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1.10 명동 롯데시네마 언론 시사회
<주>이 글은 스포일러가 다량 포함되어있습니다. 영화의 내용을 알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제발 읽는 것을 자제해 주실것을 부탁드립니다.
나는 '지강헌 사건'을 기억한다.
비록 내가 초등학교 5학년때 즈음이었지만, 그런 시끌벅적한 사건을 잊어버리기란 쉽지 않다.
"유전 무죄, 무전 유죄"를 외쳤던 그의 모습은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게다가 그 사건을 더욱 잊어버릴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은, 내가 중학교때 즈음 TV에서 해 주었던 한 프로그램이었다.
그 프로그램의 제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으로 치면 <죄와 벌>이나 <사건과 실화>같은 류의 그런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다.
실제 있었던 사건을 드라마적인 재현과 실제 사건 기록, 인터뷰등을 함께 보여주었던 프로그램.
그 사건은 사건 자체로서 충격적이었다.
다만 중학생이었던 나조차 "과연 인간의 죄를 처벌한다는 것이 어디까지가 정당한가."를 고민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실제 '지강헌'이란 인물이 영화 속 '지강혁'처럼 억울하게 감옥에 간 것은 아니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지강혁'(이성재)은 철거촌에 거주하다 반대 시위중 장애인인 동생을 잃고 감옥에 들어간다.
물론 그가 그 전에 몇번의 절도 전과를 지닌 전과자 이었다는 설정을 드러나지만, 감옥에 가게되는 죄명에 있어서 어느 정도 극적인 정당성을 부여했다고 보여진다.
여기에 그가 탈옥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 주는 것이 '김안석'(최민수)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철거촌 시위 당시에 '지강혁'의 동생을 살해한 인물이자, 그가 수감중인 감옥의 교도소장으로 부임해 와서 그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처음 등장부터 '김안석'(최민수)은 악랄한 모습을 보인다.
권력의 힘을 지니고 타고난 악랄함을 보여주는 그의 캐릭터는 '지강혁'이 그토록 싸우고자 하는 '부당한 권력'을 상징한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뭔가 첫단추가 어긋난 것처럼 보여진다.
사실 지강헌 사건이 드라마틱 했던 이유는, "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어디까지 적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갈등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가끔 불거지는 '사형 정당성 논란'과도 일맥상통한다.
영화 <데드 맨 워킹>(Dead Man Walking:팀 로빈스. 1996)이 이러한 논란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화속에서 사형수인 '매튜 폰슬렛'(숀 펜)은 데이트 중이던 10대 연인을 잔인하게 살해한 살인자이자, 인종 차별 주의자에, 히틀러를 숭배하는 파시스트이다. 사형에 반대하며 그를 돕던 '헬렌 수녀'(수잔 서랜든)은 자신 역시 그의 거친 욕설과 잔인한 범행에 그를 도와야 할지 갈등한다.
그러나 마지막 사형장을 향해 걸어가던 그의 모습과 죄를 고백하며 눈물을 흘리던 그의 모습, 그리고 죽어가던 순간의 눈빛은 '사형 제도'라는 것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어찌보면, 다만 작악무도한 인간에 불과한 그를 사형대로 보내는 것이 당연한 듯 보이면서도, 과연 그를 사형대로 보내는 우리 자신 역시 군중으로써 죄책감을 면죄받는 살인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반면 <홀리데이>는 전형적인 선악 대립구조를 만든다.
일반적으로 보면, 죄를 다스리는 권력이 선하고 처벌받는 범죄자는 악하다는 상식을 뒤집어 억울하게 고통받는 인간과 악랄한 권력의 대립 구조를 만든다.
게다가 어쩌면 이렇게 잘 모아뒀는지, 함께 수감된 동료 죄수들 역시 꽤나 딱하게 된 사람들이다.
사소한 절도 몇번에 장기수가 된 사람, 30여만원 동생의 학원비를 훔치다가 장기수가 된 가난한 청년... 극악한 범죄자라곤 한명도 끼어있지 않다.
