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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로봇들이 비웃는 녹슨 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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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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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m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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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02 오후 8:49: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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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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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애니메이션은 우리가 상상만 하고 말았던 세계를 눈앞에서 상상 그대로, 혹은 그 이상으로 보여준다. 사람이 아닌 것들, 동물이나 물건들에게도 그들만의 세계가 있다는 걸 가정으로 두어서 그 상상력을 마음껏 뽐내기도 한다. <토이 스토리>에선 우리가 없는 사이에 장난감들이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서로 대화하고 감정을 주고 받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몬스터 주식회사>에선 옷장 속에 숨어있을 듯한 괴물에게도 나름대로의 사회 체계가 성립되어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이 영화 <로봇>은 그러한 '사물들의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상상력을 확장시킴과 동시에 기존에 갖고 있던 고정관념 또한 깨주었다. 로봇들은 모두 삐까뻔쩍하고 사이버틱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감정이 없고 언제나 인간 주인이 시키는대로만 행동한다? 이런 공식이 <로봇>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주인공 로드니 쿠퍼바텀(이완 맥그리거)은 집안 형편은 좋지 않지만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 밝은 소년이다. 어렸을 때부터 TV에 나왔던 로봇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빅웰드의 명언 "모든 로봇은 소중한 존재입니다."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발명에 목숨을 걸었던 소년이다. 어른이 된 로드니는, 자신의 발명품의 실수로 인해 직장에서도 힘들게 된 아버지를 위해 집을 떠나게 되는데, 목적지는 로봇 세계에서 가장 큰 번화가인 로봇 시티이다. 능력만 있다면 누구든 받아준다는 빅웰드를 만나기 위해 로봇 시티로 향하는 로드니. 그러나 회사에는 빅웰드 대신에 왠 젊은 새 로봇이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는 악덕 사장인 라챗(그렉 키니어). 낡은 로봇이라도 그에 맞는 경제적인 부품들을 제공하며 돈보다는 자선을 위해 힘써온 빅웰드 대신, 라챗은 누구든 새 것으로 업그레이드하고 낡은 고물 로봇들은 폐기함으로써 최대한의 이익만을 추구하려는 속셈을 갖고 있다. 생각보다 큰 벽에 부딪히게 된 로드니. 그러나 그는 꿈을 잃지 않고 다시금 제대로 된 로봇 사회가 될 수 있게 팬더(로빈 윌리엄스) 등 고물 친구들과 함께 나서게 되는데... 주인공들이 사람이 아닌 로봇인 만큼, 인간 생활을 그대로 옮겨온 로봇들의 생활은 대단히 창의적이었다. 