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그 유명하다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사실 내게 힘들었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이야기전개는 급한 내성격상 몇번이나 책을 덮게 만들었다. 그러나 중반쯤 넘어가면서 차츰 익숙해지기 시작한것이 어느세 푹 빠져버렸다. 아마도 이런게 영국 고전소설들의 매력이리라. 그렇게 잊고 지냈던걸 이번 기회에 영화로 만났다. 철칙대로 '편견없는 자세로'영화를 대하고자 어떠한 사전적정보도 없이 보았는데 딱 첫장면에서 알았다. '예상대로군,제인오스틴' 영화내내 소설속 주인공들은 영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났다. 특히 수다쟁이에 교양없는 어머니 역에 찬사를 보낸다. 소설속 어머니 그대로였다. 모자라지도 지나치지도 않는 그녀의 연기력이란!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러운 나의 어머니. 또하나. '어디서 많이 봤는데,저배우'했던 캐서린 공작부인. 알고보니 '세익스피어인 러브'의 그 여왕님(주디덴치)이셨다. 센스없는(?) 신하들을 나무라던 여왕님은 예의 그 당당함을 그대로 가지고 와 화면가득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몇장면 안되는데도 두배의 효과를 내는 건 역시 연륜인가보다. 정작 중요한 주연이야기는 제외한 조연이야기에 열을 올리는건 이 영화가 신인배우들의 풋풋함보다는 기성배우들의 그것, 진국같은 그것이 더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영화내내 흐르는 피아노 곡은 이상하게도 제인캠피온감독의 '피아노'를 떠오르게 했다. 여성의 복잡다난 그러나 더없이 단순한 심리를 피아노가 말하듯이 이 영화내내 떠다니는 피아노는 아름답고 이쁘며 사랑스럽다. 마치 엘리자베스(키이라 나이틀리)처럼. 웃는 모습이 아이처럼 해맑은 그녀는 알고보니 '러브액츄얼리'의 그녀였다. 그 유명한 '종이넘기며 사랑고백하기'의 그녀였던 것이다. 미친사람처럼 날 웃고 울게 만들었던 러브액츄얼리.대한민국블로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장면의 그녀. 아아! 앞으로 계속 볼 수 있기를... (오드리 또뚜 도 보고싶다)
영국식유머는 즐거웠다. 억지스럽게 밀어부치지 않고 여유있게 기다린다. 관객을 놀리지도 않고 같이 웃는다. 그래서 좋다. 요즘같이 비웃고 공격적이며 조롱하는 '마음이 비어버린 껍데기' 웃음이 아니라 따뜻하게 웃을 수 있어서 좋다.
이 영화 소설을 읽고 가슴에 남아버린 사람들도 읽다가 포기하고 다시 보지 않았던 사람들도 읽지도 않고 제목만 알고 있던 사람들도 모두 보아도 무리없을만큼 충분한 영화다. 사람들아. 이런 영화를 보자. 그래야 다음에도 또 나올것이 아닌가. 지금 보지 않으면 '다음'은 오지조차 않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