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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지고는 못 사는 금자씨 친절한 금자씨
vinappa 2005-08-15 오전 12:33:57 6409   [20]
    비주류 문화를 탄생시킨 정서적 바탕은 하위주체들의 전복의지다. 여기서 하위주체라함은 사회적 신분으로서의 하층과 문화적 경향으로서의 하류를 함께 아우르는 복합적인 의미다. 비주류 문화의 성격은 계급주의와 상위주체 편향적인 주류 문화에 대한 정서적 도발이며 그들이 통제하는 질서에 대한 정치적 쟁의다. 박 찬욱의 영화, 그 중에서도 특히 복수 삼부작에는 비주류 문화의 슬로건인 정서적 도발과 정치적 반발이 균형있게 자리잡고 있다. 특별히 복수 삼부작에 비주류적 경향이라는 강세를 찍는 이유는 복수라는 행위 자체가 법치질서와 도덕성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복수는 법권력이 독점적으로 행사하는 생사여탈권을 개인이 탈환하는 행위이고, 가해자의 폭력을 피해자의 폭력으로 응대하는 행위다. 적법성이나 도덕성같은 집단의 논리는 무시되고 지극히 개인적인 분노의 깊이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것이 복수의 메카니즘이다. 주류문화라고 해서 복수를 다루지 않는 것은 아니나 복수무상의 교훈을 강조하기 위해 런닝타임을 할애하는 방식으로는 복수의 진정한 의미를 그릴 수 없다.

    이전의 두편 -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 - 에서 박 찬욱은 복수라는 행위 자체를 정당한 것으로 간주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양자의 사연에 비중을 두고, 그 사연들이 충돌하는 지점에 도덕적 딜레마를 심어 두었다. 영악하게도 박 찬욱은 이 딜레마를 다룸에 있어 자신의 역할은 질문에 한정시키고 판단의 책임은 관객의 몫으로 유보시켰다. 차갑고 건조한 <복수는 나의 것>과 뜨겁고 질퍽거리는 <올드보이>가 온도와 질감에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뒷맛이 개운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감상의 권리가 아닌 답변의 의무를 관객에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는 비주류 문화가 오래도록 견지해 온 도발의 방법론 중 하나다. <친절한 금자씨>에 이르러 박 찬욱은 복수의 사연이나 명분 등은 뒷전에 미루고 복수의 성격에 집중한다. 사연과 사연이 충돌하고, 오랜 과거와 근과거가 충돌하는 곳에 복수의 인과율을 우겨넣던 전작들과 달리 이 영화는 누가 죽여도 죽여야 될 놈을 피해집단이 직접 처단하는 심판의 논리로 끌고 간다. 이 심판의 논리를 추동하는 것은 신체학대의 페티시즘과 만인의 공분을 살만한 백 선생의 악마성이다.

    최 민식이 열연한 백 선생의 캐릭터는 박 찬욱 영화에서는 낯선 존재다.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의 누구와도 닮아있지 않고, 복수 연대기 이전의 누구와도 근친간이 아니다. 왜 박 찬욱은 복수 연대기의 최종회에 와서 이런 낯설고 이질적인 캐릭터를 영화의 중심에 배치한 것일까? 사람처럼 생긴 악마의 매력에 이끌려서일까? 그건 절대 아니올시다다. 지금껏 박 찬욱이 창조한 캐릭터들 중 백 선생만큼 밍숭맹숭하고 정나미 떨어지는 인사는 없었다. 절대적이고 순수한 악이라는 백 선생의 몽타쥬는 마치 사격장의 과녁처럼 선명해서 누구라도 방아쇠를 당기고 싶을 정도다. 요트를 사고싶다는 욕망의 실현을 위해 연쇄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그러고서도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인간말종. 아무리 짐승보다 못한 놈이라 해도 살 권리는 있는 것이 아니냐던 <올드보이>의 교훈(?)처럼 제 아무리 극악한 악당이라 해도 동정의 빌미 정도는 있는 법인데 백 선생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설령 있었다손 치더라도 영화는 그 가능성을 단호하게 외면해 버린다. 마치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될 죄악의 결정체를 대하듯 백 선생을 향한 카메라의 시선은 냉담하고 불친절하다.

