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나름 여러분의 관심을 끌고자 제목에서부터 언어유희를 구사하고자 한 바, 정서적 피해를 끼쳤다면 심심한 사과의 말씀 올린다. 암튼, 2001년 <슈렉> 이후로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와 함께 헐리웃 3D 애니메이션의 양대산맥을 이루던 드림웍스는 사실 한동안 약간의 슬럼프를 겪지 않았나 싶다. 눈부신 동화 패러디를 통해 애니메이션이 이런 재미도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슈렉>의 포스가 너무 강렬헀던 탓일까, <슈렉 2>를 제외하면 드림웍스가 그간 내놓은 3D 애니메이션 <샤크>나 <마다가스카>가 흥행성적을 떠나 작품성 면에서는 그냥 그렇다는 평가를 받아왔기 때문이다.(물론 둘 중에 후에 나온 <마다가스카>는 <샤크>보단 좋은 평가를 받았다) 경쟁사라고 할 수 있을 픽사 스튜디오가 같은 기간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인크레더블>을 내놓으며 내놓는 작품마다 만장일치의 찬사를 받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부분이다.
그런데 이렇던 드림웍스, 이번에 제대로 작정한 듯 싶다. 사실 개봉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도 별로 홍보가 되지 않았으나 막상 뚜껑을 연 이 영화 <헷지>는 드림웍스가 얼마나 절치부심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인가를 여실히 알 수 있는 영화였다. 드림웍스 만의 대담한 매력이 살아숨쉬면서도 이전처럼 많은 패러디나 목소리 배우 "캐스팅빨"에 기대지 않고 온전히 새로운 재미로 가득한 영화였던 것이다.
배경은 현대 미국의 어느 마을 주변. 주택가 옆 산 속에 살고 있던 곰 빈센트(닉 놀테)와 모종의 협력관계를 맺고 있던 너구리 알제이(브루스 윌리스)는 어느날 빈센트의 식량들을 훔치려 하다가 발각되고, 더구나 그 식량들이 달리는 차량에 산산조각나면서 이에 빈센트의 먹이가 될 위험에 놓인다. 그러나 빈센트는 딱 7주일 간의 시간을 주면서, 잃어버린 식량 및 도구들을 가져오지 않으면 그땐 정말 맛나게 드셔 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사면이 제대로 초가인 상황에 놓인 알제이. 그런데 이런 알제이가 생각지 못한 도움을 줄 이들을 발견하니, 그것은 바로 도심 한가운데 숲속에 살고 있던 동물들. 거북이 번(게리 섄들링), 다람쥐 해미(스티브 카렐), 주머니쥐 부녀 오지(윌리엄 섀트너)와 헤더(에이브릴 라빈), 스컹크 스텔라(완다 사이키스)를 비롯한 많은 동물들을 지금 막 수개월에 걸친 겨울잠에서 깨어난 상황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숲 앞에는 거대한 울타리가 그들을 위협하고 있고, 알고보니 그들이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던 숲 중 대부분이 인간들을 위한 주택 단지로 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당장 식량 마련부터 힘들어진 동물들, 이런 동물들 앞에 알제이가 나타나 좋은 식량들은 인간들의 주택가에 있다는 정보를 흘린다. 알제이는 이들을 이용해 자신의 7일 식량 마련 작전을 완수하려는 상황. 동물들 또한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해 알제이의 솔깃한 제안에 찬성하게 되고, 이들의 예측불허 기상천외한 음식 탈취 범죄극은 시작되는데.
