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가 나온지도 어언 10년. 사실 나는 이 시리즈의 메인테마는 어렸을 때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원작 TV 시리즈는 본 적이 없는지라, 이 원작의 실체가 이런 것이었구나 하는 것은 96년에 나온 <미션 임파서블> 1편을 보고서야 처음 알게 되었다. 치고 부수기만 하는 기존 블럭버스터들과는 달리 뭔가 고전적이고 꽉 들어차 보이는, 배신과 술수, 치밀한 잠입과 음모로 가득한 이 영화는 그저 생각없이 스트레스만 뻥 뚫어주는 게 아니라 팽팽한 긴장감과 추리의 묘미까지 선사한 보기 드문 영화였다.
사실 이전까지 나온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두 편 중에서 본연의 개성을 가장 잘 드러낸 영화는 이 1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편은 오우삼 감독이 메가폰을 넘겨받아 변형은 잘 시켰고 재미도 나름 있었으나, 뜬금없는 오우삼 식 액션 느와르로의 전환은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전편에서 온갖 음모에 허덕이던 다급한 이단 헌트는 2편에선 갑자기 비둘기들을 보디가드 삼아 무림강호처럼 등장하고 불 속을 질주하는 그의 오토바이 또한 기존의 "폼잡지 않는 스타일"과는 좀 거리가 있어보였고(그러나 후반부의 끊임없는 얼굴가면 트릭은 그래도 "<미션 임파서블>다운" 측면을 어느 정도 보여주었다). "이거 이거 이러다가 21세기의 또 다른 제임스 본드 영화가 되는 거 아냐" 하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말이다. 3편도 감독이 데이빗 핀처니, <나크>의 조 카나한이니 하는 감독들이 손을 댔다 떼었다를 반복하고, 배우 또한 스칼렛 요한슨 등의 많은 배우들이 들어갔다 나왔다 해서 이거 이러다가 무산되는 건 아닌가, 만들더라도 날림새가 되는 건 아닌가 걱정도 적잖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꽤 익숙해졌지만 J.J.에이브럼스라는 영화로서는 신인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것도 살짝 걱정이 되었고. 그런데 이게 웬걸, 대박이다.
1,2편에서 그렇게 여러번 생사를 넘나들었던 우리의 IMF(Impossible Mission Force) 요원 이단 헌트(톰 크루즈)는 이제 실전은 손을 떼고 신참 요원들을 양성하는 데 열심이다. 더구나 아리따운 연인 줄리아(미셸 모나한)와의 결혼도 앞두고 있는 상태. 그런데 갑자기 본부로부터 또 연락이 오니, 또 한번 실전에 참가해달라는 것이다. 이단이 애지중지 교육시켰던 후보생 린지 패리스(케리 러셀)이 악명높은 국제적 암거래상 오웬 데비언(필립 시모어 호프먼)의 행방을 쫓는 임무 중 납치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단 헌트는 동료인 루더(빙 레임스), 찰리(조나단 리스-마이어스), 젠(매기 Q) 등과 함께 구출 작전에 나선다. 린지는 가까스로 구하지만 그녀의 머리에 주입된 초소형 시한폭탄에 의해 안타깝게도 그녀는 숨지고, 작전은 실패로 돌아간다. 안그래도 아끼던 후보생을 잃은 슬픔에 몸둘바를 모르겠는데, 본부 국장인 존 브래슬(로렌스 피시번)은 작전상 어느 하나 잘된 구석이 없다며, 여전히 데비언이 우리보다 한수 위임을 확인할 뿐이라며 갈구기만 한다. 더 이상 작전 실패로 본부의 명예를 먹칠할 수 없다는 마음에, 이단은 상부에는 알리지 않고 동료들과 데비언을 소탕하기 위한 작전을 시도하고, 그가 올 것이라는 바티칸 심장부에 잠입하는데.
