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영웅이 많다. 물론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영웅들이지만 그들은 스크린을 통해 인간들에게 영감을 주고 감동을 선사한다. 거미줄을 뽑아내며 빌딩숲을 가로지르는 스파이더맨이나 기이한 자질 탓에 인간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하는 돌연변이 집단인 엑스맨이나 자신의 어두운 과거로 인해 영웅이 되어버린 배트맨이나 모두가 다 할리웃이 생산해낸 허구속의 영웅들이다. 그리고 이 영웅들이 처음 활약을 선보인 건 평면의 제지로 만들어진 만화책이라는 것이다.
마블 코믹스에서 만들어낸 영웅들은 하나둘씩 줄을 서서 스크린으로 입성했고 아직도 그들은 스크린에서 활약중이다. 허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마블 코믹스에서 생산해내는 영웅들은 죄다 안티히어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자신의 특별함을 비관해야만 하는 평범하지 못함에 대한 회한이 그들 캐릭터가 지닌 교집합이다.
슈퍼맨은 마블 코믹스가 창조해낸 캐릭터의 선봉장이자 대선배격의 캐릭터이다. 가장 먼저 스크린에서 활약한 슈퍼맨은 4편의 극장판이외에도 40여편에 이르는 TV판과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각색된 노장이다.
사실 슈퍼맨이라는 캐릭터가 지니는 기본적인 성향은 태생이 같은 -마블 코믹스에서 배출한- 안티히어로와는 차별점을 지닌다. 그는 애초에 피가 다르다. 크립톤 행성에서 태어나 지구인과는 현격한 본래의 자질을 지닌 그의 선천적 능력은 그에게 영웅적 고뇌를 강요하지 않는다. 다른 영웅들이 자신의 능력을 후천적으로 꺠닫고 평범해질 수 없는 인생을 비관하는 사이 그는 자신의 인생 그 자체에 대한 숙명을 직시하고 받아들인다. 그는 절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으며 자신이 살아가야 할 영웅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마치 바른생활 사나이처럼 자신의 직분을 의심하지 않는다. 물론 출생에 대한 근원적 고찰은 있지만 이는 비관적이지 않은 호기심의 발현일 뿐이다.
어쩌면 슈퍼맨을 본다는 것은 현존하는 신에 대한 갈망, 즉 신을 목격하고자 하는 욕망과도 비슷하다. 인간이 신을 믿으며 기도를 하는 것은 구원에 대한 갈망과 맞닿는다. 그리고 자신의 위기를 실제로 구원해줄 상대가 존재한다면 그보다도 삶에 대한 안도감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없을지 모른다. 그런 관점에서 슈퍼맨은 신에 대한 목격담에 대한 갈망과 맞닿는다. 특히 이번 작품은 노골적으로 그런 의미를 대사에 담아 투영한다. 렉스 루더(케빈 스페이시 역)는 신은 빨강 망또를 두르고 날아다닌다고 비꼬지만 이는 슈퍼맨의 존재 자체가 인간을 초월한 신성함에 맞닿아 있음을 노골적으로 선포하는 것과 같다. 마치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 그리스도처럼 슈퍼맨은 인간을 초월한 자신의 능력이 세상을 구원하는데 쓰이는 것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그리고 그의 영웅담을 목격하는 관객들은 인간을 초월한 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부터 신의 은총을 대리만족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쩄든 그는 제목그대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그리고 그 귀환은 그의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같은 추억담이 아닌 다시 시작되는 진행형의 영웅담으로 펼쳐진다. 지난 4편의 시리즈 이후의 이야기라는 것.
일단 그는 자신의 고향인 크립톤 행성을 찾아 떠난 뒤 5년만에 지구로 귀환한다. 사실 새로운 슈퍼맨은 과거의 슈퍼맨과 그리 다를바가 없다. 데일리 플래닛의 어리버리한 기자 클라크 켄트(브랜든 루스 역)와 세상을 위해 동분서주 날아다니는 슈퍼맨의 이중생활은 여전하고 로이스(케이트 보스워스)에 대한 애정어린 눈길은 이중생활 중에도 일관되게 지속된다.
하지만 5년의 공백은 -물론 극장에서는 마지막 영화시리즈 물 이후로 19년간의 공백이지만- 그의 애정전선에 위기감을 주입한다. 그가 5년동안 클립톤 행성을 찾아 떠도는 동안 로이스는 편집장의 아들인 리차드(제임스 마스던 역)와 약혼하고 아들까지 낳은 것. 그리고 이는 슈퍼맨의 개인적 고독감을 부각시키는 키워드가 된다.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지만 개인적인 사랑앞에서 번민하는 남성상의 교차는 상반된 면모의 이미지가 공존하는 캐릭터로부터 도출되는 아이러니한 감성적 흥미를 유발한다. 또한 이는 이번 작품의 감정의 매개로 로맨스가 중심축에 묵직하게 놓여져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슈퍼맨이 절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려 노력한다. 단지 그로 인한 고독감이 개인적인 감성으로 표출될 따름이다.
무엇보다도 영웅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똑부러진 악당이다. 사실 악당이 빛나지 않으면 영웅도 빛날 이유가 없다. 막아야 할 적이 존재해야만 영웅의 위엄이 선다. 그리고 슈퍼맨의 가치를 빛내주는 것은 그의 영원한 숙적 렉스 루더(케빈 스페이시 역)이다. 슈퍼맨의 공백동안 자신이 있어야 할 교도소에서 풀려난 그는 더욱 교활해진 두뇌회전을 바탕으로 악마적인 계획을 진행한다.