3D 애니메이션에서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발전을 얘기하는 건 더 이상 큰 자랑거리도 아닐 듯하다. 이미 우리가 두눈 부릅뜨고 눈여겨보지 않아도 매년 개봉하는 3D 애니메이션들은 자신들만의 기술로 시각적인 발전을 거듭해서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이 영화 <헷지> 역시 너구리 알제이나 스컹크 스텔라, 다람쥐 해미의 털, 고슴도치들의 가시들과 같은 세밀한 묘사가 요구되는 부분에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그래픽 기술 발전의 모습을 보여줬고, 인간들이 사는 주택가의 모습 또한 채광 효과 등에 있어서 상당히 사실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목소리 배우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여전히 브루스 윌리스나 에이브릴 라빈 등 유명 스타들이 함께 하고 있긴 하지만 <샤크> 때 윌 스미스, 르네 젤위거, 로버트 드 니로, 안젤리나 졸리 등의 쟁쟁한 스타들이 모인 것과 비교하면 크게 화려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화려하지 않은 대신에, 이들의 목소리 연기는 하나같이 찰떡궁합이다. 단순히 유명인으로서의 네임 밸류 덕만 보려 한 것이 아니라, 정말 그 캐릭터에 어울려 절로 애정을 갖게끔 해주는 목소리들을 찾은 것이다. 번의 둥글둥글한 겉모습 만큼이나 푸근하고 뚱한 목소리를 들려주는 게리 섄들링, 허스키하고 터프하게 들리면서도 두뇌플레이에 강하다는 걸 과시라도 하듯 시종일관 예리하고 스피디한 말투를 구사하는 브루스 윌리스, 이 사람이 헐리웃의 노홍철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정신없는 해미의 이미지를 말투로 완벽하게 구현한 스티브 카렐, 성깔 있고 자존심 센 스텔라의 이미지를 특유의 약간 갈라지고 째진 듯한 목소리로 실감나게 표현한 완다 사이키스 등 목소리 연기자들의 연기도 영화 속 캐릭터들과 제대로 부합되면서 감칠맛을 더했다.
앞서 얘기했듯, 이 영화를 통해서 드림웍스는 비로소 단순한 패러디나 엽기성에 기대지 않으면서도, 참신한 스토리로 자신들만의 대담한 색채를 만들어나가는 법을 제대로 터득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면모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첫번째로,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매력적이다. 물론 흔치 않은 인간 캐릭터로 나오는 부녀회장이나 동물 박멸 기술자와 같은 캐릭터들은 얼굴만 봐도 정나미가 뚝뚝 떨어지기 충분하지만, 주인공들이라 할 수 있을 동물들의 캐릭터는 하나같이 개성이 뚜렷하고 하는 행동들도 사랑스럽다.
잠시 얍삽한 작전으로 순한 동물들을 홀리려 했지만 곧 가족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착한 성품의 너구리 알제이, 제일 연장자라 동물들을 챙겨주는 처지지만 그만큼 의심이 많고 그만큼 어리버리하기도 한 거북이 번, 하는 행동만큼이나 성격도 급하지만 잘 울고 잘 웃는 잔정많은 다람쥐 해미, 툭하면 죽은 척 연기하는 주머니쥐 아버지 오지와 이런 아버지가 못마땅한 딸 헤더, 냄새만 일으킨다는 컴플렉스때문에 내면의 매력을 펼치지 못하고 고집 세게만 살아가는 스컹크 스텔라, 천한 것들은 접근하지 마라면서도 "나한테 이렇게 대든 애는 네가 처음이야"라는 기름기 좔좔 흐르는 동물성 작업 멘트를 날리는 고양이 타이거 등 모두가 분명한 특징이 있고, 그래서 그들만이 선사할 수 있는 각자의 재미있는 면모가 숨겨져 있다. 비단 독특한 성격들 뿐 아니라, 비주얼만 봐서도 얼마나 애정을 쏟고 싶은가. 두리뭉실한 것이 마냥 갖고 놀고만 싶은 거북이 번이나 꼬마 밤톨이처럼 그저 깨물어주고 싶은 아기 고슴도치들 등 이 동물 캐릭터들은 겉모습으로는 한없이 귀여움을 유발하고, 성격이나 하는 행동들은 끊임없이 웃음을 유발한다. 동네 개에게까지도 누가 다가가기만 하면 "놀아줘!"하고 달려드는 독특한 성격을 부여했다.