심지어, 쌀 한가마 훔쳤다가 죽어나간 영감님의 캐릭터는 참..ㅡ.ㅡ;
게다가 교도소에 다시 만난 '김안석'에게 철저하게 당하는 '지강혁'의 모습은 좀 오바이다.
특히 '김안석'이 너무 과장스러운 인물이라 그가 등장할때마다 공포스럽다기 보다는 웃기다..ㅡ.ㅡ;
어쩌면 <일급 살인>(Muder In The First:마크 로코. 1995)에서 영감을 얻은 듯 해 보이지만, 거기서 처절한 감정을 공감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설정적이다.
<일급살인>의 부소장이 고립된 섬과 같은 알카트래즈에서 왕으로 군림하며 점점 독재화 되어간 이야기가 납득이 되며, 그의 냉정한 표정이 조용하면서도 독살스러웠음에 말이다.
반면... 최민수의 '김안석'은 굉장히 시끄럽기만 할 뿐, 위협적인 느낌은 주지 못한다.
어쩌면, '게리 올드만'(Gary Oldman)의 이미지를 따온듯 싶기는 하나, 등뒤를 섬뜩하게 만들었던 그의 뼛속부터 올라오는 사악한 느낌은 흉내내지를 못했나보다.
뭐, 이런식으로 영화가 너무 '지강혁'과 그의 동료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오히려 영화는 맥이 빠진다.
만약, 영화가 그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기 보다는 그들이 범죄자 임을 인정했다면?
그들이 죄를 저지른 이들이기는 하지만, 너무나 가혹한 감옥 생활과 불합리한 '보호 감호'라는 제도에 고통받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범죄를 제재하고 처벌할 수 밖에 없는 권력(혹은 일반적인 대중)과 그 제재의 지나침에 고통받는 죄수들의 모습을 대비시켜, 과연 어디까지가 사회를 유지하는 규칙이고 어디까지가 비인간적인 처벌인지를 보여주었으면 하는 아쉬움.
양쪽을 모두 생각하면서 죄를 미워할 것인가, 인간을 미워할 것인가에 대해 관객들이 생각하게 만들었다면...
영화에서 말하고 싶었다던 '보호 감호 제도의 부당성'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 해 주었지 않았을까?
처음부터 재미있는 영화보다는 한번쯤 생각하고, 봐야 할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던 배우와 감독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지강헌 사건이 드라마틱 했던 이유를 기억하고 있는지.
실제 지강헌 사건은 그의 죄를 떠나서, 그가 외쳤던 메시지 때문에 더욱 많은 이야기를 시사했었다.
그는 범죄자였다. 그러나 그의 죄를 반성하고 죄값을 치르는 것 이상의 고통을 당한 것에 대해서 부당하다고 외쳤다.
그가 탈출 후에 저지른 강도와 인질극에서, 자신의 메시지가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신사적이고 양심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 역시 인상적이었다. 권력을 가진 이들이 더 큰 범죄를 저지르고도 법망을 피해가고 처벌받지 않는 것이 부당함을 외쳤기에 지금까지도 그의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도 "유전 무죄, 무전 유죄"라는 그의 말은 기억한다.
그 사건은 사건 자체로도 지금의 우리에게 이야기 하는 바가 많다.
그러나 그 이야기 속에 쓸데없는 설명과 설정들, 그리고 한쪽으로 치우친 해석이 포함되면서 이야기는 매력을 잃었다.
'지강헌'이라는 인물이 사회의 문제점과 부당함에 항거 했음과 동시에, 그 자신이 범죄자로서 탈옥과 강도,인질극을 벌였음에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는 인물이었다.
거기에 대한 판단은 관객에게 넘겼으면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판단이 개입하면서 결론을 내려 오히려 빛을 잃은 것은 아닌지...
<데드 맨 워킹>을 넘어서는 훌륭한 영화가 나올 수 있었음에도 아쉽게 보통 영화가 되어버린, 흥행작도 문제작도 되기 힘든 이 영화가 참으로 안타깝고 아쉽다.
and so on.
이성재씨.. 참 좋아하는 배우이기에 더 아쉽다.
그래도 그의 복근은 무척이나 빛나는 영화였다...+.+
written by suy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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