 녹아들었기에 보는 데 큰 거부감을 느끼진 않았다.
유하 감독은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을 했다. “비열한 거리는 여타의 조폭영화와는 달리 결코 조폭을 미화하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안티 조폭영화이다.” 이 말이 곧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전 한국영화에서 나오는 조폭은 상당 수준 미화된 것이 사실이었다. 사실 사회에서 그리 대접받지 못하고 음지에서 떠도는 존재였던 조폭이 영화상에서는 의리의 화신이자 남성성이 절정에 달한 영웅적인 존재로 그려진 것이 사실이다. 당연스럽게 그러한 작품들 대다수의 액션 신은 멋들어졌고 마치 무협영화에 나오는 고수들의 대결처럼 그려졌다. 그러나 ‘비열한 거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든 적은 결코 없었다. 특히 집단 터널 난투극 장면에서 느껴지는 잔인함과 고통의 강도는 대단했다. 살과 살이 맞부딪치고 칼에 찔리고 야구방망이에 맞아 나뒹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폭력에 대한 거부감과 혐오가 생기게 된다.
주인공으로 나온 조인성은 약간은 어색한 사투리로 강조하면서 말하곤 하다. “식구는 같이 먹는 입구멍이다”라고. 그리고 조폭인 자신에 대해 자조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먹고 살다보니 하게 된 일이라고” 유하 감독은 전작인 ‘말죽거리 잔혹사’에 이어 이번 작품을 폭력에 대한 3부작의 연장선상에서 만든 작품이라고 말한다. 유신 시절 고교시절을 보낸 그가 당시에 느낀 폭력에 대한 감정은 매우 유별나 보인다. 말죽거리 잔혹사가 유신시절 부정한 권위와 권력에 짓눌려진 학생들의 분노를 대변한다면, 비열한 거리는 못 배운 사회 빈민층이 냉정한 사회의 폭력성에 희생되는 것을 부각시키는데 주력한 것으로 보인다. 유하 감독은 조폭이 사회의 암적인 존재라고 생각지는 않는 것 같다. 다만 그들이 그렇게 폭력을 휘두를 수 밖에 없게 만들어지는 사회의 부조리와 냉엄한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것 같다. 조폭이란 존재자체에 대해서도 미화시키기는 커녕 사회 구조상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필요악같은 존재로 느껴지게 만든다.
이 작품은 나름대로 영화 음악에도 상당한 신경을 쓴 것으로 보여진다. ‘비열한 거리’의 음악은 애잔하면서도 가슴을 서글프고 외롭게 만든다. 부하에게 배신을 당해 죽어가는 병두의 눈빛처럼 말이다. 병두가 영화 상에서 부르는 트로트 곡도 그의 겉모습에 어울리지 않게 웃음을 나게 만들지만 그런 어설픈 부조화가 마치 우리네 삶과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회에서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법조계 인사와 사업가가 온통 구린 사생활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또는 보통 사람들과 똑같은 고민과 감정을 지니고 있으면서 어쩔 수 없이 폭력을 써야하는 그들 조폭의 아이러니처럼 말이다.
신기하게 느끼는 것은 전작 말죽거리와 비슷하게 주인공의 첫사랑 부분이다. 사실 그의 작품에서 여성은 큰 비중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여성 주인공으로 출현하는 이들은 사춘기 시절 연정을 품어봤음 직할 정도로 청순한 외모를 지니고 있다. 남성관객의 감수성을 자극하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결국 그 사랑이 제대로 이루어지 못하고 말지만 이 부분에서 과거 옛 추억의 노스텔지어가 상당히 자극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나 남성들에겐 고교 시절 한번쯤은 품어봤을 법한 아련한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당연스럽게 나도 그러한 옛 추억에 빠져봤고 그러면서 이루어지지 않는 첫사랑처럼 병두의 아픈 마음도 이해할 수 가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한동안 멍해질 정도로 강한 여운을 느꼈다. 나도 남자인지라 굳게 믿고 의지한 동생에게 칼을 맞고 죽어가는 병두의 모습은 상당히 애잔하고 슬펐다. 한순간 유하 감독의 연출 의도같은 것은 생각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역시 사람도 항상 이성적일 수 만은 없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