두번째로 에피소드의 유쾌한 구성을 들 수 있겠다. 사실 많은 동물들이 음식 탈취 작전을 펼친다는 컨셉을 <오션스 일레븐>이나 <미션 임파서블>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사실 이건 구체적인 패러디라기보다는 그저 모티브가 비슷하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 영화는 예전 드림웍스 작품들처럼 어느 한 장면에서 구체적인 패러디를 구사하는 방법 대신에 그 자체로 참신한 에피소드들을 이어나간다. 공수병에 걸린 듯 위장에 한바탕 소동을 벌이는 다람쥐 해미 에피소드, 애정결핍에 시달리는 동네 개때문에 온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는 알제이와 번의 식량 운반 에피소드, 부녀회장 집에 들어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함정을 피하고 식량을 찾는 작전, 후반부 클라이맥스에서 동물들이 벌이는 자동차 추격전 등 독특한 설정과 넘어가는 상황들로 무장한 에피소드들이 줄지어 나타난다. 특히나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장면은 후반부 최후의 보루로 나선 해미가 신비의 음료(?)를 마시고 난 뒤 펼치는 신기에 가까운 필살기 장면이다.
세번째로 여전히 살아 숨쉬는 드림웍스 특유의 풍자적 시선이다. 특히나 이번 <헷지>에서는 바로 우리 현대인들의 모습을 가리키는 부분들이 많아 꽤 찔리면서도 그만큼 통쾌한 구석이 많았다. 특히나 영화가 동물들의 식량 탈취 작전을 주된 소재로 하는 만큼 의식주에 관해서 풍자하는 부분이 많은데, 특히나 알제이가 초반에 동물들에게 자신의 작전을 설명하면서 "살기 위해 먹는 게 아니라 먹기 위해 사는, 더 먹으려고 운동하고 약도 먹고, 심지어 음식에게 기도까지 올리는" 먹을 것을 제일로 여기는 인간들의 모습을 설명하는 부분은 오히려 자본주의의 물결 앞에서 그저 풍족한 생활을 이루는 데만 열을 올리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따끔하게 꼬집는 듯해 꽤 인상적이었다. 여느 풍자 다큐멘터리 못지 않게 예리하고 거침없는 지적이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또한 후반부 부녀회장과 동물 박멸 기술자 등의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동물들을 죽이려 들고 몰아내려 하는 부분, 억울하게 자신이 살던 곳에서 침입자 대접을 받게 된 동물들의 모습은 우리 자신을 온전한 이 땅의 주인인 줄 알고, 주변의 동물들은 오히려 없어져야 할 방해물로만 생각하는 인간들의 이기적인 면을 꼬집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이처럼 영화는 동물들의 입장에서, 인간들의 바람직하지 못한 면모를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아무래도 동물들이 주인공이고 이에 맞서는 인간들이 악당으로 나오니, 인간들의 안좋은 면들이 나오는 건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이처럼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의 필수 요건인 매력적인 캐릭터는 물론이요, 그저 무릎을 치게 만드는 참신한 에피소드들, 거기에 여전히 드림웍스 특유의 대담한 시선이 남아 있는 현대인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까지 곁들여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제대로 즐길 만한 애니메이션으로 완성되었다. 아이들은 귀여운 캐릭터들과 웃기는 에피소드들에 매료될 것이고, 어른들은 간간이 나오는 어른들을 위한 유머(이를테면 앞에서 말한 고양이 타이거의 "나한테 이렇게 대든 건 네가 처음이야". 이 얼마나 트렌디드라마스러운 멘트인가??)와 풍자의 시선에 매료될 것이다. 그래도 돈을 버는 걸 목적으로 한 상업적 헐리웃 애니메이션인지라 아주 대놓고 엇나가고 대담한 구석은 못보이고 가족을 중요시하는 가족영화다운 메시지는 여전히 보여주고 있지만, 유쾌 상쾌 통쾌한 재미가 있는 이야기 앞에서 이 정도 가족주의 메시지는 그저 양념으로 봐도 무방할 듯 싶다. 암튼 드림웍스, 이번에 아주 제대로 절치부심한 거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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