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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m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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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16 오전 1:40: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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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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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군대를 가지 않은 사람으로서, 언젠가 군대를 가게 될 사람으로서 군대에 대한 이미지는 나에게 여전히 뭔가 실제적이지가 않고 그저 상상이나 어림짐작으로 가득차 있을 뿐이다. TV 뉴스나 신문을 통해서 '요즘 군대 달라졌다'는 식으로 군대 분위기가 보다 부드럽고 편해졌다는 내용의 얘기를 들을 때는 '요즘 군대가 그래도 좀 많이 편해지긴 했나보다'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어느 순간 군내 폭행, 비인도적 행위 등에 대한 소식이 날 때면 '아직 군대가 많이 강압적이고 무서운 곳인가보다'하는 생각이 들어 도저히 갈피를 못잡을 때가 많다. 그런 점에서 두 시간 내내 군대 얘기만 하는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는 그런 군대에 대한 이미지를 보다 구체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된 영화였다. 광고에선 남자 관객들은 보면서 맞장구칠 수 있다지만, 나같이 아직 군대를 가지 않은 남자들의 경우는 여전히 호기심 혹은 두려운 마음에서 영화를 보게 될 것이 분명하다. 나 역시도 그랬고. 흔히 어른들이 아직 군대에 가지 않은 사람에게 '군대를 가야 사람이 된다'고들 얘기를 한다. 나 역시도 그런 얘기를 들었었고. 그런데 그 어른들이 말하는 '사람'이 이 영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 같은 '사람'이라면? 글쎄, 좀 꺼려진다. 승영(서장원)은 학교서 공부를 하다가 다소 늦은 나이에 군대를 가게 되는데, 아직 얼어붙어 있어야 할 이병의 위치에서 만나게 되는 병장 고참이 알고보니 같은 학교 동창인 태정(하정우). 승영은 아직 군내 질서에 익숙치 않지만, 태정은 적당히 시키는 대로만 하고, 나머지는 자신이 책임질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강압적이고 억지스런 면도 없지 않은 군내 질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승영은 고참에게 대드는 등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아지고, 이로 인해 그를 이끌어야 할 입장인 태정 또한 난처하게 된다. 승영은 자신이 고참이 되면 다 바꿔버릴 거라고 장담하지만, 그는 여전히 군내에서 말썽거리로 취급될 뿐이다. 그 뒤로 1년 정도 뒤, 이미 제대를 했지만 제대로 된 일자리 하나 없이 백수생활을 하고 있는 태정 앞에 상병 신분으로 휴가를 나온 승영이 나타난다. 그런데 어딘가 어두워 보이고 대단히 걱정스러운 듯 보이는 승영은 태정에게 다짜고짜 꼭 해야 될 얘기가 있다고 하고, 태정은 이런 태도를 보이는 승영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태정은 승영을 계속 피하려 여자친구도 부르는 등의 시도를 하지만, 승영은 정말 시급한 문제인 듯 대화를 부탁하는데, 과연 태정이 제대한 뒤 승영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일단 이 영화를 처음 보는 순간, 이 영화가 단 2000만원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뇌리에서 깨끗이 지워지게 된다. 영화의 질을 따지는 데 액수에 연연한다는 게 대단히 어리석은 일이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이 영화가 보여주는 완성도는 놀라울 따름이다. 카메라의 움직임도 전혀 어설픈 구석이 없으나, 배우들의 연기, 중간중간 센스 있게 끼어드는 유머, 과거와 현재를 유연하게 오가는 이야기 전개 등 어느 하나 허술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우선 배우들의 연기. 감독이 연극을 보고 직접 섭외한 만큼 배우들의 연기는 탄탄하기 이를 데 없다. 태정 역을 맡은 하정우는 군대에서의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독기 있고, 그러면서도 인간미도 있어보이는 군대 고참의 모습도 보여주면서, 제대 뒤에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그저 무료한 일상만 보내는 백수의 모습 또한 대조되게 보여줘서 확실히 준비된 배우라는 인상을 준다. 연극계에서 오랫동안 갈고 닦은 실력이라 그런지, 스크린에선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신인 배우의 연기로 보이지가 않은 상당한 포스를 지녔다. 승영 역을 맡은 서장원의 연기도 나무랄 데 없다. 