사람이 임신하는 대신, 로봇들은 자신의 아기를 힘들게 조립함으로써 '산고'의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나, 아기의 울음을 그치는 방법이 머리에 달린 볼륨 조절 스위치를 돌려 볼륨을 줄이는 것, 식사로는 밥이나 빵 대신에 로봇이 잘 돌아가기 위해선 필수인 기름이 제공되는 것 등 인간 생활을 로봇의 생태(?)에 절묘하게 결합시킨 점이 놀라웠다. 역시나 애니메이션이란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게 다시금 뼈저리게 느껴졌다. 애니메이션이 남녀노소를 모두 흡수하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보강해야 할 캐릭터 면의 재미가 이 영화에도 역시나 맛깔스럽게 첨가되어 있다. 매우 모범적이고 활달한 로드니나 조신하면서도 정의로운 커리어우먼 캐피(할리 베리) 같은 캐릭터는 다소 진부하다고 치더라도, 악당이나 조연 캐릭터는 개성이 철철 흘러 넘쳤다. 돈만 밝히며 카리스마로 압도하지만 마마보이 기질이 다분한 라챗, 온몸이 따로놀아 덜렁거리기 그지 없지만 개인기는 얼마든지 갖추고 있는 팬더(로빈 윌리엄스의 목소리 연기는 역시나 예술이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험악의 절정을 달리는 라챗의 모친 개스킷 부인, 심성은 착하지만 큰 엉덩이 때문인지 눈치가 영 없는 대빵 부인에 이르기까지, 애니메이션의 흔한 공식이자 미덕이 풍성한 캐릭터들이 이 영화에서도 빛을 발했다. 요즘 애니메이션의 대세가 3D인 만큼, 이 영화도 3D 애니메이션이 보여줄 수 있는 시각적인 미덕을 양껏 갖추고 있다. 대신에 이 영화가 좀 특이한 점이라면, 다른 3D 애니메이션들이 미세한 털이 있는 캐릭터를 내세움으로써 컴퓨터 기술의 업그레이드를 과시한다면, 이 영화는 좀 다른 방법으로 과시를 한다는 점이다. 아시다시피 이 영화의 모든 등장 캐릭터들은 로봇으로, 당연히 털이라곤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 없이 모두 반들반들한 표면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라고 무조건 반들반들하지만은 않다. 대다수를 차지하는 고물 로봇들의 모습은, 미세한 털과는 다른 방법으로 컴퓨터 기술의 발전을 보여준다. 철의 표면으로 비치는 빛의 위치나 모양이라든지, 고물 로봇의 녹이 슨 곳곳에서 보이는 너덜너덜한 분위기는 여타 3D 애니 못지 않게 사실감을 더해주지 않았나 싶다. 반질반질해 기술적인 진보가 덜 필요할 것 같은 쇳덩이라도, 충분히 녹슬고 허름해질 가능성을 감안하고 사실성을 더한다면 그게 곧 기술적인 진보가 되는 셈이다. 세밀한 표현을 통한 기술적 진보 못지 않게 롤러코스터같은 속도감 있는 화면 전개도 재미를 한껏 돋구어 주었다. 마치 기계 생산 라인을 보듯 매끄러운 통로들의 그물망으로 뒤덮여 있는 로봇 시티에서의 로드니의 여행은 그야말로 놀이공원 놀이기구가 다름없었다. 팬더와 함께 '특급행' 교통수단을 아찔하게 이용하는 모습이나, 후반부에서 로드니 진영과 라챗 진영이 봅슬레이 통로같은 도로를 지나며 스피디한 추격전을 벌이는 모습 등, 캐릭터나 기술 측면 뿐 아니라 액션 면에서도 신경을 많이 쓴 것같아 볼거리가 화려했다. 마지막에 펼쳐지는 화려한 축제의 향연에 이르기까지, 볼거리면에서는 전혀 다른 영화에 뒤쳐지지 않았다. 요즘 헐리웃 애니메이션의 대세답게, 이 영화에도 패러디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홍보 전단에는 이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될 당시 나오지도 않았었던 <킹덤 오브 헤븐>도 패러디했다고 하지만 그건 확실히 모르겠고, 많진 않지만 꽤 감칠맛 나는 패러디를 보여주었다. 로드니의 고물 친구들 중 목소리가 없는 한 친구가 가게 안에서 목소리칩을 찾아 넣어보는데 그로 인해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 목소리로 나오는 장면(덩달아 입모양까지 다스 베이더의 가면처럼 변하는)도 꽤 기발했고, 후반부에서 온몸이 따로노는 팬더가 여성 로봇의 하반신을 한 채로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며 적들을 무찌르는 장면도 꽤 재미있었다. 'Hit me baby one more time~'이란 가사를 '맛 좀 봐요, 강펀치를!'로 번역하는 센스까지 발휘하며... 