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2.09 중앙 시네마 시사회
<주>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다량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내용을 알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읽는 것을 자제해 주십시오.
<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
센스 앤 센서빌리티 (Sense And Sensibility),엠마 (Emma)의 작가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함.
이 영화 정보를 읽고서 원작 소설이 무엇인지 찾아보지 않아도, '어디선가 들어봤는데'라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오만과 편견>은 서점의 고전코너의 두꺼운 책들 사이에 당당히 자리잡고 있는 작품인 것이다.
사실 어찌보면 이 소설은 현대 로맨스물의 모티브라고 볼 수 있겠다. 가난한 여자가 부자 남자와 티격태격하는 과정을 거쳐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부자와 사랑에 빠질려면 건방져야 한다! 드라마의 단골 소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영문학 고전 리스트에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은 단순한 스토리 속에서 드러나는 메시지 때문일 것이다. 어찌보면 사랑과 로맨스로만 보일수도 있는 이 소설은 사실, 제목 그래도 인간의 오만과 편견에 대한 통찰이 돋보인다.
'엘리자베스'(키이라 나이틀리:Keira Knjghtley)는 사랑을 믿는다. 좋은 신랑감은 능력있는 부유한 남자라고 믿는 어머니의 말에는 도무지 공감할 수가 없다. 조그마한 시골 마을에 휴가를 보내러 온 남자를 무도회에서 만난다. '다아시'(매튜 맥파든:Matthew Macfadyne)라는 이름의 이 남자, 어찌나 건방지고 오만하던지 겸손함이란 찾아볼 수도 없다. 처음 눈이 마주쳤을때의 호감은 곧 거부감으로 바뀐다.
하지만 인간 관계에서의 예의나 호감이란, 사실 진실을 드러나지 않게 포장하는 하나의 방법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의'나 '겸손'이라는 단어의 시작은 인간이 서로를 존중하기 위한 긍정적인 의도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관계에서 그것은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서 무난히 어울리기 위한 '포장용 거짓'으로 사용되고 있지 않을까. 사실은 모두 그 진실을 알고 있음에도 넘어가는 '상호 동의된 거짓'의 의미로 통용된다.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 외모의 상대에게 "성격 좋으시네요."라고 인사하거나, 그닥 칭찬할 것이 없는 대상을 "그냥 괜찮은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러한 예의라는 것의 실질적인 사용법에 적응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방지고 오만한 인간으로 분류되기 마련이다. 어쩌면 인간관계에서의 '솔직함'이란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편견'은 왜곡된 평가를 낳는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처지와 가족들에 대한 평판이라는 '편견'이 부당하다고 느끼며 반발하면서도, 그녀 자신도 그 '편견'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다아시'는 신분과 집안이라는 편견으로 '빙리'(사이몬 우즈:Simon Woods)와 '제인'(로자문드 파이크:Rosamund Pike)의 사랑을 반대하고, '엘리자베스'의 마음을 오해한다.
이 영화의 감독 '조 라이트'는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하면서도 여전히 상대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고, 여전히 자존심을 내세운다. <오만과 편견>은 사랑을 할때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에 관한 러브스토리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 소설이 쓰여진 때가 1813년, 그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사람들의 행동이란 변함이 없는 모양이다. 우리는 상대를 사랑하면서도
자존심을 버리지 못하고, 내가 보고 기대하는 상대에 대한 편견을 놓지 못하니 말이다.
영화는 소설의 이야기를 화면으로 충실히 옮겼다.
일단 소설의 감성을 아름답게 옮긴 영상미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무도회의 즐거움과 화려함은 아름다우면서도, 춤추는듯한 카메라의 이동으로 인물들의 감정을 그대로 실어낸다. 복잡한 사람들 사이를 천천히 빠져나가는 시선의 이동,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답답한 가슴과 고민을 씻어내리는 절벽과 산책길의 아름다운 풍경은 소설을 읽을때의 상상을 아름답게 화면으로 옮겨냈다.
특히 두 사람이 감정을 인정하고 만나던 새벽에, 옅은 안개속을 '다아씨'가 걸어오는 롱테이크는 보는이의 가슴을 벅차게 만든다.
비록 그 길고 두꺼운 소설의 이야기를 모두 그대로 옮길 수는 없기에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가 어느정도 축약된 것은 눈에 띄지만, 원작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에는 모자람이 없다. 적절한 이야기의 축약을, 두사람의 감정선을 표현하는데 투자하면서 강한 동화(同化)를 일으킨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 사랑을 하면서 한번쯤은 겪을 고민이 아닌가.
두사람의 로맨스 만을 넘어서, 결혼을 앞둔 여자가 할 수 있는 고민과 갈등의 포커스를 남겨 시대를 넘어선 공감을 이끌어낸다.
안정적인 삶을 위한 결혼을 택한 친구, 경제적 능력이 최우선이라 믿는 어머니, 외적인 매력에 눈먼 동생, 적당히 내조할 수 있는 아내감을 찾는 사촌은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 주위에 있는 인물들이다. 그들의 선택이 옳다 그르다를 함부로 심판할 수 없는 것도 변함이 없다. 정말 내가 믿는 사랑을 올 것을 기다리는 것이 맞는 것인지, 정말 이 기다림 끝에 내가 믿는 사랑이 올 것인지에 대한 고민 역시 변함이 없다.
이 모든 사랑의 고민과 더불어, 이 영화가 아름다운 이유는 사랑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 아닐까 한다.
떨치려고 해도 떨칠 수 없는 자존심과 모든 오해와 편견과 평판을 넘어서, 언젠가는 내 진정한 모습을 사랑해줄 누군가를 만날 것이라는 희망. 나를 발견해줄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러줄 것이라는 희망.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오해와 편견이 잘못되었음을 고백하면서 아버지에게 결혼승락을 받는 장면이 가슴 찡한 이유는, 우리의 기다림에도 그런 사랑이 찾아올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전형적인 스토리 속에서도 감동을 이끌어 내는 것은, 그 속에 담긴 이런 사랑에 대한 통찰과 희망의 메시지 때문이다.
우리가 수많은 예의와 편견의 포장속에서도 진실한 사랑을 찾듯이, 수많은 상투적인 이야기들 속에서도 진실한 메시지는 가슴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written by suy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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