감독인 J.J.에이브럼스에 대해서 먼저 언급하자면, 그는 TV 시리즈 <앨리어스>를 통해, 첩보 스릴러물에도 "인간적인" 요소가 충분히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단순히 어려운 임무의 연속과 이를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요원들의 활약만 그리는 게 아니라, 이 힘든 일들의 과정에서 인간적으로, 심리적으로 겪는 번뇌와 갈등도 효과적으로 보여줌으로써 TV 첩보물의 새 장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그의 실력은 이 <미션 임파서블> 3번째 편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우선은 등장인물이 많다. 1편에서도 역시나 초반에 이단 헌트와 그의 동료 요원들이 각자의 역할에서 임무를 수행했으나 초반에 그들은 모두 죽음을 당했고, 이후에는 거기다 본부를 배신했다는 누명까지 써서 거의 이단 헌트 혼자의 외로운 싸움이 될 수 밖에 없었다. 2편에서는 여전히 IMF 아래에서 활동하는 것 같긴 한데 본부의 흔적은 그에게 임무를 하달한 상관(앤써니 홉킨스) 외에는 별 흔적도 없어서 온전히 그 혼자서의 슈퍼히어로적인 활약으로 보였고. 그러나 이에 비해 3편은 그 혼자서 임무를 이끌어나가지 않는다. 초반 미션 대상도 그가 가르치던 후보생을 구출하는 것이고, 작전 수행중에도 루더, 찰리, 젠 등 능력 좋은 여러 동료들과 합심해서 임무를 해결해 나간다. 거기에 미인계도 통하고 공격력 또한 뛰어난 젠이나, 젊음을 무기로 다혈질이지만 신속하게 돌아가는 두뇌 플레이를 구사하는 찰리, 무뚝뚝하지만 속마음은 깊은 오랜 동료 루더 등 각 동료들의 개성도 나름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물론 이단이 주인공이니 그 중에서도 비중이 큰 건 사실이지만, 그저 혼자서 천하무적처럼 난관을 헤쳐나가는 것이 아니라 각 요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계획을 실행하고 이 계획들이 하나하나 아귀를 맞춰가면서 작전을 성공으로 이끄는 모습이 첩보 스릴러로서의 묘미를 상당히 살려주었다. 덕분에 1편에서 느꼈던 긴장감 가득한 첩보물로서의 재미도 모처럼 느꼈고. 특히나 바티칸에 잠입해 데비언을 납치하는 작전은 그 놀라운 변장술과 첨단 장비들에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물론 이런 첩보물스런 잠입 작전 뿐 아니라 대규모 액션 장면도 기대를 결코 저버리지 않는다. 초반 린지 패리스 구출 작전에서 펼쳐지는 쉴 틈 없는 총격전과 미사일 추격전, 데비언 호송 도중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다리 위에서의 대규모 격전, 샹하이 밤거리에서 펼쳐지는 자동차 추격전 등 시각을 확 트여주는 시원한 볼거리들도 얼마든지 준비되어 있다. 다만 샹하이 빌딩에서의 "토끼발" 입수 작전에서는 살짝 잠입 작전을 기대했었는데 예상외로 너무 쉽게 스펙터클 스케일의 작전으로 넘어가서 좀 아쉽기는 했다.
감독이 바뀌면서 영화도 바뀐 점 두번째, 상당히 감성적으로 변했다. 물론 2편에서도 오우삼 감독의 욕심에 힘입어서인지 이단과 여주인공(탠디 뉴튼)과의 애절한 로맨스가 어느 정도 가미되긴 했지만, 3편은 그보다 더 현실적으로 다가간다.
3편의 오프닝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멋지게 임무를 완수하거나, 폼나게 선글라스를 휙 벗어던지는 데서 오프닝 크레딧이 뜨는 게 아니라, 앞이 어떻게 될지 모를 악당과, 사랑하는 연인과의 극적인 대치 장면을 보여주고는 오프닝으로 넘어간다. 아마도 지금까지 나온 세 편 중 가장 숨넘어가는 오프닝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3편은 이단 헌트라는 인물의 내적 갈등에도 어느 정도 집중한다. 단지 천하무적으로 불가능한 임무를 완수하는 이단 헌트의 모습 뿐 아니라, 결혼을 앞두고 평범한 가정에서의 단란한 행복을 꿈꾸고, 끊임없이 연인을 속여야 하는 자신의 처지 앞에서 갈등하고, 국가 안보를 위한 임무와 연인의 목숨 앞에서 어느 것을 택해야 하는가 고민하는 등 힘든 일 이면에 그만큼 힘든 걱정들을 안고 있는 이단 헌트의 인간적인 모습이 꽤 비중있게 조명된다. 이러한 이단 헌트 개인으로의 조명은, 본부에서 내려오는 작전만이 아니라 임무 완수와 개인의 생활을 모두 원만하게 하는 것이 어쩌면 진정한 "미션 임파서블"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도 한다.