    이 의도적인 불친절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금자에 대한 탐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백 선생은 금자에 의해 세상에 커밍아웃하는 존재이고, 금자와 백 선생은 대척하면서도 서로 닮아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금자를 소개함에 있어 친절하게도 실명인들의 증언과 재현까지 끌어들인다. 평론가 심 영섭이 극찬한 것처럼 이 시퀀스는 놀랍도록 정교하고 홀딱 반할 정도로 아름답다. 친절한, 너무도 친절한 한 여인에 대한 흠모로 가득찬 화면들은 마치 성녀들의 일대기를 다룬 기록영화마냥 가슴 벅차고 뽀사시하다. 이 대목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이 증언들이 모두 고도의 주관에 의한 것이라는 점과 증언자 모두가 금자에게서 일종의 구원을 얻은 수혜자들이라는 점이다. 그녀로부터 생명을 얻고, 지옥에서 건져올려진 증언자들에게는 구태여 금자를 나쁘게 말할 이유도 금자의 양면성을 간파할 분별력도 없다. 폐쇄된 공간 속에서 가장 절박한 것을 금자에게서 얻은 증언자들은 마녀를 향한 금자의 테러마저도 거룩한 친절로 여긴다. 무슨 짓을 해도 성스럽고, 거룩하고, 친절하게 보이는 우리의 금자씨. '친절한 금자씨'는 그녀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환상'일 뿐이다. 영화가 제시하는 금자의 이력서는 그녀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환상'과 미디어가 만들어낸 '선정적인 아이러니'에 관한 보고서지 금자의 실체는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초반부, TV 화면 속의 현장검증은 단순한 설정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김 현희라는 이름을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이 시퀀스는 대중들의 안일한 현실감이 만들어내는 플라세보적 환상을 은유한다. 또한 미디어는 현실을 조작하는 허구의 공장이라는 조소도 포함하고 있다. 당시의 사회 분위기 - 죄 지은 년은 마유미, 김 현희는 불행한 이데올로기의 희생자 - 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이 영화의 결론까지도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시퀀스다. 이 시퀀스와 충돌하는 시퀀스는 당연히 캠코더 셀프 카메라에 담긴 백 선생의 악행의 자서전이다. 소름끼치고 구역질 나는 이 엽기적인 행각이 폭로되면서 백 선생은 진정으로 만인의 공분을 사게 된다. 영화의 내용 중 가장 심기 불편했던 이 장면에서 관객은 故 김 선일이 남긴 충격을 다시 접해야 한다. 검은 비닐봉지로 얼굴을 가리운 채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던 故 김 선일의 영상은 이성을 가진 모든 국민들의 뇌리에 찍힌 죄의식의 낙인이고, 피랍 살해의 공포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충격적 실예였다. 그 죄의식과 공포를 캐릭터 구축의 수단으로 영악하게 활용한 감독의 의도는 수긍이 가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왜 그렇게 많이, 자세히, 선정적으로 보여주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끔찍한 범죄를 기록으로 남겼다는 자체만으로도 백 선생의 악마성을 각인시키기에는 더할 나위없는 연출이었지만 구태여 모든 아이들의 죽음에 대한 공포를 전시할 필요는 없었을 것 같다.