로이스와 슈퍼맨의 로맨스가 영화의 내면적인 감정선을 책임진다면 수퍼맨과 렉스의 대결은 영화의 외면적인 규모적 긴장감을 촉발시킨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이 주목되는 것은 21세기로 끌어낸 슈퍼맨의 21세기형 할리웃 블록버스터로써의 변화일 것이다. 사실 슈퍼맨이 리메이크된다는 사실은 기대만큼의 우려를 빚어내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니까. 전설처럼 남겨진 과거의 영웅을 현실에서 비웃음거리로 전락시켜버리지 않을까하는 우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우려따윈 조금도 필요하지 않을 것만 같다. 우리가 기억하는 슈퍼맨은 지금은 고인이 된 크리스토퍼 리브가 연기한 슈퍼맨이다. 그리고 그의 바톤을 넘겨받은 브랜든 루스는 그의 전설을 이어받을 자격에 대한 의심을 충분히 불식하게 한다. 오히려 과거의 슈퍼맨보다 섬세함이 가미된 그의 외모는 오늘날의 코드와도 맞아떨어지는 적합성을 보인다.
무엇보다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팽창한 비쥬얼 그 자체에도 주목할 수 밖에 없다. 오프닝에서부터 보여지는 은하계의 묘사는 이 영화의 CG가 얼마나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결과물인지를 극명하게 암시한다. 그리고 극 초반부터 보여지는 비행기의 추락씬은 관객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어쨌든 그이후로도 영화는 자본력을 바탕으로 CG기술을 마음껏 뽐내는 할리웃 블록버스터의 위용을 등에 업은 슈퍼맨의 복귀전을 화려하게 수놓으며 관객에게 신고한다. 군더더기없는 영화의 스케일은 관객에게 만족감을 주는 가장 큰 첨병이 되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필자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압권인 장면은 슈퍼맨이 로이스와 함꼐 활공하는 씬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영화사에서 가장 로맨틱한 장면중 하나라고 여겨질 정도로 남자라면 그의 비행능력이 부러워질 수 밖에 없는 장면이 아닐까싶다. -물론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발상이지만-
이처럼 슈퍼맨은 세상을 구원하면서도 개인적인 사랑을 꿈꾸기도 하는 소박한 영혼이며 옳은 일 앞에 주저하지 않는 곧은 정신의 소유자이다. 이는 지극히 이상적이면서도 만인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캐릭터의 면모를 갖춘 비현실적인 이상적 캐릭터이다. 그의 캐릭터가 지닌 매력은 말 그대로 박애적인 헌신성 그 자체에 있다. 자신의 모든것을 버려도 인류를 구하기 위해 날아다니는 슈퍼맨의 굳은 결의는 상투적인 감동을 부른다. 특히 이번 작품의 후반부에서 탈진한 채 추락하는 슈퍼맨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연민은 상상이상의 감동을 부른다. 이는 분명 그가 미국을 대표하는 우월주의와 현실을 인식하는데 방해가 되는 허구적인 선전성 영웅담이라는 비판과는 다른 국면에서 바라보아져야 할 부분이어야 마땅하다. 솔직히 슈퍼맨의 활동이 미국위주로 보여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굳히 민족적 우월성의 문제로 확대해야할 강박관념따윈 지닐 필요까진 없다고 본다. 적어도 과거가 아닌 현재에서는 말이다. 그가 이라크로 날아가는 것도 아니고 테러리즘과 맞서는 것도 아닌 영화속의 적을 퇴치할 따름인 이상은 말이다.
어쨌든 빨강 망또와 푸른 타이즈 위로 겹쳐입은 빨간 팬츠는 여전하고 배우는 변했어도 슈퍼맨의 매력 역시 세월을 따라 진해진 향수만큼이나 유효하다.
브라이언 싱어의 또다른 영웅담은 상당히 성공적으로 보인다. 엑스맨의 고뇌만큼 심각하진 않지만 적절한 긴장감과 만족스러운 비쥬얼의 완성은 슈퍼맨의 귀환에 걸림돌이 될만한 우려를 버리고 그의 무사입성을 확실히 자리매김한다. 특히 속편의 은근한 뉘앙스가 될지도 모르는 슈퍼맨 일가에 대한 노골적인 암시는 또다른 기대감을 형성하며 마지막까지 여운을 더한다. 인물들의 개인적 사연을 놓치지 않는 캐릭터 메이킹에 능한 스토리텔링의 크리에이티브와 비쥬얼의 스케일 확장에도 더욱 완숙해진 듯한 브라이언 싱어의 능력이 유감없이 드러난 작품이 아닐까 싶다. 또한 배우들의 연기 역시 고전의 매력을 살림 이상의 현대적 세련미로의 승화에 성공한 느낌이다. 또한 과거 미편집본등의 자료를 통해 고인이 된 말론 브란도를 스크린으로 부활시킨 기술력도 경탄할 법한 반가움이다.
슈퍼맨은 실로 아름다운 청년이다. 그리고 그래서 세상은 그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시 돌아온 그대를 위해 극장가에 줄을 서있는 환영인파에게 새롭게 선보이는 복귀전은 실로 만족스럽다. 영웅의 귀환이 단지 돌아왔음의 의미 이상의 돌아온 후 보여준 성과의 충족감으로 연결되었음은 반가움 이상의 즐거움으로 기억되며 언젠가 또 다시 돌아올 지 모르는 영웅에 대한 즐거운 기다림으로 작용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세상을 구원하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로맨틱함을 보여줄 줄 아는 그는 진정 멋진 남자임에는 확실하다. 또한 이는 남성들을 바라보는 여성들의 시선의 눈높이 변화에 대한 우려로도 여길 수 있다. 어쨌든 그는 확실히 시대가 변해도 매력적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빨강 망또를 두른 채 푸른 타이즈위에 빨간 팬츠를 걸친 사내의 패션감각이 멋있어 보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할말은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written by kharis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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