그러나 이 애니메이션이 더 흥미로웠던 건, 단순히 이렇게 재미 면에서만 호쾌한 것이 아니라, 영화가 속으로 주장하고 있는 메시지 또한 꽤 통쾌했기 때문이다. 사실 주인공들이 강조하는 '언제나 꿈을 잃지 말고 끝까지 나아가라'는 메시지는 이런 온가족용 애니메이션이 나올 때마다 나오는 뻔한 메시지라 별로 관심 없고, 내가 관심 있던 건 영화 속에 보여졌던 로봇 사회에서 엿보인 빈부 격차가 있는 사회였다. 앞에서 말했듯, 이 영화는 로봇들의 세계에 인간들의 실생활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고, 그 안에는 빈부가 차이 나는 현대인들의 모습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언제나 윤기 좔좔 흐르는 최신식 업그레이드 부품을 통해 늘 체면을 유지하는 고위 관리층, 이에 비해 당장에 고칠 부품조차 못 구한 채 녹이 슬어가며 고물 취급을 받아야 하는 서민 로봇들의 모습이 꽤 그럴 듯하게 그려졌다. 작은 부품때문에 고민하고, 고물이 되어 폐기될까봐 여기저기 도망다니는 로봇들의 모습이 이전 로봇들의 모습과는 유례없이 친근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러한 빈부 격차가 나는 사회를 통해 영화는 현대 자본주의의 녹슨 단면 또한 은연중에 풍자하기도 한다. 영화 속의 대표적인 부자 캐릭터인 라챗은 모든 로봇들에게 옛날 부품은 필요없다면서 모두 새걸로 완전히 교체하기를 강요한다. 그러나 일반 로봇들은 그렇게 왕창 새것으로 바꿀 필요없이 그냥 필요한 부품들만 다시 조립하면 그만이다. 새걸 다시 산다는 것은 괜히 시간낭비요 돈낭비이다. 이렇게 자기 처지에 알맞는 적당한 소비 대신에 모두 새것으로 바꾸기를 강요하는 모습은 우리가 현재 만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과 다를 바가 거의 없지 않나 싶다. 우리 모두 지금 현재에서 잠시 부족하거나 고쳐야 할 부분만 따로 고치고 보충하면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가전제품이 고장나면 고치면 그만이고 옷이 찢어지면 수선으로 고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상업성과 물질적 이득을 최대의 미덕으로 강조하고 있는 현대 사회의 물결에 휩쓸려, 끊임없이 '신제품'을 강조하는 광고들의 폭격에 휘말려 뭔가 부족하고 못쓰게 되면 그걸 적당히 고치는 대신 새것으로 무조건 바꾸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끝까지 옛날 것을 고쳐서 쓰는 사람을 전례없는 알뜰한 사람이라면서 신기하게 보기까지 한다. 아마도 우리에게 '이렇게 좋은 새것을 쓰지 왜 헌것을 고치고 또 고쳐?'하고 유혹하고, 그러면서 아무렇지 않게 이익을 주섬주섬 챙기는 각종 매체나 상업적 수단들이 영화 속 라챗과 같은 존재가 아닌지 모르겠다. 이렇게 이 영화는 단순히 남녀노소 모두를 위한 재미만을 잡지 않고, 새것만이 정상적인 것처럼 강요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은연중에 비꼬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들의 주인공은 어떤가. 그렇게 녹이 슬고 삐걱거려도 언제나 밝고 호탕한 마음을 품고, 꿈을 잃지 않으며 긍정적으로 나아가지 않던가. 우리 대다수의 국민들처럼 형편도 되지 못하는데 비싼 새것들로 바꾸기를 강요당하지만, 대신에 보다 적극적으로 그러한 요구를 하는 윗선에 있는 이들에게 대항하고 맞선다는 점에서 로드니를 비롯한 그의 고물 친구들의 모습은 한층 도전적이지 않나 싶다. 이렇게 이 영화 <로봇>은 기막힌 캐릭터들의 조화와 뒤통수 치는 창의성, 적당히 감칠맛 나는 패러디와 더불어 실컷 즐기다 보면 어느새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우리에게 쓸데없는 소비를 너무 부추기는 현대 사회에 대해 실컷 비웃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비웃음이지만 차가운 냉소라기보다는 시끌벅적한 활기와 긍정적인 인간미가 가미된 비웃음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한결 기분좋은, 낙천적인 풍자극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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