이런 3편의 특성 때문인지 톰 크루즈의 연기도 한결 부드러워지고 감성적인 면이 강조된 듯하다. 데비언과의 대치 장면에서는 연인의 안전이 어찌나 걱정되는지 아무렇지 않은 듯 굳건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한 줄기 굵은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니 말이다. 단지 히어로처럼 활약하는 요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대단히 빡센 임무 활동인지라 개인 생활에도 그만큼 애로사항이 있는 한 요원의 골때리는 일상사를 블럭버스터급으로 그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 악당 오웬 데비언 역의 필립 시모어 호프먼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이런 첩보 액션물은 1편에서처럼 악당이 끝에 가서야 드러나는 것이 반전의 묘미도 있고 재밌긴 하나, 이 오웬 데비언이라는 악당은 그 포스가 장난이 아니기에 그래도 얼마든지 재미있다. 이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으로 주연급 배우로 우뚝 선 필립 시모어 호프먼은 이 영화에서 예의 그 후덕한 표정으로 살상용 멘트를 거침없이 날리는 냉혈한으로 변신했다. 그 산타할아버지같은 인상으로 "머리에 시한폭탄 박아넣는 건 거의 장난 수준이지"같은 대사를 날려주시는데 말 다했지. 더불어 여담으로 이단 헌트가 오웬 데비언으로 변장해 벌이는 트릭 전술도 꽤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얼굴과 목소리는 감쪽같이 오웬 데비언으로 분장해도, 급격하게 스케일을 달리하는 그 뱃살은 어찌 변장했단 말이오. 이것이 살짝 옥의 티로 보이긴 했다.
다시 이단 헌트의 내면에 대한 얘기로 돌아오면, 그만큼 영화 또한 한결 더 긴박감 넘치는 분위기가 된 듯하다. 단순히 팀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행하는 임무가 아니라 자신의 앞으로의 삶과 영원을 함께 할 사랑이 걸린 임무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이단 헌트는 쉴 틈도 없이 더 많이 뛰고 더 많은 스턴트를 펼치고 그 덕분에 보는 우리 또한 손에 땀을 그득히 쥐는 듯한 긴장감으로 그 재미를 마음껏 만끽할 수 있다. 단순히 정의감에 악당을 처치하자는 마음만 있는 게 아니라, 악당을 처치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연인의 목숨을 위해 그의 요구를 들어줘야 할 것인가에 대한 갈등까지 존재하니 한결 덜 경직된 이단 헌트의 모습도 보여주었고.
소름끼치는 악당과의 끊임없는 대치, 세계 각국을 오가며 펼쳐지는 스펙터클한 추격전과 각종 작전들, 때론 고도의 두뇌플레이를 요구하는 잠입전, 이런 작전들 사이로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랑과 미래에 대한 고민에 이르기까지, <미션 임파서블 3>는 보다 인간적이고, 보다 시원시원하고, 보다 풍부한 재미로 가득찬 블럭버스터이다.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서 그런지, 그만큼 제작자이기도 한 톰 크루즈는 한컷 한컷 정성들여 만든 듯하다. 그만큼 이 영화는 이제 여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후텁지근한 이 날씨에, 영화 초반에 이단이 기력이 쇠한 린지에게 아드레날린을 주저없이 투여할 때처럼 심장을 뻥 뚫어버릴 만큼 쉴 새 없이 아드레날린을 제공하기에 모자란 구석이 거의 없다. 우리가 오락적 만족을 위해 영화를 본다면, 이 영화는 적어도 A 이상의 점수는 매길 만한 자태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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