하정우가 역할 특성상 선이 굵고 거침없고 남성적인 연기를 보여줬다면, 서장원은 역시 승영의 성격상 섬세하고 내면의 고민이 많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겉모습이나 성격이 순식간에 확 변하지 않아도, 지속적으로 영화 속에서 나타난 내면적 고민과 갈등으로 인해 조금씩 심리상태가 변화하는 모습을 세밀하게 포착해낸 연기력이 상당히 돋보였다. 시종일관 누군가에게 겁을 먹고 있는 듯, 불안하면서도 반항기도 어린 표정도 일품이었고. 두 배우 다 우리나라 중견배우의 아들로도 알려졌는데, 아버지 배우분들로부터 연기력까지 제대로 물려받은 게 아닌가 싶다. 이외에도 승영의 후임이자 소심하고 어리버리한 지훈 역의 윤종빈 감독의 연기도 돋보였다. 홍보 전단에선 머리를 기른 모습이어서 영화 속 삭발한 모습과는 다소 달라보였지만 그래도 어렵지 않게 윤종빈 감독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구수한 사투리 연기와 어리버리한 행동 등이 적잖은 웃음을 유발했으나 후반부에 가서 보여주는 내면연기 또한 상당해서, 이 감독 배우까지 겸업해도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이 영화는 상당히 비극적인 면을 많이 띄고 있다. 우리 나라의 군대라는, 다른 국가에선 쉽게 찾아보기 힘든 고유의 상황 속에서 사고방식이 확연히 차이가 나는 개개인이 겪는 충돌, 굳건히 자리잡고 있는 군대 내 권위적인 체계와 그 속에서 좌절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라는 이 영화의 주제는 결코 가볍거나 재미로만 봐넘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런 주제에 마냥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는다. 만약 진지하게 다가갔다면, 안그래도 군대 얘기가 재미없다고(특히 여성들에겐 더) 잘 알려진 마당에 관객들에게 더 어필하기가 힘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히 감독은 이런 무거운 주제를 오히려 유머와 함께 잘 섞어냄으로써 사회적 메시지는 물론 영화적 재미 또한 놓치지 않았다. 어리버리하게 행동해서 고참들로부터 마냥 잔소리만 듣는 지훈의 모습, 끈질기게 신참 괴롭히다가도 자기 잘생겼다고 하니까 바로 예뻐해주는 수동의 모습 등 개성 있는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유머스런 상황들은 영화가 가진 비극성이 줄 수 있는 부담을 다소 줄여주면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이렇게 영화 전반에 흐르는 유머스런 분위기는 그 속에 따뜻한 인간미가 담겨 있다기 보다는 냉소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이런 유머들이 영화의 비극성을 은근히 더 강조하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웃음을 통해 얘기를 전달하면서 역설적으로 슬픈 분위기를 더 극적으로 전달한다고나 할까. 사실 생각해보면 군대 안에선 카리스마 있는 고참으로 명성이 자자하다가 제대하고 나니 할일 없는 백수가 되어버린 태정의 모습이나, 단지 약간 속도가 느리고 어리버리하다는 이유로 구박받고 놀림받는 지훈의 모습 등이 마냥 웃을 수만 있는 모습은 아니다. 그런데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웃게끔 만듦으로써 어쩌면 우리가 메시지를 좀 더 따끔하고 절실하게 받아들이게끔 하려는 의도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영화 속 군대의 모습이나 주인공들의 심리 상태가 영화이니만큼 다소 과장되거나 극적인 부분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영화 속에서의 모습만 놓고 보면, 군대 내에 굳어진 질서나 상명하복 체계는 상당히 무디고 고리타분하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승영의 말처럼, 고참은 그냥 자기가 가서 신발을 가져와서 신으면 될 걸 굳이 신참 더러 가지고 오라고 시킨다. 고참이 신참 팬티를 뺏어 입어서 그저 항의를 했을 뿐인데도, 말대꾸한 신참이 무조건 잘못했고 그래서 무조건 먼저 죄송하다고 사과를 해야 예의다. 영화는 이렇게, 그 어떤 합리적, 효율적인 부분 없이 그저 입대시기에 따라 위아래를 구분짓고는 아랫사람이 무조건 윗사람에게 복종해야 하는 군대식 체계를 비판하고 있다. 사과해야 할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사과해야지 편해지고, 자기 의견을 주체적으로 피력하기보다 그저 명령에 복종하고 조용히 지내야 편해지는 군대의 사회가 과연 정말 어른들이 하는 말대로 우리를 진짜 '남자'로 만들어줄 수 있는가 의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영화 속에서 군대 전체에 퍼져 있는 '허울만 좋은' 권위는 단지 군대에만 국한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단지 군대에서만 그런 권위적인 체계를 아무 일 없다는 듯 견디고 참기만 하면 나중에 사회에 나가면 다시 새롭게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영화 속 태정과 승영의 모습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그들도 처음엔 절친한 동창 사이라 군대 안에서 서로 어느 정도 이해하고 봐주면서 순조롭게 지내는 듯 했다. 그러나 결국 군대 내에 천착한 굳건한 상하관계, 군대 밖에서 서로 어떤 관계였든 나이 차이가 얼마든 간에 군대 안에서 한번 위아래가 정해지면 거기에 충실해야 한다는 체계는 조금씩 그들 사이에 야금야금 파고들기 시작했고, 결국 그들의 관계 또한 이전의 친구 관계에서 극심하게 껄끄러운 관계로 변하지 않았던가. 