    다시 영화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보자. 스무 살에 세상으로부터 추방당했던 금자는 30대의 중반이 되어 세상으로 복귀한다. 천사들의 합창을 배경으로 전도사가 전하는 속죄의 두부를 "너나 잘 하세요" 한마디로 엎어버리는 그녀의 손에는 개과천선의 징표 대신 준비된 복수기계의 명함이 들려져 있다. 이전의 작품들, 특히 <올드보이>에서라면 금자는 세상에 발을 내딛는 순간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백 선생에게 달려갔을 것이다. 마치 자석에 끌려가듯이 아니면 총구를 벗어난 탄환처럼. '누구냐'와 '왜'라는 장애물이 없으니 그 가속도는 더했으리라. 그런데, 금자는 서둘지 않는다. 되려 차선으로 미루어도 좋을 일들을 우선적으로 처리한다. 자신이 연류된 사건의 피해자 유족을 찾아가 과격한 퍼포먼스를 선사하고, 천천히 천천히 과거의 친절들을 되돌려 받은 후 딸을 찾겠노라고 바다 건너로 떠나버린다. 불현듯 이런 의구심이 생긴다. 왜 백 선생은 금자의 딸만은 살해하지 않은 것일까? 왜 금자의 딸만은 백 선생의 본능에 희생되지 않고 무탈하게 성장하여 제니가 된 것일까? 복수와 연관되는 2세들 중 아무런 해코지도 당하지 않은 아이는 삼부작을 통털어 제니뿐이다. 유선이는 일찌감치 죽었고, 미도는 복수의 수단으로 사육되었고, 원모를 비롯한 모든 피랍 아동들은 죽었는데 제니는 모국어를 배우지 못한 것 외에는 너무나 멀쩡하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수십가지 방식으로 죽이고 싶었던 그 새끼 백 선생을 생포하고서 금자는 일순간 갈등한다. 곁가지 치고는 너무 굵은 가지였던 딸찾기의 성공이 그녀의 갈등을 부추겼으리라. 누구라도 죽여버리고 싶어지는 인간말종이지만 딸을 찾은 마당에 그녀에게는 딱히 백 선생을 죽여야 할 명분이 없다. 금자가 직접 복수를 포기하고 피해 아동들의 유족들을 대리인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아마도 그녀가 백 선생으로부터 돌려받아야 할 피의 대가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금자는 이 지점에서 분명 멈춰야 했다. 딸도 찾았겠다, 딸에게 가졌던 죄책감도 일부분 덜었겠다, 먹고 살만한 기술도 가졌겠다, 자기가 먹은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콩밥을 그 새끼에게 쳐먹일만한 결정적인 증거까지 잡았겠다, 그런데 무엇이 아쉬워서 복수의 끈을 놓지 않는단 말인가. 자신의 수감생활이 백 선생에게 돌려주기에는 그리 끔찍하지 않아서? 백 선생같은 종자하고 같은 하늘 아래 사는 것이 싫어서? 다른 유족들이 법의 심판을 만족해하지 않을까 봐서? 모두 다 아니라는 가정하에 이런 추측을 해본다. 아껴 두었던 음식 남 주기는 아깝고, 직접 끝장 내자니 명분도 없거니와 사제총 한방으로 고이 보내자니 이 인간이 너무 뺀질거리고, 그래서 유족들의 분노와 상실감을 충동질하여 여.러.가.지. 방식의 신체 학대를 즐긴 것이라고. 이쯤되면 혼자서 여러 아이의 목숨을 앗은 백 선생이나 여럿을 충동질해 한 인간을 요절내는 금자나 영혼의 형질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영화의 종반부에 이르러 박 찬욱은 익숙해진 나레이터의 목소리를 빌려 '영혼의 구원'이라는 말을 꺼낸다. 금자가 깔아놓은 멍석 위에서 복수의 카타르시스를 만끽한 유족들이 만족할만한 뒤풀이까지 끝내고 돌아간 후에야 등장하는 이 말은 복수의 후일담으로 음미하기에는 심히 이율배반적이다. 전도사가 건넨 속죄의 두부를 엎어버렸던 금자가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든 두부 모양의 케이크에 얼굴을 파묻는 유사 속죄의 행위도 '영혼의 구원' 만큼이나 이율배반적이다. 복수 삼부작의 끝맺음에 해당하는 이 시퀀스에서 감독은 왜 '영혼의 구원'이라는 기막히게 어색한 단어와 그에 상응하는 어설픈 제스처를 보여주는 것일까? 악마같은 그녀 금자씨에게 성녀의 광배를 잔뜩 드리워 놓고는 명분도 불분명한 복수를 행하게 하더니 느닷없이 '영혼의 구원' 이라니. 이 대목에서 박 찬욱의 씁쓸한 조소가 강렬하게 감지된다. 임 상수 톤으로 얘기하자면 "영혼의 구원 좋아하시네. 철딱서니 없는 것들" 하는 투의 조소. 같은 맥락에서 해석해 보면 출감 후 금자가 원모의 부모들을 찾아가 손가락을 자르는 이유는 속죄의 자해가 아니라 일종의 윽박지름이 아니었을까 싶다. "너나 잘하세요" 모드로 말하자면 "이거나 먹고 떨어지세요" 식의 일방적인 부채청산이라고나 할까?