군대 밖에서도 그들의 만남은 그렇게 자연스럽지 못했고. 심지어 신발 가져오는 것과 같은 사소한 일에까지 고참으로서의 권위를 들먹거림으로써 난무하는 군대내의 무분별한 권위 의식은 결국 제대 뒤 사회로 나가서도 그대로 반영될 것이고 이는 변하는 사회 속에서 더 어색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영화는 얘기한다. 자기 뜻대로 여자친구를 맘대로 불렀다 보내줬다 하려는 태정의 모습에서도 알 수 있다. 여자친구가 대화의 공간을 마련해주겠다고 떠나는 순간에도 태정은 마치 군대식처럼 떠나는 여자친구의 뒷통수에 대고 '하나~ 둘~ 셋~'하면서 은근히 권위를 세우려 한다. 승영이 군대 내의 체계에 적응하지 못해 끊임없이 방황하는 경우라면, 태정은 이미 그런 체계에 너무 쉽게 흡수된 나머지 사회에 나가서도 거기서 쉽게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단지 고참이 피의자고 신참이 피해자가 아니라, 체계에 적응못하는 신참이나 너무 적응해버려 거기 머무를 수 밖에 없게 된 고참이나 다같이 피해자라고 이야기한다. 영화 속에서 군대가 만드는 사회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좀 잘 해주려면 상대방의 태도가 아주 어긋나버리고, 반대로 최대한 압박을 가해야지 상대방의 태도를 바로 잡을 수 있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자신이 겪은 불합리성을 막기 위해 승영은 자기 후임인 지훈에게 잘 대해주고 보살펴주지만, 오히려 그때문에 고참들로부터 더 욕을 얻어먹고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되니 골치아프다. 고참들은 하나같이 승영더러 '네가 너무 오냐오냐 해서 애가 풀어진거다'라면서 확실히 잡아서 가르쳐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러나 과연 그것만이 해결책일까? 영화는 부드럽게 하면 막 나가게 되니까 무조건 강압적으로 나가야 한다는 이분법적 권위체계를 내세우는 군대의 모습과 그로 인한 극심한 부작용을 통해서, 이러한 군대 내 권위체계가 얼마나 좁은 시야를 갖고 있는가를 따끔하게 질타한다. 아이러니는 여기 또 하나 있다. 사람이라면 설사 상대가 높은 사람이라도 당연히 부정한 상황에서 자기 의견을 분명히 말하고 드러낼 줄 알아야 하거늘, 군대에서는 오히려 그렇게 하면 생활하는 데 크게 불리해진다. 그래서 마냥 명령에 복종하고, 고참이 아무리 부정한 태도를 취해도 가만히 있기만 하면 너무 비굴한 사람이 되어버리고, 그렇다고 떳떳이 대들고 맞서게 되면 말썽덩어리 취급을 받으면서 온갖 구박만 받게 된다. 권위에 그대로 복종하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맞서면 또 위험해지는 군대 사회 속에서 우리들은 과연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 것인가, 하고 영화는 조용히 탄식한다. 성인이 된 남자가 가장 먼저 접하는 상하관계의 장이 보통 군대라는 점에서, 이러한 군대의 아이러니한 체계는 후에 남자들이 접하는 여러 형태의 사회에서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군대에서의 권위에 복종하고, 또 적잖이 생활하고 나면 그 권위를 몸소 걸쳐입는 생활이 은근히 반영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권위라는 것이 흐물흐물해지고 있는 사회에서, 뒤늦게 자신의 권위를 강조하며 행동하려는 것은 영화 속에서 떠나는 애인의 뒤통수에 대고 외치는 태정의 뒤늦은 숫자 카운트처럼 그저 허공에 흩어지는 것이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를 통해, 영화는 군대에서 강압적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권위의식이 얼마나 실속과 효율이 없고, 더구나 사회에 나가서는 얼마나 소용이 없는지를 냉소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승영은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 듣는 걸 참 즐겨한다. 이런 취미는 아마도 남들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고 주체적으로 생각하려는 승영의 사고방식이 반영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군대에서 승영을 향해 가해지는 온갖 강압적이고 불필요한 권위의식은 승영으로 하여금 더 오래 이어폰을 꽂고 싶게끔 만들어버리는 건 아닐까. 올바른 말을 하고, 자기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상대를 최대한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대하면 제정신 아닌 놈으로 취급받는 군대 사회가 그로 하여금 그 사회를 더 외면하고 피하고 싶게끔 만들어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용서를 빌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 용서를 빌 필요가 없는데도, 용서를 빌지 않았다는 이유로 멀쩡한 사람을 '용서받지 못한 자'로 만들어버리는 현실을 승영은 귀를 막은 채 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영화는 이로 인해 군대라는 곳에 대해 두려움과 동시에 호기심도 부쩍 안겨주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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