    작품의 완성도만 놓고 보자면 <친절한 금자씨>는 그리 만족할만한 수준이 아니다.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가는 드라마의 탄력도 느슨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캐릭터의 힘도 빈약하다. 정신을 잡아먹기보다는 육체를 난자하는데 치중하는 복수의 방식도 그리 독창적이지 않다. 또한 계급에 대한 은유도 없고, 정치적으로 도발적이지도 않다. 금자가 아무리 성직자를 개무시하고 능멸해도 그에 대한 쾌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개인의 복수가 집단의 심판 논리로 전환되면서 복수의 인과율도 무너져버린다. <복수는 나의 것> 만큼 서늘하지도 않고, <올드보이> 만큼 맹렬하지도 않은 이 영화는 심지어 이전의 두 작품에 대한 변절도 서슴치 않는다. 류가 행했던 날것의 카니발리즘은 마녀의 우아한 바베큐 불판 위에서 혐오스럽게 익어버리고, 개가 된 백 선생은 정말 개만도 못한 놈으로 보일뿐 오 대수와 닮아 보이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이 영화에는 복수의 카타르시스가 없다. 오히려 죄를 지었으면 지은 만큼의 벌을 받아야 한다는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더 크게 들려 온다.

    감독 아닌 그 누군들 이 모호함의 본질을 알 수 있겠나만은 '받은만큼 드릴게요'라는 카피와 금자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성인이 된 원모의 유령을 결합시켜 이런 결론을 내려본다. 복수란 죄 지은 자를 그 죄질에 걸맞게 벌주는 것인데, 그 주체가 법이라는 권력이 아니라 피해자 개인이며, 법이 허용하기에는 지극히 폭력적인 형태로 이루어지는 징벌이다. 사회는 복수의 정서적 바탕을 대략 원한과 앙심이라고 말하는데 개인에게 있어 원한과 앙심은 정의보다 우선시 되는 경우도 있다. 더불어 복수는 반드시 받은만큼만 되돌려 주어야 하고, 차후에 정당성을 얻기 위해 사연이나 명분을 내세워서는 안된다. 마지막으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복수에 임하는 세가지 자세. 계산은 확실하게, 준비는 철저하게, 뒷처리는 깔끔하게. 이것이 진정 감독의 의도였다면 복수 삼부작의 종지부는 제대로 찍어진 것 같다.

(총 0명 참여)
yawel
복수는 그저 공정한 거래일 뿐이다. 정도의 마무리가 아닐까 합니다.   
2005-12-31 20:33
yawel
잃은 것 보다 많은 것(유괴에 동참한 것에 대한 죄사함)을 요구하더라도, 빚지지 않은 것은 돌려 받을 수는 없다. 복수로 모든 것에 대해 구원 받을 수는 없다.   
2005-12-31 20:29
yawel
복수는 공정한 거래가 될 수는 있을 지언정 잃은것 보다 많은 것을 취할 수는 없다. 백 선생에게 피와 돈을 빼앗긴 이들은 피와 돈을 돌려 받았지만,   
2005-12-31 20:24
revolustion
노태우 (후)?가 저지른 일이지요 예! 하지만 난 영애씨가 제일 예쁘답니다 진실은 어디 있을까요?ㅋㅋㅋㅋ   
2005-12-21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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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금자씨(2005, Sympathy For Lady Venge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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